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주연 기자] 특별한 기대는 없었다. 누가 봐도 삼류 건달의 순애보 사랑을 담은 신파극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순식간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갔다.
사채업자 부장 태일(황정민)은 동네 시장을 쥔 삼류 건달이다. 아직도 형 집에 얹혀살며 조카한테 삥 뜯기는 남자지만, 빌려준 돈만큼은 확실하게 받아오는 프로(?)다.
그는 채권회수 때문에 우연히 만난 호정(한혜진)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러나 고백부터 데이트까지 태일의 사랑은 서툴기만 하다. 호정에게 느끼는 감정이 사랑임을 알아챈 후 가장 먼저 한 행동도 사채거래 하듯 각서를 내민 일이다. 자신을 만날 때마다 빚을 제해주겠다는 다소 황당한 제안과 함께. 게다가 애정 표현이라고 해봤자 라면 위에 만두를 툭 던지고 요구르트 가득한 봉지를 건네는 게 전부다. 사랑한다는 달콤한 고백 뒤에도 XX이란 욕설이 항상 따라붙는다.
그래도 딱 하나,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진실하고 깨끗하다. 호정 역시 자꾸 이상한 방식으로 다가오는 태일의 서툰 사랑에 점차 마음을 연다. 하지만 행복할 거라 생각했던 그 순간, 예상치 못한 시련이 닥친다.
앞서 말했듯 영화의 스토리는 뻔하고 물린다. 처음부터 끝까지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채 러닝타임(120분)을 채운다. 그럼에도 사랑의 아름다움과 저릿한 슬픔은 스크린을 가득 채우며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어디서 눈물을 노렸는지 알면서도 눈 뜨고 당한다. 관객은 자신도 모르는 새 감정의 격량에 휩싸인다.
식상해 보이는 이야기가 설레고 애잔한 로맨스가 될 수 있었던 건 주연 배우 황정민의 공이다. 거칠지만 따뜻한 정청(영화 ‘신세계’)과 순수하고 우직한 석중(영화 '너는 내 운명')의 모습이 수차례 겹침에도 새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역시 황정민의 연기력이다.
“멜로 장르가 사라지는 듯해 안타까웠다”던 황정민은 직접 감독 섭외에 나섰을 정도로 이번 작품에 애정을 보였다. 그리고 영화에 대한 그의 마음은 스크린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힘을 줄 때와 뺄 때를 확실히 아는 황정민의 연기는 흠 잡을 데 없다. 그는 태일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눈빛과 몸짓 하나에까지 진정성을 담았다. 여기에 한혜진, 곽도원, 정만식, 김혜은, 남일우, 김병옥 등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가 더해지며 이야기에 힘을 보탠다.
어딘가 하나씩 결핍된 가족 구성원들과 이들의 뒤틀린 사랑 방식 역시 관객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요소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 만나기만 하면 치고받기 바쁜 형제, 욕 빼면 할 말이 없는 철딱서니 없는 조카까지. 그러나 관객은 남들이 손가락질할지언정 서로에게만큼은 더없이 애틋한 그들에게서 ‘진짜 가족’의 정을 확인하게 된다. 22일 개봉. 15세 관람가.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