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강소연 기자] 영화 예고편 속 매서운 눈빛에 사로잡혔다. 찰나였지만 강렬했다. 그러니 영화가 베일을 벗었을 때 그에게 매료되는 건 당연했다. 황해도 사투리를 천연덕스럽게 구사하는 것은 물론이고 무당의 공수(신의 말)와 심금을 울리는 무가까지 무리 없이 소화해 냈다.
배우 류현경(31)이 영화 ‘만신’을 통해 숨겨놓은 또 다른 매력을 한 꺼풀 드러냈다. 어린 시절부터 오랜 시간 연기를 해온 그는 그간 장르는 물론이거니와 상업영화와 저예산 독립 영화를 가리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그의 필모그래피는 이미 다양한 작품, 다양한 모습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또 새롭다.
‘만신’ 개봉을 앞둔 어느 날 류현경을 만났다. 가까이서 마주한 그는 생각보다 훨씬 에너제틱하고 친화력 있는 배우였다. 인터뷰에 임하는 류현경은 마치 오랜 친구와 수다를 떨 듯 꾸밈없고 솔직했다.
“김금화 선생님을 통해서 이야기를 만들려는 감독님의 정성이 너무 감동적이라 무조건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배우들이 많이 안 나와서 아쉬워하는 분들도 간혹 있는데 사실 선생님의 삶 자체가 영화거든요. 애초에 선생님 다큐 찍은 후에 재연 부분을 드라마로 해야겠다고 해서 극이 만들어진 거죠. 그러니까 원래대로 나온 거예요(웃음).”
극중 류현경은 극심한 무병에 시달리던 유년시절을 지나 마침내 신내림을 받고 무당의 길로 들어선 새만신을 열연했다. 그는 2년에 달하는 제작 기간 동안 매 계절 드문드문 촬영에 임했다. 특히 한여름 진행된 내림굿 신을 위해 직접 김금화 만신의 제자들에게 내림굿을 배우기도 했다.
“볼 때는 되게 물 흐르듯 잘하시니까 순조롭겠다 생각했는데 에너지를 정말 필요로 하더라고요. 체력적으로 힘들었죠. 액션신을 한 달 정도 찍는 에너지를 쏟았어요. 그래도 보고 나니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연습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죠. 선생님에 비해 잘 못한 거 같아 걱정이에요.”
류현경은 신내림을 받는 장면을 찍으면서 왠지 모르게 가슴이 찡해졌다고 털어놨다. 사람들을 용서하고 치유하는 열일곱 소녀에 대한 여자로서 연민이자 김금화 만신에 대한 존경심이리라. 많지 않은 분량일지라도 그는 이번 영화를 통해 확실히 얻은 게 많다.
“‘사람들 몸의 병, 마음의 병 씻겨주는 큰 무당이 되겠다’는 대사가 있어요. 참 와 닿았죠. 배우 역시 사람들 마음의 고통을 씻어낼 수 있는 직업이잖아요. 그래서 좀 소름도 돋고 자부심도 느꼈죠. 그런 사람, 배우가 돼야겠다고 다짐도 했고요. 물론 무속신앙에 관심조차 없는 상황에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어요. 우리 것을 너무 쉽게 잊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영화 ‘깊은 슬픔’(1997)에서 배우 강수연의 아역으로 데뷔한 류현경은 어느덧 데뷔 17년 차 배우다. 손가락으로 데뷔 햇수를 새던 그는 “그렇게나 됐느냐”고 되물으며 눈을 크게 떴다. 한 가지 일을 그 정도 하면 질릴 법도 한데 아직 영화관에만 가도 가슴이 쿵쾅쿵쾅 뛴다며 얼굴이 상기된다.
“어렸을 때는 그냥 촬영장 가는 게 재밌었어요. 연기를 평생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영화 ‘신기전’(2008) 때부터니 이제 겨우 6년 차나 진배없죠. 그래도 영화가 정말 좋은 건 변함 없어요. 아마 배우 안 했어도 영화를 위한 일을 했을 거예요. 초등학교 땐 눈앞에서 다양한 삶이, 세상이 펼쳐지는 게 좋았죠. 그러다 처음 영화를 찍게 됐는데 신 하나에 엄청난 정성이 들어간다는 게 놀라웠고요. 그 위대한 작업에 제가 포함돼 있으니 정말 행복해요.”
오랜 연기생활을 하는 동안 그의 나이도 어느덧 서른을 넘겼다. 이제 뭔가 달라진 게 있느냐는 질문에 “그냥 오늘도 조금씩 잘 견디고 있구나, 잘하고 있구나 싶다”며 유쾌하게 웃었다.
“좀 더 많은 것을 알게 됐고 생각이 많아졌어요. 좋은 거죠. 예전엔 그냥 1만 고민했다면 이제는 5까지 고민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또 작품이나 결혼 등에 있어서 안정하고 싶고요. 일도 열심히 하고 자연스럽게 가정을 꾸리고도 싶죠. 무엇보다 ‘나이를 잘 먹어야겠다, 좋은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크고요. 또 하나, 영화에 임했을 때 온 마음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 변하지 않았으면 해요. 죽을 때까지! 되게 강렬하죠?(웃음)”
"취미요? 등산만한 게 없어요." |
[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강소연 기자 (kang1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