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라도 듣고 계세요.” 첫 인사와 함께 배우 온주완(31)이 건넨 말이다. 대개 인터뷰에 앞서 10분 정도 사진 촬영이 진행되는 터. 사진을 찍는 동안 멀뚱멀뚱 앉아있을 모습을 예상했던 모양이다. 실제로 테이블 위 그의 휴대폰에서는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홍보사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선곡도 직접 한 거란다. 멜로디에 맞춰 고개를 까닥거리며 처음 든 솔직한 생각은 ‘뭐지?’. 그러면서도 작은 배려에 기분이 좋아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온주완이 새롭게 선을 보인 ‘인간중독’은 베트남전쟁이 벌어지던 1969년, 엄격한 위계질서와 상하관계로 맺어진 군 관사 안에서 벌어지는 남녀의 은밀하고 파격적인 사랑을 그렸다. 개봉 전부터 ‘19금 멜로 마스터’ 김대우 감독의 신작, 그리고 배우 송승헌의 파격 변신이라는 사실만으로 시선을 모았다. 하지만 막상 베일을 벗고 나니 온주완의 연기가 꽤 잔상을 남긴다. 온주완은 김진평(송승헌)의 부하이자 종가흔(임지연)의 남편 경우진을 열연, 야비하면서도 귀여운 반전 매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평면적으로 보면 경우진은 당연히 날카롭고 무거워야 하는 캐릭터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니 두 사람(진평과 가흔)의 사랑도 무거운데 옆에서 거드는 저까지 무거워 버리면 관객이 영화를 감당하지 못할까 염려됐어요 . 그래서 다시 한 번 접근했죠. 생글생글 웃으면서도 우진이란 역할을 표현하는 게 가능할까. 근데 그게 되더라고요.”
“시대상을 반영해야 하니 준비가 쉽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누구를 참고하진 않았죠. 너무나 좋아하던 류승범 형의 연기를 따라 했다 실패한 적이 있거든요(웃음). 그건 그만이 낼 수 있는 색깔이라는 걸 깨달았죠. 모방을 한다고 색깔까지 가져올 수 없는 거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부족할지언정 최대한 제 것을 찾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고 스스로 캐릭터에 대해 많이 생각했죠. 감독님과 대화를 나누며 준비했어요.”
영화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혹시 진평과 가흔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는지 물었다. 영화 속 진평은 이성에서 조금 벗어난 ‘목숨을 건’ 위험한 사랑을 한다. “당연하다”고 단번에 답한 온주완은 사랑에 있어서는 진평을 100% 이해했다. 더욱이 그 역시 서른이 넘어 불같은 사랑을 해본 적이 있기에 진평의 마음을 헤아리기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그 덕에 ‘목숨을 거는 사랑’이란 주제로 격한(?) 논쟁이 오갔다.
“사랑에 눈이 멀면 아무것도 안 보이죠. 정말 일생에 한두 번 할까 말까예요.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이것저것 재면서 하는 건 사랑이 아니죠. 인류가 시작된 후 풀지 못하는 단어 중 하나가 사랑이래요. 수많은 사람이 사랑을 정의하지만, 사랑은 답이 없고 또 답도 못 내리죠. 사실 저도 앞으로 또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고요. 이게 후유증도 크잖아요. 방전된 마음이 충전되기란 쉽지 않죠. 저도 그 후로 아직 다른 사랑을 만나지 못했거든요. 사람은 사람으로 잊어야 한다고,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 하는데 전 그 말을 믿지 않아요. 마음이 사람을 비워내지 않는 이상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계절이 변하듯 지금 열정을 가지고 임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이런 캐릭터를 하는 거고 나중엔 따뜻하고 믿음직스러운 역할을 하겠죠. 사실 제가 영화를 하면서 벌어들이는 것보다 다른 일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더 클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 중심이 흔들리면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거죠. 제가 하고 싶은 일은 연기잖아요. 저를 보여주고 노력해서 깰 수 있는 연기를 보여 드리는 게 가장 큰 행복입니다.”
인터뷰 내내 진지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대화를 이끌던 그에게 이 자리는 일의 연장선이 아닌 듯했다. “사람들과 대화하고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하는 게 좋다”는 그다운 태도였다. 하나밖에 없는 누나의 인생 카운슬러를 자처한다는 온주완에게는 분명 단시간에 대화를 나누는 상대를 편하게 해주는 매력이 있었다.
“저 역시 20대 때 톱스타를 꿈꿨죠. 왜 시대의 아이콘을 꿈꿔보지 않았겠어요. 근데 30대 들어서는 좀 변했죠. 인정받고 싶어졌어요. ‘온주완 연기 잘하는 거 같아. 아니야, 온주완 연기 잘하네’ 그걸 꿈꾸고 가는 거죠. 온주완이랑 배우를 봤을 때 주연이든 조연이든 연기 잘하는 배우로 통하고 싶어요. 나아가서는 제 영화를 보고 누군가 헷갈렸으면 좋겠어요. ‘더 파이브’ 속 재욱과 ‘인간중독’의 우진을 같은 사람이 연기했다는 데 의심을 갖는 게 목표죠. 매칭이 안 되는 배우 말이에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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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강소연 기자 (kang1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