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바로잡자] 3부 떼법, 편법 그리고 준법투쟁
[뉴스핌=홍승훈 기자] # "장남이 진학을 원하는 고등학교 근처(후암동) 지인 집으로 배우자와 아들 주소를 일시 옮겼다."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은 지난 3월 24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자녀 교육문제와 연관된 위장전입으로 주민등록법을 위반한 사실을 시인했다. 강 장관의 배우자와 장남은 1997년과 2000년에 각각 이촌동과 후암동에 있는 지인의 집으로 전입했다.
강 장관은 또 미국에 유학중이던 87년 2월 구입한 과천 주택에 대해서도 양도세 면제기간을 채우기 위해 발령지인 부산으로 전입신고를 미뤘다는 의혹도 받았다. 1986년 4월 과천에서 부산으로 발령나 이사했음에도 이듬해 4월에야 부산으로 주민등록을 이전했기 때문이다.
위장전입은 고위 공직자의 인사청문회 때마다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사안이다. 주민등록법을 관장하는 주무부처인 안전행정부 장관마저 이를 어긴 내정자가 결국 임명됐다.
부동산 투기, 병역 비리, 탈세 등은 이른바 '청문회 3종 세트'라 불린다. 여기에 논문 표절까지 더해져 '4종 세트'가 되기도 한다. 국정의 중책을 맡겠다는 우리 사회 지도층이 국민에게 '준법'을 요구하기에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 의사협회는 지난 3월10일 집단휴진을 강행했다. 이어 같은달 24일 2차 집단휴진을 결행하려다 직전에 유보를 선언했다.
의협이 파업의 이유로 내세운 것은 정부가 추진하는 원격진료와 의료법인 영리자회사 허용 반대였다. 하지만 다수의 국민들은 왜 의사들이 파업을 하는지 어리둥절했다. 국민들은 이 사안이 자신들의 건강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오히려 의사협회의 요구사항에 포함된 '의료수가 현실화'에 더 주목했다. 동네병원 개원의들의 어려운 경영상황을 뻔히 아는 터라 가진 자들의 밥그릇 싸움, 떼법으로 인식했다.
결국 국민들의 의구심은 틀리지 않았다.
정부와 의협은 원격진료를 6개월간 시범사업을 시행한 후 그 결과를 입법에 반영하고, 의료법인의 진료수익이 편법으로 자법인에게 유출되지 않는 방안을 5개 의약단체가 참여해 논의토록하는 데 합의했다. 의협이 정부의 입장을 수용한 것이다.
대신 의료수가의 최종의결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의 공익위원을 정부가 임명해오던 것을 가입자와 의료계 동수로 추천하도록 했다. 의료수가 현실화는 협의에서 빠졌지만 수가결정구조에서 의료계가 지분을 좀더 확보하는 성과를 거둔 셈이다.
의료민영화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이 지난 3월 1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사협회-보건복지부 2차 밀실합의 규탄 및 의료민영화 정책 중단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 : 김학선 기자) |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법과 원칙, 상식을 무시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이 드러났다. 기준을 훨씬 넘어선 과적,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화물 고박, 관행으로 굳어진 정부당국의 부실한 관리감독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지켜진 것이 없었다.
참사 이후 한국사회는 '흔들리는 법치주의' 화두를 새삼 꺼내들고 있다. 소위 힘 있는 자들은 편법으로, 경제적 이해관계자들은 떼법으로 살아가는 사회, 법을 지키면 오히려 손해보는 '이상한 법치주의 국가'라는 사실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사실 법의 한계는 있다.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하고 구체적인 인간의 삶이다 보니 이를 모두 포괄하기에 법은 턱없이 거친 형식일 수 있다. 법 조문이 아무리 늘어나도 일상사의 미묘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모두 담아내기 힘들다.
하지만 국회를 보자.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2주만에 국회에 발의된 법안 중 선원법, 해운법, 선박안전법, 관피아 방지를 위한 공직자윤리법 등 세월호관련 법안이 36건에 달한다. 이 기간 발의된 153건 중 25%에 달했다. 지금 발의를 준비 중인 관련법까지 더하면 법안 홍수다.
이를 두고 세간에선 "대체 그동안 국회는 뭘 했는지 뒷북도 한참 뒷북이다. 더욱이 이번 참사 원인을 법의 부재에서만 찾으려 하고 정쟁의 도구로 활용하려는 국회에 무엇을 기대하겠냐"며 냉소를 보냈다.
관피아 문제만 하더라도 5년간 취업제한, 협회 등 산하기관 낙하산 방지법 등의 일차원적인 방법으로는 뿌리 깊은 유착관계를 해결하기 힘들다.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역임한 김병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는 "하루 이틀 문제도 아니고 끊는다고 끊어질 문제가 아니다. 커넥션이 있는 힘 있는 관료를 누가 가만 두겠나. 마음만 먹으면 연구소, 로펌, 회계법인 등 관피아가 가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는 무궁무진하다. 미국처럼 전현직관료 등 로비스트를 인정하되 행정과 정책, 사회의 투명성을 전반적으로 높이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 역시 법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며 법이 있어도 지키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회는 입법시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남발할 것이 아니라 필요한 법을 반드시 지킬 수 있게 하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법위반시 엄벌에 처하는 풍토와 현실이 필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토로했다.
임 교수는 "입법부는 법을 남발하고 사법부는 법 위반에 대해서도 온정주의로 대응한다. 이를 관리감독해야 하는 행정부는 관리감독에 소홀하다. 결국 입법 사법 행정 3부의 난맥상이 총체적으로 표출된 것이 세월호 참사"라고 정리했다.
결국 만연된 적당주의, 불법 탈법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관행의 결과로 국민들은 법 준수에 대한 의지를 잃게 됐다는 얘기다.
근대 이후 법치주의의 한계도 물론 있다. 감사원장을 지낸 한승헌 원로 변호사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부는 법과 원칙을 강조하지만 근대 이후 법치주의 본질은 집권자의 준법, 즉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지배되는 것이다. 권력자에 대한 상향적 견제가 법치주의의 본질이란 얘기"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한국에선 앞뒤가 바뀌어 집권자가 국민을 지배하는 수단으로서의 법만 강조됐다는 게 이 원로의 지적이다.
그는 "이번 참사는 정부, 그리고 정부와 유착된 집단이 법을 어겨 국민 생명이 희생된 것"이라며 "정부의 준법이 우선시돼야 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라고 일갈했다.
결국 다수의 국민이 법 준수 의지를 잃게 된 주된 요인이 국민 보다는 정부, 권력자, 재벌 등에 우선시돼 왔던 한국의 법 해석, 법치주의라는 얘기다.
누구는 법을 '거미줄과 같다'고 한다. 큰 짐승은 걸려도 이를 뚫고 지나고, 작은 것들만 걸려 거미에 잡혀먹히는 소위 '무전유죄, 유전무죄'와 같은 상황을 빗댄 말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더 이상의 준법만을 국민에 강조하기 힘들다.
경영권을 자녀에게 물려주기 위해 끊임없이 자행되는 편법 탈법적 증여, 아무렇지도 않게 이뤄지는 아파트 불법개조 관행, 국내 최대 은행에서 30여년을 근무하고도 단순한 금융상품 구조를 몰라 손해를 봤다며 떼쓰는 거액 개인투자자.
다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최소한의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같은 문제들에 대해 어떤 것이 옳은 지 안다. 눈 앞의 이익을 위해 법과 상식을 무시하면 그 피해가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기 위해 대체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사고를 겪어야 할까.
[뉴스핌 Newspim] 홍승훈 기자 (deerbear@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