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 보존하고 계약직 위주로 무더기 구조조정
[뉴스핌=한기진 정경환 기자] # D증권의 서울 모 지점에 근무하는 김 차장은 올 초 본사로부터 교육을 받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영업 관련 자격증을 따라는 강의도 아니었고, 지점에서는 김 차장만이 대상자였다. 이유는 영업실적 평가에서 수년째 하위 10%에 들었기 때문이다. PRP(Performance Rebuilding Program)라는 재교육 프로그램 이수 조치를 받은 것이다. 김 차장은 “회사 내부에서 구조조정 소문이 돌고 있어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교육을 거부할 수 없어 걱정이 앞섰다”고 말했다.
# K증권은 ‘금융상품법인팀’이라는 부서를 새로 만들었다. 채권인수 등 법인영업을 주로 하는 부서다. 최근 시장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이라 업계 선두권인 대형사도 영업 목표의 50%를 못 채울 정도다. 이 부서에 인사고과가 나쁜 직원들이 집중적으로 배치되고 있어 말이 많다. '밀어내기식 인력 구조조정'이라는 지적이다. 이 증권사 한 직원은 “어차피 영업 성과가 나오지 않는 부서에서 일해봤자 인사고과 올리는 것은 불가능해 발령받으면 나가는 직원들이 많은 편”이라고 전했다.
증권가에 인력 구조조정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멀리보면 지난 2008년 리먼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증권가 구조조정은 상시화되고 있다. 그나마 금리 하락 덕에 유지되던 실적이 금리 상승 전환으로 인해 쇼크를 받았다. 이에 증권가의 구조조정이 좀 더 거세질 것이라는 비관론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증권가 구조조정에서 특이한 현상이 관찰됐다. 지점 통폐합, 본점 부서 개편 등으로 젊은 직원들이 회사를 떠난 데 반해 높은 연봉을 받는 임원 자리는 소폭 조정에 그쳤다. 오히려 회사별로는 임원을 늘린 곳도 있다. 모기업이나 관료 출신 인사를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는 불만도 나온다. 직원 20명당 임원 1명인 증권사도 있었다.
◆ 증권맨 4만명대 사실상 붕괴20일 뉴스핌이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과 각 증권사의 사업보고서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증권업(외국계 포함) 종사자가 가장 많았던 시기는 2011년 12월말로 4만 4055명(임원, 직원, 기타 포함)이 일했다. 이중 임원(등기, 비등기, 감사 포함)이 1093명으로 임원과 직원(4만 2628명)의 비율은 1 대 39명이었다.
증시 침체가 시작되자 직원들이 떠나기 시작했다. 올 3월 말 기준 종사자는 4만 2317명으로 줄었다. 1년여만에 3000여명이 업계를 떠난 셈이다. 임원과 직원 비율은 1017명 대 4만971명으로 1 대 39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회계년도 마감 이후 지난 4월부터 증권사들이 구조조정을 본격화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증권업 종사자는 3만명대로 떨어졌을 것이 확실시된다. 증권업계가 직원 4만 명 시대를 2010년 6월 말 개막했으나 불과 3년 만에 예전으로 돌아가게 된 셈이다.
종업원 300명 이상 22개 증권사(유진투자증권 제외)의 6월 말 기준 반기보고서를 보면 직원 수가 3만 190명으로 3월말에 비해 730여명 감소했다. 불과 3개월 새 작년 한 해 동안 이탈한 직원의 5배가 넘는 규모가 줄은 것이다.
◆ 해고 1순위 비정규직, 이미 16% 줄어주로 업계를 떠난 이들은 해고가 자유로운 계약직이었다. 가장 많이 일할 때 8211명(2011년 3월 말)이었지만 올 3월 말에는 6900명으로 16%나 감소했다.
반면 임원의 자리는 큰 변화가 없다. 2010년 3월에 임원 1000명 시대를 연 뒤, 올 3월에 1017명으로 오히려 소폭 늘었다.
IBK투자증권이 직제 개편을 통해 18명이던 임원을 8명으로 모양새만 바꾼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1027명이다. 가장 많았을 때(1093명, 2011년 12월)와 비교해도 6% 정도 준 것에 불과하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계약직원 위주로 구조조정을 하면서 임원 수는 그대로 놔두고 있고, 일부 증권사는 (임원을) 오히려 늘리고 있다”면서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는 임원 자리를 만들어 주고 관료출신 임원을 만들어 놓는 일도 많다”고 성토했다.
[뉴스핌 Newspim] 한기진 기자 (hkj7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