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경영합류이후 제일기획의 글로벌화 진두지휘
[뉴스핌=이강혁 기자] 재계가 최근 창조경제의 연장선에서 주목하는 여성 경영인이 있다. 주가를 올리는 인물은 바로 이서현(41·사진) 제일모직·제일기획 부사장이다. 아직은 경영수업이 끝나지 않은 미완성 후계자의 신분이지만 그의 행보는 삼성의 창조경영 방향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2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이 부사장은 부친인 이건희(72) 삼성전자 회장의 강조점인 창조경영과 가장 부합하는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분야를 넘나드는 경영현안에서 다양한 실험정신과 추진력으로 창조적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화 진두지휘..경영전략 짜며 신성장원 발굴
지난 23일(현지시간) 프랑스에서 폐막한 '2013 칸 광고제'는 이 부사장의 성과가 잘 보여진 부분이다. 그가 지난 2009년 기획담당으로 경영에 합류한 이후 '제일기획 글로벌화'를 진두지휘하며 만들어낸 변화이기 때문이다.
제일기획은 이 광고제에서 한국 본사뿐 아니라 미국, 독일, 영국 등 제일기획이 인수·설립한 전 세계 법인까지 다수 수상하며 총 20개의 상을 휩쓸었다.
한 임원은 "국내 수성이지만 세계무대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내지 못하던 제일기획이 이 부사장의 글로벌 전략 이후 전 세계 어떤 광고주에게 어필할 수 있는 톱 광고그룹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일기획의 글로벌 광고 회사 순위는 현재 15위다. 이는 지난 2010년 19위에서 4계단 올라선 결과다. 이 부사장이 미국 맥키니와 중국의 브라보와 같은 유명 광고사를 잇따라 인수하는 등 글로벌화를 위한 적극적 투자에 나섰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다.
이번 광고제의 그랑프리 수상 역시 2009년 인수한 미국 디지털 광고회사 '더 바바리안그룹'이 출품한 '신더(Cinder)'가 차지했다. 신더는 디지털 크리에이터를 위한 소프트웨어로, 디지털 광고물에 적용되는 터치 기술이나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키오스크 등의 소프트웨어 개발에 유용한 프로그램이다.
이 부사장은 제일모직의 성장에도 다양한 전략으로 창조적 역량을 발휘하는 중이다. 그는 현재 경영기획담당을 맡고 있다. 제일모직에 '글로벌 DNA'를 입혀가며 사업은 물론 기업문화까지 빠르게 바꿔가고 있다.
2005년 임원으로 제일모직 경영에 합류한 이 부사장은 패션부문의 선택과 집중을 통해 글로벌화를 추진하고 있고, 최근에는 전자재료 영역으로 소재부문의 신성장원을 넓혔다.
그가 3년여 기간 동안 세심히 공들여 론칭한 '에잇세컨즈'는 패션 사업부문의 신성장동력원으로 빠르게 성장 중이다. 최근에는 빈폴 아웃도어를 신성장의 한 축으로 키우는 중이다.
전자재료 부문에서도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꼽히는 유기발광 다이오드(AMOLED) 핵심소재 생산을 시작하는 동시에 해외 전자소재 기업 인수에도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제일모직 관계자는 "패션사업의 불필요한 부분은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한편, 에잇세컨즈의 SPA브랜드와 빈폴 아웃도어를 패션사업의 신성장원으로 집중하자는 전략"이라며 "소재에서도 전자재료에서 차세대 기술개발을 위해 이 부사장이 연구원 등 직원들과 스킨십을 강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타고난 예술적 감각, 경영과 만나 창의성 높인다
이 부사장은 이 회장의 차녀이자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손녀다. 이 회장의 캐릭터를 많이 빼어닮은 언니 이부진(44) 호텔신라 사장과는 달리 그녀는 어머니인 홍라희(68) 리움미술관장의 감각을 많이 닮았다. 어려서부터 예술 쪽에서 뛰어난 기질을 보인 것이다. 홍 관장은 서울대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했다.
이 부사장 역시 홍 관장의 영향으로 예고(藝高)에 진학하며 예술적 감각을 키웠고, 대학에서도 디자인계열을 전공했다. 그는 서울예술고, 미국 파슨스디자인스쿨을 졸업했다. 오빠 이재용(46)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대와 하버드대학원을, 언니 이 사장이 대원외고와 연세대를 나온 것과 비교하면 예술적 감각이 뛰어났던 셈이다.
삼성의 경영에서도 이 부사장은 자연스럽게 그룹 내 패션사업에서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이것이 이 부사장에게는 결과적으로 전공분야를 살리며 가장 창조적이고 개성있는 그만의 재능을 살리는 계기가 됐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학문적 전문성까지 갖춘 것은 오빠와 언니에 비해서 오히려 한수 위로 평가된다.
이 부사장은 특히 삼성이 최근 강조하는 통섭형 인재상이나 박근혜 정부의 창조적 인재관과도 코드가 잘 맞는다. 대체로 한 분야에서 오빠와 언니가 역량을 발휘하는 동안 이 부사장은 패션을 시작으로 소재와 광고계를 넘나드는 멀티플레이어로 활약하는 것도 이런 측면에서 이해된다. 예술적 소양이 경영과 만나 창의적인 경영행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 부사장은 패션과 광고 IT 등 창의성과 트렌드가 중시되는 사업을 관장하는 경영인답게 임직원을 배려하는 데 있어서도 남다른 감각을 갖고 있다. 일례로 생일을 맞은 임원들에게 요리를 좋아한다면 독특한 디자인의 냄비를, 술자리가 많다면 개인 체질에 맞는 건강식품을 보내기도 한다.
또, 직원들의 경조사를 직접 챙기는 한편 사내 행사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 조직원들과의 스킨십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고 있다. 특히 일선 현장의 직원들과 스스럼없는 모습을 보여 인기가 남다르다. 이 부사장의 이런 임직원에 대한 배려는 회사를 넘어 삼성 안팎에서도 유명하다.
이는 이 회장이 어쩌면 경영수업의 마지막으로 물려주고 싶어할지 모를 인재경영의 핵심을 잘 꿰뚫어 보고 있는 것으로도 풀이된다.
[뉴스핌 Newspim] 이강혁 기자 (ik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