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사년 정월 대보름 날, 서울 한복판 종로에서 친구 놈과 술 한 잔 걸치고 삼경이 이슥해 집으로 돌아왔다. 마누라, 딸, 아들이 잠 안자고 기다리고 있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공부하는 이 사주를 과연 내 아들놈도 알까? 아들 녀석에게 물었다. “너 십이지간이 뭔 줄 아니?” 아들 녀석은 웬 뜬금없이 십이지간이냐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모르는데요.”라고 대답했다.
재차 물었다. “그럼 똘기, 떵이는 아니?” 즉각 대답이 돌아왔다. “똘기, 떵이, 호치, 새초미⇒자축인묘 / 드라고, 요롱이, 마초, 미미⇒진사오미 / 뭉치, 키키, 강다리, 찡찡이⇒신유술해. 이거 아닌가요?”
KBS 2TV에서는 지난 1995년 4월 7일부터 1996년 1월 26일까지 일본 NHK 애니메이션을 방영했다. 이 애니메이션 제목이 ‘꾸러기 수비대’이고, 주제곡이 십이지간 열두 동물을 주인공으로 한 노래이다.
즉 쥐(자子)는 똘기, 소(축丑)는 떵이, 호랑이(인寅)는 호치, 토끼(묘卯)는 새초미, 용(진辰)은 드라고, 뱀(사巳)은 요롱이, 말(오午)은 마초, 양(미未)은 미미, 원숭이(신申)는 뭉치, 닭(유酉)은 키키, 개(술戌)는 강다리, 돼지(해亥)는 찡찡이로 만든 것이다. 요즘 사십대 이하에서는 ‘띠’ 하면 떠오르는 것이 ‘똘기, 떵이...’들이다. 이것이 바로 사주다.
*봄
사주는 주민번호 앞자리의 생년월일에, 태어난 시간을 더하여, 자연 현상 중 하늘의 줄기를 지칭하는 천간(天干) 열 글자(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와, 땅의 가지를 뜻하면서 ‘꾸러기 수비대’에 나오는 열두 동물을 상징하는 지지(地支) 열 두 글자(자子, 축丑, 인寅, 묘卯, 진辰, 사巳, 오午, 미未, 신辛, 유酉, 술戌, 해亥)를, 순서(갑과 자, 을과 축 등의 순으로)대로 조합한 모양(천간을 위로, 지지를 아래로 가도록 쓴 글자 모양)이, 마치 네 개(넉 사四)의 기둥(기둥 주柱)과 같다고 하여 불리고 있는 명리학의 저자거리 이름이다.
또한, 네 개의 기둥에 쓰여 진 총 글자의 숫자가 여덟 개이기 때문에 팔자라고 한다. 사주팔자란 말이 여기에서 유래한다.
팔자란 말이 또 다른 의미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사람이 죽으면 관 뚜껑에 ‘현고학생부군신위’라고 적는다. 여덟 글자다. 팔자인 것이다.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팔자를 바꿨다는 것은 평범한 범부에서 국가 고위직 공무원이 되었거나, 사회적으로 유명인사가 되었을 경우 그 직함을 적는다. 예를 들면, 국회의원을 했을 경우 ‘현고국회의원부군신위’라고 적는다. 여덟 글자가 열 글자로 변했다. 이런 경우 팔자가 바뀌었다고 한다.
*여름
만세력(萬歲曆)이다. 만세력은 사주를 설계할 때 사용하는 일종의 사주 사전이다. 앞으로 백 년 동안의 천문과 절기를 추산하여 밝힌 책으로서, 태어난 연, 월, 일, 시를 천간과 지지로 조합해 놓았다.
사주는 양력으로 따진다. 음력이 아니다. 태양을 중심으로 계절이 변하는 우주의 기운을 분석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만세력은 태양을 중심으로 변하는 계절별 절기를 기초로 만들었다. 만세력을 보는 방법은 뒤에 자세히 설명할 예정이다.
절기는 24개이다. 천구 상에서 태양이 움직이는 길을 황도(黃道)라고 한다. 황도 360도를 15도씩 나눈 24개점이 24개의 절기이다.
사주에서는 24절기 중 ‘입춘’을 새해 첫 날로 친다. 즉, 새 생명이 움트는 봄의 시작을 새해 첫날로 하는 것이다. 태어난 달은 입춘을 기점으로 24절기 중 해당 월의 초기에 들어오는 절기 12개를 기준으로 구분한다.
조금 장황스런 감이 없지 않지만, 우리의 생활문화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24절기를 이 기회에 소상하게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입춘(立春)은 2월 4일 경이다. 봄이 바로 섰다는 뜻으로 봄의 시작을 의미한다. 새 생명을 잉태하는 계절이 시작된 것이다. 입춘 시작 시간을 기준하여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만사형통(萬事亨通) 등 ‘봄을 맞이하여 좋은 일만 있길 소원한다.’는 입춘방(立春榜)을 대문에 써 붙이는 풍속이 있다.
우수(雨水)는 2월 19일 경이다. 눈과 얼음이 녹고, 봄을 알리는 단비가 내린다는 뜻이 있다. 사주에서는 겨울의 수(水) 기운이 다하고 봄의 목(木) 기운이 크게 활개 치는 것으로 평가한다.
경칩(驚蟄)은 3월 6일 경이다. 경(驚)은 ‘놀라다’이고, 칩(蟄)은 ‘겨울잠을 자는 동물’을 뜻한다. 즉 겨울잠을 자던 모든 동물이 깨어나는 시기라는 의미이다. 각 급 학교에서 경칩을 전후하여 새 학기를 시작하는 이유 중의 하나도 새로운 생명이 꿈틀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춘분(春分)은 3월 21일 경이다. 밤과 낮의 길이가 같다. 춘분을 기점으로 낮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한다. 이는 봄기운이 절정에 이르러 다음 계절인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점이라는 뜻이다.
사주에서 말하는 ‘인월(寅月)’은 입춘부터 경칩까지로, 양력 2월이 주로 해당된다.
청명(淸明)은 4월 5일 경이다. 맑고 깨끗한 기후의 시기라는 의미이다. 하늘도 파랗고, 땅도 파랗게 변하기 시작하는 계절이다. 꽃들은 지천에 깔려 곳곳의 물색이 물감을 풀어 놓듯 한 시기이다. 글자 그대로 청명한 계절이다.
곡우(穀雨)는 4월 20일 경이다. 곡(穀)은 곡식이다. 즉 봄비가 내려 씨앗을 뿌리기에 좋게 만드는 시기라는 뜻이다. 벼 못자리를 만드는 등 한 해의 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때 이다. 묘월(卯月)은 경칩부터 청명까지로, 양력 3월이 주로 해당된다.
입하(立夏)은 5월 5일 경이다. 여름으로 들어선다는 뜻이다. 봄의 기운이 다하고 여름의 기운이 기세를 잡아가기 시작함을 의미한다. 여름의 기운이 드세기 시작하면 화려함과 열정이 넘치기 시작한다.
5월이 되면 온 천지가 꽃들의 향연이다. 그래서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하는 것이다. 소만(小滿)은 5월 21일 경이다. 만(滿)은 가득 참을 의미한다. 만물이 생장하여 가득 차는 것을 뜻한다. 보리가 익고 씀바귀가 뻗어 나오는 등 그야말로 들과 산이 연두색에서 짙은 녹색으로 변하기 시작하는 계절이다. 어디론가 무작정 떠나고 싶은 때가 바로 이 때다.
진월(辰月)은 청명부터 입하까지로, 양력 4월이 주로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