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데자뷔…오염된 '내부 출신'의 의미
[뉴스핌=노희준 기자] "그 얘기가 3년 전에도 있었는데, 3년을 더 있어도 똑같이 나오고 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10년을 더 있어도 동일한 얘기가 나올 것 같다. 사람들이 왜 그러는지…"
KB국민은행장 후보로 막판까지 경합을 벌였던 윤종규 전 KB금융 부사장의 지난 7월초 얘기다.
당시 윤 부사장에게 '이미 내부 인사라는 평도 있지만, 여전히 외부로 보는 시각도 있다'고 묻자 돌아온 대답이었다.
윤 전 부사장은 지주 부사장으로 어윤대 전 회장에게 영입됐던 2010년에도 행장 후보로 거론됐던 인물이다.
하지만 이미 김정태 전 행장 시절 3년(2002~2005년)을 KB에 몸담고도 '외부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해 '내부 인사'가 필요한 당시 어 회장의 눈에 들지 못했다.
KB금융과 국민은행에 '임영록-이건호'라인이 구축되는 과정에 기시감(旣視感)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관치논란'과 '노사 양측의 정형화된 투쟁'뿐만이 아니다. 바로 '내부 출신'이라는 오염된 프레임도 그중의 하나다.
회장과 행장 선임 때마다 강조되는 '내부 출신'(중용)논리는 의미가 있다. 내부에서 리더를 배출하는 것은 직원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동기부여를 한다.
젊음과 청춘을 바쳐 한 조직을 성장시키고 싶은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로열티를 강화한다.
하지만 '내부 출신'(중용) 논리가 이상하게 금융권에서는 '내 새끼니까 돼야 한다'는 단순한 배타적 논리로 변질됐다.
여기에는 분명 '관치'논란이 일정 부분 작용하고 있다. '관치'에 대한 일종의 반발과 반작용이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국민은행에서는 '내부 출신' 논리가 1채널(옛국민)과 2채널(주택)간의 '나눠먹기'로 인한 실력파 내외부 인사의 희생과 정당한 인사 평가를 은폐하기 위해 '동원'되는 측면이 적지 않다.
가까운 예로 이번 '포스트 어윤대' 체제를 꾸리는 'KB대권 레이스'에서의 일이다. 노조가 당시 민병덕 행장을 밀고 임영록 사장과 이동걸 전 신한금융투자 부회장을 반대하는 내부 소식지를 돌렸을 때, 직원들은 물론 노조 내부에서도 이견이 있었다.
"내부 소식지(언론에는 성명서라 소개됐음)라고 하나 굉장히 바이어스(편향)돼 있다.
아무리 내부 직원의 희망까지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공정하지 못하다. 소식지 내용에 동의하지 못하고 있다." 노조 한 관계자가 당시 기자에게 털어놨던 내용이다.
노조는 'KB 대권 레이스' 때 KB금융에 대한 지난 3년의 경영 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는 게 적확한 표현이다.
노조가 밀었던 당시 민 행장에게도 결국 화살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인데, 이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이 때문인지 노조의 주장을 두고 "결국 내 새끼가 돼야 한다는 이유밖에 안 된다"는 혹평이 당시 KB내부에서 흘러나왔다.
행장 선출 과정에서도 노조는 윤 전 부사장을 두고도 "순수혈통 면에서 보면 내부 출신이라 보기 힘들다"고 규정했다. 2013년에 '혈통'을 운운한 것이다.
이런 오염된 '내부 출신'논리의 남용은 '낙하산'이 내려오는 것 못지않게 구성원에게 열패감을 안겨준다.
자신의 의지와 후천적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을 문제 삼아 자신을 재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종의 낙인이다.
"부행장으로 올 때도 노조에서 물러나라 했다. 그런데 와서 2년 동안 부행장으로 일했는데도 아직도 외부인이라 하면 무슨 할 말이 없다.
지금 와서 고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이 행장이 행장 후보로 급부상할 당시 '외부출신' 논란에 대해 기자에게 꺼냈던 말이다.
진정한 내부 출신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할까. 임 회장(3년)과 이 행장(2년)뿐 아니라 윤 전 부사장(6년)의 경우를 봐서라도 기간 문제는 아니다.
6년은 안 되고 7년이 될 이유가 없고, 7년은 안 되고 8년이 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진정한 '내부 출신'(중용)의 논리는 단순히 근무 기간이나 배타적 '기득권 지키기' 차원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이전의 다른 경험 등에 기초하더라도 조직의 핵심을 꿰뚫고 당면한 과제를 시행착오를 줄여가면서 풀어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사가 필요하다는 의미여야 한다.
박병권 노조위원장이 전날 "관치금융으로 행원이 은행에 들어와 행장이 되는 꿈을 잃게 됐다"고 했다.
이 행장은 노조 반발을 두고 2년 전부터 계속해서 "식구(가족)로 받아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행장의 꿈'과 '가족의 꿈', 그 어느 것이 지금 KB에게는 필요한 것일까.
[뉴스핌 Newspim] 노희준 기자 (gurazi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