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주연 기자] 지난 2011년 관객의 오감을 자극했던 영화 ‘완득이’의 이한 감독과 김려령 작가가 또 한 번 의기투합했다. 물론 두 사람의 시너지는 이번에도 제대로 발휘됐다.
마트에서 일하며 생계를 책임지는 엄마 현숙(김희애)은 주책 맞을 정도로 쿨하고 당당하다. 언니 만지(고아성) 역시 남의 일엔 당연히 관심 없고 가족 일에도 무덤덤하다. 그런 엄마와 언니 사이에서 착하고 살가운 역할은 언제나 막내 천지(김향기) 몫이다. 그런데 밝은 모습으로 언제나 옆에 있을 거라 생각했던 천지가 아무 이유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갑작스러운 천지의 죽음으로 당황하는 것도 잠시, 현숙과 만지는 천지가 없는 삶에 익숙해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천지의 친구들을 만난 만지는 가족들이 몰랐던 천지의 숨겨진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동생이 죽은 원인 한가운데 천지의 절친 화연(김유정)이 있음을 직감한다. 그렇게 만지는 천지가 남기고 간 메시지를 찾아 나선다.
평범했던 열네 살 동생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집단 따돌림, 즉 ‘왕따’라는 틀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생소한 소재가 아니니 어쩌면 관객은 미리 정답을 정해놓은 채 지루할지도 모를 상황. 하지만 감독은 무거운 소재를 담담하게 풀어가며 관객의 마음을 함께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영화는 날카로운 사회문제와 정면으로 마주하지만, 결코 자극적이지 않다. 그러면서도 전달해야 할 주제는 비교적 명확하게 잡았다. 이 감독은 인물들을 통해 소통의 부재, 무관심과 방관이 얼마나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지 지적하고, 극 전반에 걸쳐 노련하게 관객을 타이른다.
‘완득이’에서 호흡을 맞췄던 유아인의 출연은 신의 한 수였다. 최근 쟁쟁한 스타들의 카메오 출연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유아인 만큼 큰 임팩트를 남긴 이는 없는 듯하다. 이 감독은 유아인을 등장시킴으로써 무겁게 가라앉을 수 있는 영화에 소소한 웃음을 선사, 극의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또한, 보통의 카메오와 달리 단순한 등장에 그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또 다른 키플레이어로 활용했다는 점도 재밌다.
영화는 앞서 살짝 언급했듯 생각보다 감정이 크게 터지지는 않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들 모녀의 뜨거운 포옹과 그들이 흘리는 눈물은 작지만 큰 여운을 남긴다. 때문에 이야기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면 어쩐지 마음이 가벼우면서도 무겁고, 쓰라리면서도 따뜻해진다.
게다가 ‘꽃누나’ 김희애의 21년 만의 스크린 복귀, 평범한 소녀로 돌아온 고아성의 안정적인 연기,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김향기의 열연, 청순 발랄한 김유정의 캐릭터 변신 등 배우들의 호연이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영화 사이사이를 무리 없이 채웠다. 13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