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세혁 기자] ‘분노의 윤리학’은 독특한 영화다. 여대생 살인사건에 얽힌 다섯 인물의 심리전이 뼈대를 이루는 이 영화는 숨 막히는 심리전 곳곳에 어이없는 상황을 심어 웃음을 선사한다. 살인사건과 도청, 사채, 불륜 등 무거운 주제를 다뤘음에도 흐름은 무척 경쾌하다. 사건 자체는 충격적이지만 이를 풀어내는 과정이 희화적이고 깔끔하다.
영화 ‘분노의 윤리학’은 제목에서 암시하듯 부조리와 자기합리화의 톱니바퀴 같은 관계를 다뤘다. 여대생을 도청하는 사내, 속이 시커먼 사채업자, 헤어진 연인 곁을 맴도는 스토커, 아내 몰래 바람을 피우는 교수가 주인공이다. 나름의 이유를 대며 깨끗한 척하는 이들의 분노는 아이러니하게도 본인들에게는 윤리다. 메인카피 “누가 제일 악인이지?”에 대한 답은 관객들이 찾아야 한다.
신예 박명랑 감독은 사람들이 저마다 주장하는 분노의 윤리에 포커스를 맞췄다. 이에 딱 맞아떨어지는 배우들의 호연은 ‘분노의 윤리학’만의 경쟁력이다. 이제훈, 조진웅, 김태훈, 곽도원, 문소리 등 색깔이 분명한 영화 속 캐릭터들은 물과 기름처럼 확연히 구분되면서도 분노라는 공통분모로 갖고 있다.
분노는 영화 ‘분노의 윤리학’이 이야기하려는 핵심이다. “희로애락 중 분노가 제일”이라는 조진웅의 대사처럼 각 캐릭터들은 분노에 휩싸인 채 자신을 포장하기 바쁘다. 비겁함, 잔인함, 냉철함 등 다양한 감정들이 분노에 의해 표출되는 장면들은 분노가 윤리학을 집어삼켜버린 시대의 암울함을 보여준다. 이런 지저분하고 어두운 면을 칙칙하지 않고 경쾌하게 풀어낸 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다.
배우들의 연기에 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요즘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이제훈과 조진웅, 곽도원은 한창 물오른 연기로 극의 완급조절을 책임진다. 김태훈과 이제훈이 보여주는 극중 '욕배틀'은 영화가 가진 가장 큰 웃음포인트가 아닐까 한다. 연기력이라면 이미 널리 검증된 배우 문소리의 서늘한 카리스마도 눈여겨볼 만하다.
[뉴스핌 Newspim] 김세혁 기자 (starzoobo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