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서 먹먹한 눈빛연기를 펼친 배우 호아킨 피닉스 [사진=UPI코리아] |
22일 개봉하는 ‘그녀’는 올해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스파이크 존즈의 역작이다. 이혼할 위기에 몰린 채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편지 대필작가 테오도르가 운영체제(OS)와 사랑에 빠진다는 기상천외한 스토리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녀’의 주인공 테오도르는 관계가 호전될 희망 따위 없음을 알면서도 아내를 놓지 못하고 방황한다. 무기력한 테오도르는 새 인연을 만들라는 친구 에이미(에이미 아담스)의 조언도 따라보지만 좀처럼 타인에게 마음을 열지 못한다.
그런 팍팍한 테오도르의 삶에도 봄날이 찾아온다. 놀랍게도 변화의 주체는 운영체제(OS)다. 사만다(스칼렛 요한슨)라는 이름을 가진 OS와 대화하면서 테오도르는 차츰 활력을 회복한다. 테오도르의 정보를 바탕으로 단순한 대거리를 해주던 사만다 역시 조금씩 사람의 감정에 눈을 뜬다. 둘은 연인처럼 함께 해변을 거닐고, 같은 음악을 들으며, 은밀한 생각을 공유한다. 물론 질투도 한다.
‘그녀’에 참여한 배우들의 연기는 예상대로 수준급이다. ‘그녀’가 처음 공개됐을 때 평단은 독창적 시나리오에 주목했지만, 오히려 영화는 배우들의 열연으로 꽉 찬 느낌이다.
아내의 빈자리를 준비해야 하는 테오도르 역의 호아킨 피닉스는 OS와 사랑에 빠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섬세하게 연기했다. 담담하면서도 먹먹한 호아킨 피닉스의 미소와 눈빛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진한 여운을 남긴다. 사만다가 로그오프 됐을 때 테오도르가 느끼는 엄청난 절망은 현실 속 실연의 아픔과 견줄 만큼 충격으로 다가온다. 이 정도 공감이 가능한 연기력이라니,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사랑에 빠진 OS 사만다의 감정변화를 목소리만으로 표현한 스칼렛 요한슨의 연기에는 새삼 감탄했다. 스스로 ‘그녀’에 몰입한 스칼렛 요한슨의 열연 덕에 사만다는 관객의 상상 속에서 구체적으로 형상화되고 마음껏 호흡한다. 테오도르의 연주에 맞춰 사만다가 나지막하게 ‘The Moon Song’을 노래하는 신은 이 영화 최고의 장면이다.
애플 광고처럼 깔끔한 화면 위에 구현된 ‘그녀’ 속 인간과 OS의 사랑은 비현실적인 동시에 현실적이다. ‘그녀’가 담고 있는 인간과 OS의 ‘사이버 로맨스’는 분명 황당한 아야기지만, 머지않아 실제로 벌어지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도 없기 때문이리라.
[뉴스핌 Newspim] 김세혁 기자 (starzoobo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