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시왕(新希望)그룹 류융하오 회장 외동딸
[뉴스핌=김영훈 기자] “무슨 꿈을 꾸고, 어떤 학교에 입학해야 할지, 또 전공은 뭐를 해야할 지... 모든 면에서 부모님의 결정이 나보다 훨씬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신시왕 그룹 후계자 류창(劉暢ㆍ32)은 얼마전 유력 지식 주간 신문인 난팡저우모(南方周末)와의 인터뷰에서 이처럼 밝힌 바 있다.
신시왕 그룹 후계자 류창(劉暢ㆍ32)은 얼마전 유력 지식 주간 신문인 난팡저우모(南方周末)와의 인터뷰에서 이처럼 밝힌 바 있다.
그녀의 말대로 아버지 류융하오(劉永好) 신시왕그룹 회장은 외동딸에게 경영권을 승계하기 어렸적 꿈은 물론 대학과 전공 선택 하나하나에 까지 세심하게 신경쓰는 등 차근차근 스펙을 쌓아줬다. 자수성가해 일군 기업을 2세 경영시대에 가서 한 단계 더 도약시킨다는 목표아래 미리부터 후계 경영을 준비한 것이었다.
국유기업 엔지니어였던 류 회장은 1982년 쓰촨(四川) 성 청두(成都) 시의 한 거리에 차린 자전거 수리점을 시작으로 사료ㆍ금융ㆍ부동산 등의 분야에서 독보적인 반열에 오른 신시왕그룹을 만들어 냈다. 시대 유행에 따라 관료나 국유기업의 철밥통을 던저 버리고 창업의 길에 나서는 샤하이(下海)의 대표적인 사례였다. 그리고 그는 1995년 중국 최고 부호의 자리에 올랐다.
류 회장은 오로지 정직과 피땀으로 만 기업을 일구겠다는 일념하에 언론을 비롯한 외부 접촉을 피하겠다고 공언했다. 10년 후인 2011년 3월 까지 그는 이 약속을 철통같이 지켜냈다. 그런 다음 그는 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ㆍ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정치협상회의) 의 취재 마당에 서른살이 된 류창을 대동하고 나타나 아주 당당하고 자신감있는 표정으로 기자들을 만났다.
그리고 같은해 6월 신시왕그룹 이사회에서는 “나는 그냥 마실 나온 것”이라는 말로 딸을 후계자로 결정했음을 기정사실화했다.
1994년 류창은 미국 뉴욕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후 시애틀의 한 여자대학에 진학했다가 귀국 후 베이징대 국제MBA 과정을 이수하고 2002년 한 광고회사에 입사했다.
류창은 마케팅을 배우고 싶어 했는데, 마침 류융하오 회장이 동업으로 광고회사를 창업하면서 여러 분야의 마케팅을 접할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류창은 후에 “광고사업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만약 그 일을 하지 않았다면, 일을 배우는 데 많은 시간 낭비할 뻔 했다”고 털어놨다고 한다.
류창은 특이하게 리(李)씨 성으로 된 이름도 가지고 있다. 어머니인 리웨이 신시왕그룹 이사의 성을 딴 별도의 이름이다. 그녀는 신변 안전을 도모할 겸해서 이 이름과 함께 2개 이름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
리웨이 이사도 여장부로 유명하다. 신시왕그룹의 류 씨 일가는 창업 초기 부인들의 사업 참여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런 집안 분위기를 극복하고 리웨이는 남편의 지원없이 독자적으로 사업을 일궈 성공시킨 것으로 중국 재계에 알려져 있다.
류창은 현재 신시왕 그룹의 해외분야 사업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아버지 류 회장의 꿈인 농목축업 풀라인화를 이루기 위해 이 분야 공부에도 심혈을 쏟고 있다고 측근들은 귀뜸했다.
[뉴스핌 Newspim] 김영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