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이른바 ‘머니 프린팅’으로 불리는 양적완화(QE)가 해당 국가의 통화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전통적인 금융시장 상식이 이번 위기에 들어맞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례 없는 유동성 공급에도 미국 달러화나 영국 파운드화, 유로화가 예상만큼 하락하지 않은 것은 인플레이션이 낮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와 영국 영란은행(BOE), 유럽중앙은행(BOE)이 자산 매입 계획을 발표할 때 해당 통화는 단기적으로 하락 압박을 받았을 뿐 중장기적인 낙폭은 경제 교과서적인 예측에 크게 못 미쳤다.
이는 통화 공급과 화폐 가치의 상관관계가 단순한 수급 논리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시장 전문가는 설명했다.
무엇보다 유동성 공급에 따른 인플레이션 상승이 시장의 예상과 달리 미미했고, 여기서 통화 가치 움직임까지 예측과 빗나가는 결과가 초래됐다는 얘기다.
RBC 캐피탈 마켓의 엘사 리그노스 통화 전략가는 “통화 발행을 늘릴 때 화폐 가치가 하락한다는 것이 전통적인 금융 상식이지만 양측의 메커니즘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며 “유동성 공급을 늘린 데 따라 인플레이션이 가파르게 상승하지 않는 한 화폐의 구매력이 떨어지지 않으며, 이 때문에 통화 가치도 평가절하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0년 8월 연준이 2차 QE를 시행했을 때 핌코의 빌 그로스 최고투자전략가는 달러화 가치가 20%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무역 가중치 바스켓 통화를 기준으로 할 때 달러화 가치는 2010년 8월부터 2011년 7월 사이 10% 하락했으나 이후 반등, 낙폭이 2% 이내로 좁혀졌다.
영국 파운드화 역시 단기적인 하락 후 반등하는 움직임을 보였고, 유로화의 경우 트레이더의 하락 베팅이 빗나간 대표적인 통화로 꼽힌다.
최근 일본은행(BOJ)의 자산 매입 계획에 대해서도 외환시장의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다. 발표 전 급락했던 엔화는 BOJ의 유동성 공급이 엔화 가치를 떨어뜨리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과 함께 반등하는 모습이다.
리그노스는 “BOJ가 QE를 확대했다는 이유로 엔화 하락에 베팅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전했다.
엔화는 지난해 11월13일 이후 11.4% 급락했다. 하지만 올해 말 달러/엔 환율이 80엔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기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