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법칙과 케인즈 유효수요론대로 안 움직여…가처분 소득 제자리, 비이성적 심리 때문
[뉴스핌=한태희 기자] 현실은 이론과 다르다? 정부가 경제 이론대로 주택정책을 펴고 있지만 시장은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주택 공급이 부족했던 지난 2000년대 초반엔 정부가 공급을 늘렸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수요가 부족하자 정부가 세 부담을 낮추고 대출 규제도 완화했다. 케인즈 일반이론에 따른 조치였다.
하지만 정부 정책은 미분양주택 증가와 하우스푸어 문제를 초래했다. 경제학계 교수 및 연구원들은 가처분 소득이 낮아 수요가 늘지 않고 있다고 해석한다. 케인즈 이론의 필요 조건인 유효수요가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집값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주택 수요자들의 심리도 한 몫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15일 경제학계 교수 및 연구원에 따르면 정부가 공급을 늘려 수요를 창출하는 '세이의 법칙'과 케인즈 이론에서 설명하는 유효수요를 늘리기 위한 재정확대 정책을 펴고 있지만 시장에선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세이의 법칙은 '공급이 스스로 수요를 만들어낸다'는 이론. 즉 공급이 증가하면 수요는 자연적으로 늘어난다는 설명이다. 단 잠재수요가 풍부할 때만 '세이의 법칙'이 작동한다. 주택산업연구원 권주안 선임연구원은 "집을 가지려는 사람이 많은데 주택이 부족한 때는 공급하는 대로 수요가 붙는다"고 설명했다.
케인즈이론은 유효수요가 부족할 때 정부가 재정확대 정책을 펴 수요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 잠재수요 혹은 유효수요를 자극해야 한다는 게 세이의 법칙과 케인즈 이론의 교집합이다.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주택정책은 이들 이론과 부합한다. 지난해 '4.1주택대책'에서 선보인 생애최초 주택담보대출을 시작으로 '8.28 전월세 대책'에선 취득세 영구 감면과 1%대 공유형 모기지 담보대출을 내놨다. 모두 수요를 자극하기 위한 정책이다.
한국경제연구원 송원근 공공정책연구실장은 "정부가 지난해 내놓은 주택시장 대책들은 대부분 주택 매매 수요를 늘리는 방안이었다"고 설명했다. 국토연구원 박천규 부동산시장연구센터장은 "유효수요를 창출하는 게 케인즈안"이라며 "세금과 이자 비용을 줄여주는 정부 대책은 수요를 자극하는 대책이었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스스로 하우스푸어라고 생각하는 가구는 1000만원 벌면 200만원 넘는 돈을 빚 갚는데 사용했다. 이들의 DSR(소득 대비 대출 원리금 상환비율)은 평균 29.21%다. (자료:주택산업연구원) |
하지만 주택 잠재수요는 움직이지 않고 있다. 회복될 듯하면서도 큰 움직임이 없는 상태다. 경제학계 교수는 소득이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들은 특히 가처분 소득 문제를 지적한다. 가처분 소득은 개인이 이자와 세금을 내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소득을 말한다.
정부가 대출 문턱을 낮추고 이자 부담도 줄이고 있지만 가처분 소득은 제자리 걸음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가구당 처분가능소득(소득에서 비소비 지출을 제외한 비용)은 월 평균 338만1000원으로 지난 2012년 보다 6만4000원 늘어난 정도다.
현대경제연구원 박덕배 연구위원(성균관대 경제학과 겸임교수)은 "소형 주택에 대한 잠재수요가 깔려 있는데 지금은 소득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기본적으로 소득 증가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집값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주택시장이 정상화하지 못하는 한 이유로 꼽힌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인간의 비이성적인 심리가 시장에 이론보다 더 큰 영향을 준다고 설명한다. 집값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심리가 확산되면 시장에선 거래가 위축된다는 설명이다.
정부도 심리개선에 나서고 있지만 역부족인 셈이다.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해 '4.1주택대책'을 발표한 후 "(주택) 거래 활성화를 위해 '더 이상 떨어지지 않는다'는 기대심리가 생길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뉴스핌 Newspim] 한태희 기자 (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