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판매’ 뒤로 숨은 금융감독원
[뉴스핌=김선엽 기자] “그래요, 자세히 살폈으면 곰팡이가 있는 줄 알았겠죠. 제대로 안 보고 집어삼킨 제 잘못도 분명 있어요. 하지만 이렇게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이라니, 너무한 거 아닌가요”
지난 3일 성북동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일가 자택 앞에 모인 투자자들은 하나같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들의 딱한 사정을 일일이 옮길 생각은 없다. 또한 비극을 자초한 경우도 꽤 있어 보인다.
'안전한 상품'이란 증권사 직원의 말을 안면이 있다는 이유로 덥석 믿었거나, 높은 금리가 좋아서 신용등급을 흘려들었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문제는 잘못의 경중과 책임의 범위다.
만약 투자자들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고 증권사의 잘못이 100%라면 지금과 같은 논란은 발생하지도 않았다.
무죄인 자는 구제받고 유죄인 자는 처벌받으면 그만이다. 금융감독원의 '불완전판매' 논리가 그러하다.
그러나 세상살이가 꼭 그렇지가 않다. 누구나 '조금씩은' 잘못을 한다. 100% 무죄인 자는 드물다.
그렇다고 순간의 판단 착오로, 수년간 한 푼 두 푼 모은 돈을 한 방에 날려야 할 정도로 투자자들의 귀책사유가 커 보이지도 않는다.
불량식품을 함부로 먹고 하루 이틀 복통을 겪었다면, 당사자도 자기 실수라며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그러나 부주의하게 음식 한 번 잘못 먹었다가 몸 어디 하나를 영영 못 쓰게 된다면 불량식품 판매자는 물론이고 관리당국도 책임을 져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 놓쳐서는 안되는 특징이 개인투자자 중 상당수가 노인이거나 여성이란 점이다.
이날 성북동 모임에서도 30~50대 남성의 모습은 드물었다. 금융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는 이들의 피해가 상당한 것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전국민을 상대로 경제·금융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는 공자님 말씀을 늘어놓기에는 투자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상처가 이미 너무 깊다.
물론 자본시장에서 정보비대칭은 불가피하다. 누군가는 그것을 이용해 돈을 벌고 누군가는 눈물을 흘린다. 그 때문에 자본시장이 굴러간다. 그러나 작은 정보의 차이가 승자와 패자의 간극을 지나치게 넓혀서는 안 된다.
그러한 불합리와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 감독당국이 존재하고 금감원이 하루가 멀다하고 증권업계로부터 보고서를 받아내는 것이다.
그럼에도 금감원은 '100% 무죄인 피해자만 구제하겠다'는 것인지, 개념도 모호한 '불완전판매' 뒤로 숨어버렸다.
하지만 "불완전판매는 구제받을 것이다"라는 뻔한 발표는 굳이 금감원이 아니어도, 현행법 하에서 당연한 얘기들이다.
권한에는 책임이 따른다. '불완전관리'의 책임, 누가 질 것인가.
[뉴스핌 Newspim] 김선엽 기자 (sunu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