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은영 회장 등 재계인사 7명 추가공개
[뉴스핌=이강혁·강필성 기자] 조세피난처의 페이퍼컴퍼니(서류상 회사) 설립과 관련한 2차 명단이 27일 공개됐다. 재벌총수 일가로는 유일하게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이 포함됐고, 총 4개 기업 6명의 전·현직 임원의 이름도 명단에 올랐다.
이들 명단 속 기업은 한결같이 회사와의 무관함을 강조했다. 하지만 왜, 무슨 목적으로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는지에 대해서는 개인의 문제로 돌리며 이렇다할 해명을 내놓지 않아 지난 22일 공개된 1차 명단과 함께 적잖은 후폭풍이 예상된다.
다만, 이번 2차 명단 공개는 1차 때와는 달리 개개인의 탈세의혹이 구체적이지 않아 세간의 시선을 모을 만한 파괴력은 다소 떨어져 보인다는 재계 일각의 시선도 나온다. 국세청은 명단 속 인사와 기업 등의 역외탈세 의혹 등을 조사하기 위해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 등 재계 인사 7명 추가 공개
비영리 독립언론 뉴스타파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는 27일 2차 발표를 통해 최은영 한진해운 홀딩스 회장과 조용민 전 대표이사를 비롯해 황용득 한화역사 사장, 조민호 전 SK증권 부회장과 조 전 부회장의 부인 김영혜씨, 이덕규 전 대우인터네셔널 이사와 유춘식 전 대우폴란드차 사장 등의 이름을 공개했다.
뉴스타파 측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국민의 알 권리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라 판단하고, 관련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며 "오늘 발표하는 명단은 우리나라의 4개 재벌기업과 관련된 7명"이라고 설명했다.
▲뉴스타파 측이 27일 공개한 최은영 한진해운 홀딩스 회장 등의 페이퍼컴퍼니 관련 서류. |
이날 발표된 명단 중 유일한 재벌총수는 최은영 한진해운 홀딩스 회장이다. 최 회장은 고(故)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의 부인이다. 한진그룹과 지배구조를 연결하고 있다는 점에서 1차 명단 공개에서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의 부인인 이영학씨에 이어 한진가에서는 두번째다.
한진해운 케이스는 최 회장과 조용민 전 대표이사가 중심이다. 2010년 10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와이드 게이트그룹'이란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 발행 주식은 총 5만주로, 이 가운데 최 회장이 90%인 4만5000주, 조 전 대표이사는 10%인 5000주의 주식을 보유했다.
한진해운에 이어 한화그룹 계열사 사장도 이름이 거론됐다. 황용득 한화역사 사장(당시 한화 도쿄지사 소속)은 1996년 2월 영국령 쿡 아일랜드에 '파이브 스타 아쿠 트러스트'라는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 자신을 수탁설정자·보호자·수익자로 등록했다.
황 사장은 이 페이퍼컴퍼니에 연결된 '파이브 스타 아쿠 리미티드'란 회사를 통해 같은 해 3월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에 위치한 한 아파트를 매입했다. 8월에는 같은 아파트도 한 채 더 사들였다. 그리고 이 아파트 두 채를 2002년 6월 한화그룹의 일본현지 법인인 한화재팬에 매각했다.
SK그룹도 조민호 전 SK증권 부회장이 명단에 포함됐다. 조 전 부회장은 1996년 버진아일랜드에 본인을 등기이사로, 익명의 인물 1명을 주주로 내세운 '크로스브룩 인코퍼레이션'이란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 서류상 발행 주식은 단 1주에 불과하다.
이 1주를 조 전 부회장의 부인 김영혜씨가 2003년 취득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인에게 승계된 것으로 보인다.
대우그룹과 관련해서는 2개의 페이퍼컴퍼니가 폭로됐다. 이덕규 전 대우인터내셔널 이사는 단독 등기이사 겸 주주로 페이퍼 컴퍼니인 '콘투어 퍼시픽'을 2005년 7월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설립했다.
대우그룹 계열사이던 대우 폴란드차의 유춘식 사장도 '선 웨이브 매니지먼트'라는 회사를 2007년 4월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설립했다.
◆"회사와는 무관한 일"..무슨 목적? '묵묵부답'
이같은 2차 명단 공개에 대해 거론된 각 기업들은 적잖이 당황한 기색이다. 회사와의 관련성을 부인하거나 이미 정리된 페이퍼컴퍼니라는 입장을 통해 빠른 사태 진화에 나선 상태다.
이와 관련, 한진해운 측은 "최은영 회장은 2008년 10월 조용민 전 한진해운홀딩스 대표와 공동명의로 회사와 무관한 서류상 회사를 버진 아일랜드에 설립했으나 특별한 필요성이 없어 2011년 11월경 동회사와의 관계를 정리했다"고 밝혔다.
최 회장이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것은 맞지만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그러나 최 회장이 왜, 어떤 목적으로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는지, 설립시기에 페이퍼컴퍼니가 왜 필요했는지 등 관련 의문점에 대해서는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SK그룹 역시 그룹과의 무관함을 집중적으로 설명했다.
SK그룹 측은 조민호 SK증권 전 부회장의 버진아일랜드 페이퍼컴퍼니에 대해 "회사와 무관한 개인 투자"라며 "조 전 부회장의 조세피난처 투자는 개인적 투자이기 때문에 회사에서 알지도 못하고 이야기 할 입장도 아니다"고 선을 그엇다.
대우인터내셔널도 회사와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대우인터내셔널 측은 "회사의 자료를 검토했으나 2005년에 해당 법인(콘투어 퍼시픽)을 설립한 적이 없고, 이 법인과의 거래 내역도 없다"며 "대우인터내셔널과 무관한 법인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한화그룹의 경우는 페이퍼컴퍼니 설립과의 연관성을 인정하면서 탈세 등의 관련의혹 해명에 초점을 맞췄다.
한화그룹 측은 "투자목적 및 거래처 접대, 임직원 복리후생 등의 목적으로 하와이 부동산을 구입하기 위해 페이퍼컴퍼니를 황 사장 이름으로 세운 것"이라며 "해외부동산 구매가 법적으로 힘들자 하와이 부동산업체에서 조언을 받아 황 사장 이름의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특히 "부동산 매매로 수익을 남기지 않았다"면서 "2002년에 이 페이퍼컴퍼니가 한화재팬에 부동산을 판 것은 이를 양성화하자는 취지"라고 덧붙였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번 2차 명단 공개가 1차 때보다 파괴력 측면에서는 다소 떨어지는 것으로 보고 내심 안도는 분위기도 엿보인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1차 명단 공개에서는 OCI 오너 일가 등 그 명단 만으로도 눈길이 가는 재벌가가 포함된데다, 그들의 탈세의혹 등도 비교적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있다"며 "이번 2차에서는 이미 퇴직한 임원들의 명단이 많고, 회사와의 연관성을 구체적으로 밝히지도 않아 파장이 1차보다는 덜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국세청은 뉴스타파의 1차, 2차 명단 공개에 대해 해당기업 등의 역외탈세 의혹을 조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뉴스핌 Newspim] 이강혁 기자 (ik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