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 사모펀드와 매각협상중..HP는 사업부 매각 등 고려
[뉴스핌=김윤경 국제전문기자] "개인용 컴퓨터(PC)의 시대는 갔다"란 진단은 참일까.
적어도 전통적인 PC 시대가 기울고 있다는 정도는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손 안의, 이동하면서 쓸 수 있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사용이 급격하게 늘어난 최근 2~3년간 PC(데스크탑,노트북, 넷북 등을 포함) 시장은 급격하게 기울었다.
불황이 겹쳤다고는 하지만 시장이 변화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될 시점이라고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도 인정했다. PC업체들은 위기에 몰려 있다. 매각을 꾀하거나 아니면 상황에 걸맞는 변화를 꾀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인 것이다.
◇ 위축되는 PC 시장.. 태블릿 때문
가트너가 지난 14일(현지시간) 발표한데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전 세계 PC 출하는 9030만대로 전년 동기대비 4.9% 감소했다.
기타가와 미가코 가트너 애널리스트는 "태블릿이 PC 시장의 판도를 극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면서 "PC 매출을 대거 카니발라이제이션(cannibalization·제품간 잠식)하고 있을 뿐 아니라 PC 사용자들은 오래된 PC를 새로 사는 것보다는 태블릿을 사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밝혔다.
미가코 애널리스트는 "여전히 PC와 태블릿을 모두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이는 예외적인 사람들이지 평균적인 사람들은 아니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경향은 지난해 경쟁력 있는 저가의 태블릿PC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에 깊어졌으며 앞으로 태블릿이 주요 소비 기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트너는 특히 지난 연말 홀리데이 시즌을 보면 더 이상 PC가 선물 대상이 아니었으며 마이크로소프트(MS)가 윈도8이란 운영체제(OS)를 내놓은 것도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 매물로 나온 `컴퓨터 제왕` 델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면 당연히 PC를 주업으로 하는 하드웨어 업체들이나 PC용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업체들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휴렛팩커드(HP)와 델,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MS)는 사실 요즘 구글과 페이스북 등에 밀려 과거의 반짝거림을 잃고 있다.
한 때 `컴퓨터 제왕`이었던 델은 아예 매물로 나왔다. 창업자 마이클 델까지 최고경영자(CEO)로 다시 돌아와 부흥을 꾀했지만 시대의 변화에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 탓이다.
외신들에 따르면 델은 사모펀드 실버 레이크 파트너스와 주당 13~14달러, 총 220억~250억달러 규모의 차입매수(LBO)를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LBO는 매수자가 살 기업을 담보로 차입을 받아 매입을 하는 형태. 따라서 현금이 많은 기업일 수록 매수자에게 유리하다.
델의 현금창출 능력은 떨어지긴 했어도 약 30억달러 가량. 사모펀드는 이를 부채를 갚고 배당을 하는데 쓸 수 있으니 매력적이다. 게다가 델의 주가도 많이 떨어져 있으니 매수 가격도 덜 든다. 그래도 250억달러면 현재 델의 시장가치 190억달러에 상당한 프리미엄이 붙은 것이고 금융위기 이후의 딜(deal) 가운데 최대 규모다.
일부에선 이렇게 높은 가격에 델이 팔리는 것 자체가 놀랍다는 평도 내놓는다. 기술과 소비자들의 취향이 워낙 빨리 바뀌기 때문에 사모펀드들이 꺼리는 편이기도 하다. 델 CEO도 돈 방석에 앉게 됐다.
매수 희망자에게야 이렇게 매력적이겠지만 PC 업계 차원에서 보자면 델이 사기업화되는 것이 꼭 반가운 소식만은 아닐 것이다.
1984년 마이클 델이 텍사스대 1학년때 기숙사에서 만든 기업인 델은 처음엔 취미로 PC를 조립하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작은 업체였다. 그러나 델은 곧 학교를 그만두고 기업 키우기에 매달렸다.
1988년 델은 주식시장에 상장했고 주문을 받아 판매하는 직접 판매가 인기를 끌며 경쟁사 IBM과 컴팩을 위협했다. 인터넷을 통해 전자상거래가 활성화된 것은 델에 날개를 달아줬다. 델은 1996년 온라인 판매로 하루 100만달러 이상을 벌었으며 2001년 하루 매출은 4000억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경쟁사들이 공급망을 조정하고 생산기지를 아시아로 옮기는 등 비용 절감을 통해 반격에 나섰고, 소비자들도 단순한 디자인보다는 키보드 등 다른 외관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HP나 애플 등으로 고객들이 옮겨가기 시작했다. 2006년 말엔 세계 최고 PC 업체 자리도 내줬다. 최근엔 레노버나 에이서, 아수스텍 컴퓨터 등 아시아 업체들과도 힘겨운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
델 CEO는 PC 시장 자체가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기업 고객 기반을 키우는데 주력하고 있으며, 기업의 존재이유도 과거엔 단순한 PC 제조사였다면 이제는 정보기술(IT) 솔루션 파트너로 바꿔가고 있다. 그렇지만 매출의 절반은 여전히 PC에서 나오고 있다.
◇ HP, 논란의 오토노미 매각 고려중.. 레노버의 맹추격
HP는 회계부정 논란 때문에 골칫거리였던 오토노미를 포함한 몇 개 사업부를 매각할 것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16일 전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HP가 지난 2011년 인수한 오토노미를 매각하고자 하고 있으며, 외부에선 HP가 2008년 인수한 EDS 사업부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멕 휘트먼 HP CEO는 지금까지 매각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아 왔지만 회계부정 문제가 터지면서 더 이상 기업의 목표에 부합하지 않는 사업부는 파는 것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오토노미의 경우엔 쉽게 매각 대상으로 내놓을 것 같지만, 회사 사업과 밀착돼 있는 EDS를 팔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WSJ은 봤다.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전 세계 PC 시장에서 HP가 시장점유율 16.2%를 기록하며 레노버로부터 1위 자리를 탈환했다. 그렇지만 위태위태하다. 2위 레노버의 점유율은 15.5%로 거의 차이가 없다. 언제 또 순위가 바뀔지 모르는 것이다. 특히 레노버의 미국 시장내 성장률은 엄청나다.
양 위안칭(楊元慶) CEO는 이제는 미국 시장에서도 가격이 아닌 품질 경쟁력으로 승부하겠다고 공격적 확장 계획을 밝히고 있다.
레노버는 지난해 360도까지 접어 쓸 수 있는 아이디어패드 요가(Yoga)를 내놨고 올해들어선 27인치 터치스크린 데스크톱 호라이즌(Horizon)을 출시했다. 레노버는 미국 시장의 4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데 양 위안칭 CEO는 WSJ과의 인터뷰에서 "상황은 더 나아지고 있다"고 했다. 디자인을 강화하고 프리미엄 제품을 내놓으면서 혁신을 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스핌 Newspim] 김윤경 국제전문기자 (s91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