AP "실적기사는 로봇이 쓴다"..한국 미디어는 혁신 부족
[뉴스핌=김윤경 국제전문기자] 이른 아침, 우리보다 한나절 늦게 사는 미국 미디어들이 올려놓은 기사를 훑으며 일과를 시작한다. 거시 경제와 정책의 흐름도 읽어야 하고 금융시장 동향도 파악해야 하지만 잠을 확 깨우는 건 아무래도 정보기술(IT) 분야 팬시(Fancy)한 기사들이다.
"어떻게 공상과학(SF) 소설이나 영화에서 봤던 것이 현실화되는 걸까, 대단해!"라며 감탄하던 시절도 없진 않았지만, 요즘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기술이 과연 우리의 삶을 발전시키고는 있는 것인지, 퇴보시키거나 종속화하는 건 아닐지 의구심이 더 커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자칫하다간 일자리도 빼앗기게 생겼다. 우리나라에선 아직도 먼 얘기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외신만 보면 '로봇 저널리즘(robotic journalism)'이 곧 현실화할 것 같아 보인다.
AP의 알고리즘(algorithm) 저널리즘 본격화 선언은 각별하다. 7월부터 AP에서 150~300 단어 정도 되는 간단한 실적 기사는 로봇이 쓰게 된다. 잭스 인베스트먼트 리서치란 곳으로부터 실적 수치를 받아 오토메이티드 인사이츠(Automated Insights)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넣으면 기사가 작성되는 시스템을 도입키로 한 것.
로봇(알고리즘)이 기사를 쓰는 시대가 본격화하고 있다. AP는 7월부터 실적 기사는 로봇이 쓰기로 했다.(출처=허핑턴포스트) |
알고리즘, 즉 로봇이 기사 작성을 한 게 처음은 아니다. 이미 블룸버그 등은 금융 시장이 급락하거나 급등할 경우 그 정도를 프로그램에 입력해 놓으면 자동으로 속보가 뜨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점수를 기계적으로 알려야 하는 운동 경기 기사도 일부 이렇게 작성되고 있다.
LA타임스는 퀘이크봇(Quakebot)이 자동으로 지진 기사를 작성해 보도해 주목을 받았고, 디지털화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차세대 미디어 실험의 선봉장 역을 자처하고 있는 영국 가디언은 지난 4월 전적으로 로봇이 만드는 신문을 내놓았다. 책상 앞에 앉아있는 존재는 아니지만 로봇 편집국장(Editor-in-chief)도 뒀다. 이 로봇은 미국에서 발행하는 월간 판에 들어갈 기사를 고르는 역할을 한다. 뉴욕타임스(NYT)도 뒤질세라 내러티브 사이언스(Narrative Science)란 기업이 개발한 프로그램 스탯멍키(Stats Monkey)를 사용해 기사를 쓰고 있다.
점점 이렇게 사례를 나열하다 보니 난감함이 밀려 온다. 인터넷을 통해 정보의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미디어의 속보 기능은 이미 일반인에게조차 밀리고 있고, 의제 설정(Agenda Setting)이나 심층 분석 기능 역시 모바일과 소셜 공간을 통해 더 영향력을 갖고 있는 전문가들, 혹은 그런 콘텐츠를 모아 다시 뿌려주는 소셜 큐레이터(Social Curator)들에게 밀리고 있는 상황 아닌가.
가뜩이나 세월호 참사로 인해 시쳇말로 '영혼(윤리나 책임의식)이 없는' 기자 '기레기' 논란마저 불거진 상황. 입체적인 관점이나 통찰력 같은 '고급한' 기능을 장착하지 않고서야 기자들은 설 자리를 찾지 못하게 될 것이란 위기감이 마음을 조여온다.
더 이상은 조직이나 뉴스 생산 및 유통 방식의 혁신을 미룰 수 없는 상황이란 판단이 든다. 마침 세계신문협회·국제미디어산업협회(WAN-IFRA) 발주로 이노베이션 인터내셔널 미디어 컨설팅 그룹이 작성한 '2014 신문업계 혁신에 관한 보고서'가 발표돼 눈길을 끈다.
(출처=매셔블) |
보고서 안에 담긴 인터뷰에서 그리스 언론인 소도리스 게오르가코풀로스(Thodoris Georgakopoulos)는 "내러티브 사이언스와 같은 로봇 저널리즘이 활발해지면 더 이상 지금처럼 많은 기자들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며 곧 기술이 기사를 쓰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내러티브 사이언스의 공동 창업자 크리스 해먼드가 NYT와의 인터뷰에서 말한 "5년 후엔 로봇(컴퓨터 프로그램)이 퓰리처 상을 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상기했다.
보고서는 더 이상 정보 소비자들과의 상호작용성이라는 구호만 외칠 것이 아니라 미디어 조직이 혁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방향의 하나로 제시된 것이 팝업 뉴스룸(Pop-up Newsroom)이다. 어디서나 모바일로 뉴스를 만들어 전송하고 피드백할 수 있는 조직으로 바꿔야 한다는 얘기. 고유의 브랜드가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광고주와 독자에게 판매해야 한다는 얘기도 했다.
뉴스룸 통합은 '사람 기자'들이 콘텐츠 고급화를 위해 가장 먼저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보고서에서는 코스타리카의 라 나시온 그룹의 경우 인쇄물과 라디오, 웹, TV 등 7개 미디어를 통해 331명의 인원을 고용하고 있는데 이를 하나로 통합하고 이 통합 뉴스룸을 통해 개방적으로 취재, 생산한 콘텐츠를 모든 플랫폼으로 보내는 혁신을 꾀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전체를 아우르는 슈퍼 데스크(superdesk)는 공공 이슈와 레저, 경제, 스포츠, 잡지 등 6개 분야 데스크(책임 관리자)로 둘러싸여 종합적으로 판단을 하게 구성됐다.
신문과 방송 등 기존 미디어 조직(더 핵심적으로는 이들 조직의 경영진)이 일종의 선민의식마저 갖고 있는 한국적 미디어 문화에선 이런 실험은 시도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곧 로봇까지 편집국에 밀어닥치게 생겼는데, 미디어 플랫폼 자체가 바뀌게 생겼는데 우리 미디어 업계에서 나오는 얘기는 정권 바라기에 여념이 없는 경영진, 그런 경영진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내는 것, 보복 인사 일색이다. 로봇이 경영진 못하라는 법도 없는데 말이다.
[뉴스핌 Newspim] 김윤경 국제전문기자 (s91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