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도 뒷받침 없이 대출확대 어렵다"
[뉴스핌=이강혁 기자]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중소기업 코드 맞추기에 엇박자를 내는 것으로 보인다. 표면적으로는 새 정부의 핵심 키워드인 '중소기업 금융지원' 정책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속내는 서로 불편하기만 하다.
당국은 은행권의 '무늬만 중소기업 지원'을 경계하면서 적극적인 금융지원 방안을 독려하고 있다. 하지만 은행들은 리스크 불감증을 우려하면서 당국의 압박에 속이 타들어 간다고 항변한다.
그 사이 정작 돈이 필요한 중소기업들에게는 여전히 은행의 문턱이 높다는 아우성이 쏟아지고 있다.
◆ 금융당국 압박에 은행들 '속앓이'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연초부터 시중은행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중소기업 금융지원 확대를 위한 각종 운용방안을 내놓고 있다.
당국은 최근 이를 기초로 "올해 은행권이 중소기업에 30조8000억원의 신규 자금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정책금융의 지원이 포함된 수치이기는 하지만 이는 지난해 29조4000억원보다 1조4000억원나 증가한 수치다.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은 그 액수만 놓고 보면 국내외 경기침체를 고려할 때 결코 적지 않은 수준이다. 하지만 정작 은행들은 대출의 질을 따지면서 대상 확대에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에게 대출의 질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라면서 "부실이나 보증 등의 제도적 문제가 우선 개선돼야 은행도 마음놓고 지원 대상을 확대할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사실 당국이 최근 은행권을 불러놓고 "비올 때 우산을 뺏는 행태는 지양돼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측면을 염두해 뒀기 때문이다.
은행들이 겉으로는 중소기업 지원 확대를 외치면서 정작 자금이 절실히 필요한 중소기업에게는 리스크 관리를 위해 대출 심사를 강화하거나 기존 대출금 회수에 나서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추경호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18일 주요 시중은행과 정책금융기관을 불러 "실물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은행들이 과도한 위험관리와 소극적 대출 태도를 유지하면 기업 경영이 악화되고 은행 영업 기반이 위축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며 질타한 바 있다.
기업 자금을 원활히 공급해 기업 활동을 뒷받침하는 게 금융 본연의 역할이자 사회적 책임이라는 게 그의 강조점이다.
금융위는 앞으로 중소기업 대출 실적을 매달 확인하고 분기마다 은행과 정책금융기관이 참석하는 점검회의도 개최키로 했다.
당국의 이같은 주문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은행들이 이익에만 너무 매달리다 보니 여러 제도를 입맛대로 이용해 자신들 배불리기만 바쁘다는 지적이 잇달아 나오는 상황이다.
단적으로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한국은행의 총액한도대출 제도가 오히려 은행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됐다는 지적이 최근 정치권으로부터 제기되기도 했다.
은행들이 과다하게 가산금리를 붙이고 중소기업 보다는 대기업에 편법으로 대출하는 사례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중소기업 자금 조달 규모는 35.2%로 2010년 36.6%, 2011년 35.6%에 이어 2년째 감소했다고 한다.
이는 은행권이 담보나 보증이 있는 우량 중소기업에 대출을 집중하면서 중소기업 대출 양극화가 심화됐다는 게 당국의 판단이다.
◆ 중소기업 현업에선 "문턱 높다" 토로
은행들은 당국의 압박에 속앓이가 심하다. 손실 위험을 감수하고 중소기업 지원을 확대하라는 것과 다름없다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리스크 관리가 어느해 보다 중점과제인 마당에 부실 부담 등을 해소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아쉽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은행들이 이같은 속내를 내비치는 것은 일종의 학습효과도 한 몫한다. 이명박 정부 초반에도 중소기업 금융지원 확대가 주요 현안이었고, 은행들은 앞다퉈 중소기업을 지원 정책을 내놨었다.
그러나 신용대출을 확대하고 설비투자 자금을 공급하면서 수십조원을 풀었지만 결국 금융위기 여파 속에서 부실덩어리만 늘어나는 시련을 겪었다.
은행권 관계자는 "대출자산 상당수가 위험으로 돌아오면서 자기자본 비중이 크게 떨어지는 악화일로를 걸었다"면서 "은행들이 리스크 관리에 소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묻지마 대출에 나설 수도 없는 노릇 아니냐"고 말했다.
이러는 사이 정작 대출이 당장 급한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은행권의 높은 벽에 막혀 씁쓸한 표정이다. 높은 이자율과 꺾기성 금융상품 권유도 여전하다고 한다.
그나마 이는 비교적 우량 중소기업에 해당되는 얘기다. 시화공단의 한 중소기업 자금담당자는 "현업에서 느끼는 은행들 문턱은 여전히 높다"면서 "연 매출이 수천억원에서 조 단위를 넘어가는 대기업의 우량 협력사가 아니면 보증기관의 보증서를 받아도 필요한 자금의 50% 수준을 빌리기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와 관련,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신용보증기금 등이 운영배수(보증비율) 크게 줄인 상황이어서 진짜로 자금이 필요한 중소기업에게 대출이 이뤄지지 못하는 있다"며 정책적 문제로 화살을 돌렸다.
[뉴스핌 Newspim] 이강혁 기자 (ik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