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朴·새누리, 한달여만에 만난 테이블에서 현안은 '텅텅'
[뉴스핌=노희준 기자] "당에서 소통이 안 된다는 부분에서 공식적인 채널을 제안한 것 없었나?"(기자들)
"그런 말 없었다"(조윤선 대변인, 이하 같은 순서)
"참석한 (당) 인사 중에는 (박근혜 당선인) 공약 축소를 이야기한 이도 있는데."
"그런 말 없었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나 4대강 사업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었다는 것인가?"
"그렇다. 가볍게 환담했다. 정부조직법 외의 현안에 대해서는 말이 오가지 않았다."
전날 박근혜 당선인과 새누리당 지도부 사이의 비공개 오찬에서 오간 말을 취재하기 위한 기자들과 조윤선 당선인 대변인의 백그라운드 브리핑의 한 대목이다.
기자들은 여러 가지 국정 현안을 두고 박 당선인과 여당 지도부 사이에서 오갔을 법한 말들을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그런 말 없었다'는 반복뿐이었다.
애초 이 비공개 오찬은 박 당선인이 당선 이후 새누리당 지도부와 처음 가진 것으로 그간 인수위 활동 전반은 물론 정국 현안에 대해 폭넓은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관측됐다.
박 당선인은 그간 차기 정부의 총리인선 등 정국구상에 몰두하면서 사실상 두문불출해왔지만, 그러는 사이 여러 정치 현안이 쟁점화돼 실타래처럼 얽히면서 해결의 실마리가 필요한 상황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선 이후 한달여만에 박 당선인과 여당 지도부가 만났음에도, 어느 쪽 할 것 없이 양측 사이에 있었던 1시간 30분여 동안의 논의 테이블에는 민감한 사안을 올리지 않았다.
부적격 논란에 휩싸인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나 감사원 감사 결과 총체적 부실 판정을 받은 4대강 사업, 1월 임시 국회 결렬의 원인인 쌍용차 국정조사 문제 등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박 당선인과 인수위가 '낮은 자세'를 강조하고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를 존중하는 자세를 고려하면 가벼운 환담 위주로 진행된 이날 오찬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가벼운 환담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박 당선인은 논란이 되고 있는 공약에 대한 당과 당선인의 '공동책임'을 강조하면서 공약 이행 의지를 재천명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과 국무총리, 국무위원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통과 등에 대한 새누리당의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역으로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대한 협조를 구하고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통과를 희망했다면, 쌍용차 국정조사에 대한 문제나 이 후보자관련 논란에 대한 박 당선인의 언급이 없었던 것은 이상하다.
쌍용차 국조 문제나 이 후보자 인사청문회 문제에 대해 여야 합의가 도출돼야 1월 임시국회가 열리면서 조속히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와 총리 및 국무위원 후보자 인사 청문회 절차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박 당선인이나 새누리당이 새 정부 출범 준비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도 '뜨거운 감자'를 회피하지 말아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적어도 이 후보자 지명은 박 당선인과 청와대의 교감속에 이뤄진 것으로 알려져 박 당선인의 첫 인사로 인식되고 있다.
일각에선 사실상 박 당선인의 '침묵'이 '이동흡 버리기'라는 관측도 있지만, 향후 국정을 책임져야 할 당선인이 명확하게 입장을 표하지 않는 것은 혼란을 부를 뿐이다. 인수위가 그렇게 피하고자 하는 '대국민 혼선과 혼란' 말이다.
곧 국정 운영의 최고 책임자가 될 박 당선인의 입을 주시하고 있는 국민으로서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실제로 국민들의 답답한 심경을 대변하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갤럽이 지난 22일 발표한 박 당선인의 직무 수행 평가를 묻는 여론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5%p) 결과를 보면, 박 당선인의 직무 수행에 대한 부정 평가 이유로 '국민소통 미흡, 지나친 비공개주의'(23%)가 가장 많았다.
결국 전날 당선인과 새누리당의 한달여만의 만남은 산적한 현안에 비해서는 너무 가벼웠다고밖에 볼 수 없다. 그렇다고 추후 만남을 예정한 것도 아니다. 현안이 많은데 가벼운 환담만 했으면 이후 만남에 대한 얘기도 없었느냐는 질문에 "각별히 말씀 없었다"고 조 대변인은 전했다.
그럼에도 당선인측은 전날 몇번씩 오찬 장소를 변경하면서 취재진의 눈을 피해 보안에 주력했다. 박 당선인은 대통령과 동일한 신변 보호를 받아야 하는 데다 주위 혼잡을 우려한 조치였다고 알려졌지만, 이런 정도의 얘기가 오갈 것이었다면 굳이 취재진들과 당선인측이 숨박꼭질을 해야 했는지 의문이다.
소통은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는 데서 시작된다.
[뉴스핌 Newspim] 노희준 기자 (gurazi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