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다 하루히코 총재가 이끄는 일본은행(BOJ)이 구사한 '강력한' 통화 팽창정책은 서구 중앙은행 정책의 이정표 혹은 거대한 실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아베노믹스' 3개의 화살 중 핵심 정책이다.
이 영향으로 엔화 가치가 다시 급격하게 하락하고 닛케이주가지수가 급등한 것이 일본 국민이나 이 시장에 제대로 베팅한 투자자들에게는 좋을지 몰라도, 한국과 같은 인접국들은 큰 위협으로 다가온다.
이제 '아베노믹스'에 대해 단순히 '돈을 왕창 풀어 엔화 약세를 유도하고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 정도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선진국 정책당국이나 주류 경제학자, 국제기구가 일제히 옹호하고 나선 일본의 완화정책은 뚜렷한 배경과 의도를 가지고 있고, 우리 의지와 무관하게 전개되는 현상이다. 이 문제를 좀더 심도깊게 고민해야 할 때다. <편집자 註>
[뉴스핌=권지언 기자] 경기 부양과 디플레 타개에 전력투구를 선언한 아베 신조 총리에 이어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까지 본격 출격하면서 '아베노믹스' 기세가 거세지고 있다. 달러/엔은 어느덧 100엔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 엔화 약세가 가속화되자 한국 경제와 기업을 위한 신속한 대응책 마련을 촉구하는 국내 전문가들의 목소리 역시 높아지고 있다.
윤전기를 쌩쌩 돌려 엔화를 떨어뜨리겠다는 아베 총리의 경기부양 구상은 4월 구로다 총재 취임 후 첫 BOJ 통화정책회의에서 더욱 공고해졌다.
구로다 총재는 첫 깜짝 카드로 '양적·질적 통화완화'라는 정책 결정을 발표했다. 앞으로 2년 안에 2% 물가 달성을 목표로, 엔화 공급량을 지금의 2배로 확대한다는 것이 정책의 핵심이다.
구로다식 파격 완화조치에 시장 역시 반응은 뜨거웠다.
일본 증시의 닛케이지수는 구로다 조치 발표 이후 급등세를 보이더니 11일에는 1만 3500엔 선을 넘으면서 최고치를 계속 경신하고 있다.
지난 4월4일 BOJ 통화완화정책이 시작되기 직전 93엔 부근에 거래되던 달러/엔 환율은 새로운 완화조치가 발표된 뒤 급등세를 꾸준히 이어와 11일에는 일중 99.84엔까지 오르며 100엔에 바짝 다가선 상태다.
왼쪽 그래프: 달러/엔 동향. 오른쪽 그래프: 닛케이지수 동향 [출처: 로이터] |
◆ '아베노믹스', 한국 피해규모는?
지금과 같은 엔저 상황이 장기간 지속되고 세계경제 역시 회복이 더뎌진다면 우리 산업의 수출 경쟁력과 성장 위축, 중소기업 피해 등은 불보듯 뻔하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달러/엔 환율이 100엔까지 오른다면 한국의 총 수출은 3.4% 감소하고, 110엔까지 상승할 경우에는 11.4% 감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엔화 약세가 수출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철강, 석유화학, 기계 산업 등이 상대적으로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측됐다.
특히 달러/엔이 100엔까지 갈 경우 일본과 수출경합도가 높은 철강과 석유화학, 기계 부문의 수출은 각각 4.8%, 4.1%, 3.4%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또 IT 산업 및 자동차 산업 수출은 각각 3.2%, 2.5% 감소하고, 가전 산업 수출은 1.7% 감소할 전망이다.
삼성증권은 달러/엔 100엔 돌파 시 주요 기업들의 매출은 0.84%, 영업이익은 1.39% 각각 감소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달러/엔이 110엔까지 추가 상승한다면 매출은 1.81%, 영업이익은 2.77%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 아베노믹스 성공 불투명… "길게 보고 대비해야"
국내 전문가들은 아베노믹스가 일단 화려한 출발을 알리긴 했지만 장기적인 성공 여부에 대해서는 단언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 달 발표한 '아베노믹스, 일본경제 부활의 신호탄인가'라는 보고서에서 BOJ의 통화완화 조치가 구로다 취임 이후 본격화되면서 엔화가 추가 하락할 수는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정책효과가 선반영됐을 수 있고, 실제 시장 통화량 간의 괴리 해소 등을 고려하면 엔화 낙폭은 제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엔화 흐름을 BOJ 정책 뿐만 아니라 유럽의 재정위기, 미국경제 및 통화정책 흐름 등과 함께 봐야 하는 만큼, 올해 달러/엔 환율은 90엔대 중반에서 등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일본 아베노믹스의 추진 현황과 정책 시사점' 제목의 보고서에서 아베 정부가 공공사업 확대를 통한 경기부양 역시 추진하겠지만 정책 효과가 불투명하고, 민간투자 촉진전략 역시 과거 경험상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평가했다.
산업연구원(KIET) 역시 3월 특집 보고서에서 아베노믹스의 단기적 성공 가능성은 높게 보지만, 장기적으로 성공하려면 부채 악화 가능성 및 금리 상승, 소비세 인상 등의 리스크를 잘 넘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일본 정책에 대한 한국 경제와 기업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환 리스크 관리와 더불어 원高 상황에서도 수출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체력을 비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더불어 정부는 기업들에 대한 세금 부담을 덜어주고 규제를 완화하는 등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역시 중장기적으로는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기술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브랜드 가치 향상, 마케팅 강화, 수출선 다변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특히 일본과 수출경합도가 높은 산업들을 중심으로 지속적 R&D를 통해 세계 선도 제품을 개발해 일본 제품과의 차별성을 확보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 조언했다.
한편, 국내 인식의 협소함을 지적하는 전문가도 있다.
이철희 동양증권 연구원은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물론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그리고 유력 학자들이 옹호하는 아베노믹스를 쉽게 보면 안 된다"면서 "중국의 부상에 따라 선진국 동맹 형태로 전개되는 정책 대응을 보면 우리나라가 어느 한 쪽으로 기우는 정책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자꾸 장기 불황이니 잠재성장률이 낮아졌다는 점을 강조해서는 그 쪽으로 가자는 말 밖에 안 된다"면서, "과감한 경기 부양과거 경험을 가지고 자산시장 거품이나 인플레이션 우려 쪽으로 다가서면 우리의 입지가 좁아진다"고 지적했다.
[뉴스핌 Newspim] 권지언 기자 (kwonji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