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양섭 기자] 삼성전자가 최근 벤처기업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기업인수에 비교적 인색했던 삼성전자가 최근 적극적인 투자 모드로 돌아선 것은 모바일 사업 비중이 확대되면서 빠르게 변화하는 IT 환경에 대응하는 차원으로 해석된다. 최근 사례들을 보면 삼성은 사업 연관성이 있는 기업들에 대한 신속한 지분 투자 이후 추가 투자 또는 인수여부에는 상당한 기간을 두고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벤처기업 등 소규모 투자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투자대상 기업들은 삼성전자가 강화하고 있는 소프트웨어 분야로 집중됐다. 원천기술 확보 또는 제휴, 협력 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투자가 주를 이룬다. 아울러 의료기기 등 신수종 사업 분야에도 과감한 투자를 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직접 인수에 나서는 경우도 있지만 삼성 계열의 벤처캐피털인 삼성벤처투자가 투자업무의 최선방에 배치됐다.
삼성벤처는 최근 미국 보스턴에 위치한 클라우던트(Cloudant)사에 투자를 집행하기로 결정했다. 클라우던트는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출신의 물리학자들이 지난 2008년 설립한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 제공업체다.
지난달에는 전자펜 원천기술을 보유한 일본 와콤에 630억원을 투자해 지분 5%를 보유했고, 일본 이동통신업체 소프트뱅크의 자회사 이액세스, 캐나다의 보안 소프트웨어업체인 픽스모의 지분도 사들였다.
또 e커머스 업체 딜리버리에이전트에 5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삼성전자는 딜리버이에이전트와 제휴를 맺고 스마트TV에서 T커머스를 활성화한다는 계획이다. 딜리버리에이전트는 NBC, 20세기 폭스, CBS, HBO 등 미디어 분야에서 350개 이상의 주요 업체들을 고객으로 보유하고 있다. TV의 드라마를 보면서 출연자들인 입은 옷, 소지품 등의 상품을 바로 구매할 수 있는 방식의 플랫폼을 갖춘 업체다.
의료기기업체인 뉴로로지카(NeuroLogica),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관련 소프트웨어 업체인 엔벨로 등은 삼성전자가 직접 인수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4일 미국에 위치한 전략혁신센터(SIC)를 통해 향후 수년동안 현지 시장에서 1조원대를 투자, 인수합병(M&A) 및 연구개발(R&D), 현지 기업들과의 전략적 제휴 등을 확대할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벤처 등 소규모 M&A를 통해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IT업계에 대한 대응력을 높인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이같은 움직임은 최근 IT업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주요 M&A 추세중 하나다.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글로벌 M&A 시장의 거래규모는 지난 2007년 활황기때의 40% 수준에 불과하지만 목적이 세분화된 소규모 M&A는 최근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김지윤 삼성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최근 M&A 추세는 M&A 목적이 세분화되고, 신흥국의 존재감이 커지면서 매수·매도 국가의 경계가 옅어지고 있으며, M&A를 추진하기 전에 지분출자를 하거나 소형거래로 경험을 쌓으면서 리스크를 줄이는 등 세가지 큰 특징이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특허를 보유한 기업을 인수하거나, 핵심 인재 영입을 위해 M&A를 추진하는 이른바 Acq-hire(acquire와 hire의 합성어)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삼성의 최근 투자사례를 보면 투자사실이 공식적으로 발표되기 전에 관련 루머가 시장에 돌아다닌 경우가 거의 없다. 매수, 매도, 중개 등 3개 주체가 딜을 진행하는 시간이 지날 수록 관련 사안이 시장에 노출되기 마련이지만 삼성의 최근 투자 사례에서는 좀처럼 이같은 얘기를 접하기 어려웠다. M&A업계 한 관계자는 "그만큼 신속한 투자 결정을 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의사결정 구조가 상당한 빨라진 것으로 파악된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는 올해초 조직개편을 통해 DS부문 산하 조직으로 삼성전략혁신센터(SSICㆍSamsung Strategy & Innovation Center)를 설립했다. SSIC는 우수한 소규모 업체들을 물색해 기업뿐만 아니라 최고경영자(CEO) 등 핵심 인력까지 채용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최근 원화강세 기조로 수출 기업들을 중심으로 수익성 악화가 우려되고 있지만 이같은 환율 추세는 해외 기업을 사들이기에는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원화 강세로 국내기업들이 더 싼값에 해외 기업을 인수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느저널은 지난 6일 "한국 기업들이 아웃바운드(해외기업) 인수ㆍ합병(M&A)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으며 특히 유럽을 주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엔저 기조가 지속되고 있는 일본 업체들도 향후 M&A 주요 대상으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기업 M&A를 전문으로 하고 있는 한 중개업자는 "일본 IT 업계가 최근 1~2년새 불황을 겪으면서 자금난에 허덕이는 벤처들이 투자유치나 매각을 추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국내 기업들도 이런 매물에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뉴스핌 Newspim] 김양섭 기자 (ssup82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