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강한 체질 vs. 신흥국 위기 확산
[뉴스핌=한기진 기자] 코스피가 이틀새 50포인트 이상 추락, 1880대로 내려앉자 ‘저점 매수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신흥국 위기 속에 안전판은 한국”, “코스피가 PBR 1배 이하로 떨어졌으니 회복할 수밖에 없다”,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등으로 배경 논리가 솔깃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떨어지는 칼날은 잡는 게 아니다'라는 증시 격언도 무시하기 어려운 게 지금 분위기다. “외국인 입장에서 한국은 신흥국 범주에 포함되기 때문에 증시 불안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있다.
◆ “저점 확인 과정의 연장선”
4일 코스피 시장에서 외국인은 연중 최대인 6600억원을 팔아 치우며 2거래일 동안 1조원을 빼냈다. 이로써 새해들어 2조7000억원 가량을 순매도했다. 외국인이 쏟아낸 매물을 사들이는 곳은 개인들과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 이날도 기관이 2651억원, 개인이 3661억원, 연기금이 1571억원 매수했다.
배성영 현대증권 연구위원은 "현재 저점 확인 과정의 연장"이라며 "글로벌 증시를 지지했던 미국증시마저 빠지며 글로벌 증시 전반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업종별로는 비금속광물만 강보합세를 보였으며 증권, 통신 등이 2%대 내렸다. 시가총액 상위 20개 종목 중 기아차만 상승했다. 승승장구하던 SK하이닉스, SK텔레콤 등도 3~4%대 하락했다.
김병연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아시아 주요국 증시가 일제히 내렸으며 미국 쪽에서도 돈이 빠져나가고 있다"며 "엔화가 다시 강세로 가고 있는데 변동성 국면이 지나가면 눌러있던 자동차주가 다시 상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저가 매수 옹호 편의 자신감의 큰 배경은 우리나라가 안정적인 경상수지, 재정상황, 경기회복세 등의 근거가 있다.
양해정 이트레이드증권 애널리스트는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이 이슈화된 지난해 6월 이후 한국시장은 뚜렷하게 신흥시장과 선진시장의 중간경로에 있었다”면서 “지금의 위험 오프 국면이 지나고 시장이 안정을 찾을 경우 한국시장의 중간자적인 경로는 지난해 6월처럼 외국인의 시각에서 부각되고 꿈쩍 않던 환율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도 투자기회를 만들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지난 2년간 1800~1850포인트대가 박스권 하단으로 지켜졌다는 점도 추가 하락보다는 반등을 준비해야한다는 주장의 근거다.
◆ “입버릇 같은 국내 증시 저평가, 기업실적 회복돼야 현실화”
하지만 지수가 더 빠질 수 있다는 회의론도 많다. 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신흥국 위기 속에서도 펀더멘탈이 양호한 한국은 양호할 것이란 판단으로 14조원을 연속으로 샀던 외국인이 이제 손실권에 진입한 것 같다”며 외국인 손절매를 우려했다.
실제로 우리 증시의 차별성을 기대하기보다 글로벌 금융시장 전반의 변동성에 휩싸일 것이란 우려도 설득력이 있다.
우선 신흥국 위기가 작년에 ‘우려’ 수준에서 이젠 ‘국가 부도’ 가능성까지 확대됐다는 점이다. 미국이 올해부터 유동성을 실질적으로 축소했기 때문이다. 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는 양적완화 규모를 작년 12월 FOMC에서 100억달러를 줄인 데 이어 올 1월에 만장일치로 100억달러를 축소, 월간 자산매입규모를 650억달러로 감축기로 했다. 매달 100억달러씩 줄여 올 10월까지 양적완화 축소를 계속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 때문에 IMF기준 단기외채/외환보유액, 경상수지/GDP비율을 볼 때 터키는 모든 기준을 초과해, 국가부도사태가 현실로 다가왔다는 평가다. 다음이 남아공, 아르헨티나가 거론된다.
조용환 비엔지증권 애널리스트는 “위기 수준을 넘어서 일부 국가가 디폴트 선언에 이르면 신흥국내 국내 증시의 차별성 기대 역시 불가능한 영역으로 보인다”면서 “신흥국 중 하나의 국가가 구제금융 지원 요청에 나선다면 그다음은 누구라는 식의 살생부는 신흥국의 투자 위축이 지속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게다가 미국 증시가 조정 없이 급등한 점 때문에 이를 뒷받침할 기업 실적이 나오지 못하면 차익실현 욕구가 늘어, 안전자산으로 다시 갈아타는 분위기로 신흥국을 또다시 괴롭힐 것이란 분석이다.
또 우리 기업의 실적이 악화할 것을 전망돼 금융시장 버팀목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중국 경기 둔화 우려도 같은 연장선이다.
조용환 애널리스트는 “외국인이 선호하던 삼성전자의 성장동력이 정체된 상황에서 국내 증시의 저평가라는 화두가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실적전망 오차 축소와 맞물려 수익 회복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뉴스핌 Newspim] 한기진 기자 (hkj7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