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치러질 선거에서 여성들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최선의 방책은 물론 남성들에 의해 선택된 여성보다도, 여성들이 직접 선출한 여성 대표를 한 명이라도 더 국회나 공직에 내보내는 일이다. 만약 정당한 후보를 내세우기가 어렵다면 그때는 출마한 후보중에서 무조건 여성에게 표를 던지자. 아무리 최악의 여성후보라도 여성문제의 인식과 실천에 있어서는 최선의 남성후보보다 나을테니까”
여성 유권자는 직접 선거때 정당한 여성 후보를 무조건 지지해야 하고, 마음에 드는 여성 후보가 없더라도 남성후보와 대결시에는 무조건 여성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는 주장에 남성인 ‘나’는 무조건 찬성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후보들이 남성 일색이라면 우선 그들이 속한 정당이 여성후보를 얼마나 많이 공천했는지, 당내 여성의 지위는 어떤지, 어떤 여성정책을 제시하고 있는지, 집권당이라면 지난 선거에서 내놓았던 여성공약을 얼마나 지켰는지를 따지자”는 이어진 목소리에는 조건없이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아가 “(후보)개인적으로는 여성정책과 관련해 어떤 공약을 하는지 알아보고 부부생활이나 자녀교육에서 얼마나 여남 동등을 실천하고 있는 가를 반드시 확인해 본 후 가장 여성의 편에 서있는 사람을 골라 찍자”는 호소에는 사심없는 박수를 보낸다.
이들 인용문을 보면서 누구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지지하는 정치 선전문이 아닌지 따지는 이들도 있을게다. 반대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를 떠올리는 이들도 있을련지 모르겠다. ‘여성 대통령’론과 ‘여성정책’이 어느때보다 뜨겁게 격돌했던 18대 대선이었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이는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을 선택한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와는 시간적으로 먼 시점에서 나온 주장들이다. 무려 17년여전 여남(女男) 동등성을 주창하는 한 수필성 책의 마지막 대목에 나온 얘기들일 뿐이다. ‘나쁜 여자가 성공한다’가 그것이다.
지난 1996년 여름, ‘남성의 시대는 지났다’ ‘남성중심사회에 대한 선전포고’라는 부제를 단 ‘나쁜 여자가 성공한다’(저자 김명숙)가 발간됐을때 필자는 책 제목의 도발성 때문에 주마간산격으로 읽어봤던 기억이 남아있다.
저자의 언론생활 경력과 더불어 ‘이 땅의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삶을 누릴 때까지 계속 여성 문제를 주제로 글 쓸 작정이다’는 자기 소개글에서 이른바 글쟁이 의식을 엿보았다는 점에서 책을 간직해 왔다.
‘나쁜 여자가 성공한다’와의 인연은 이정도일 뿐인데 지난 주말 이 책을 우연찮게 다시 꺼내들었다. SBS의 기획 프로그램 ‘리더의 조건’을 스마트TV에서 보다가 핀란드의 타르야 할로넨 전 대통령의 멘트가 강력하게 다가와서 책장을 뒤졌다.
여성 대통령의 여성관과 여성정책이 대한민국 여성시대를 어떻게 새롭게 발전시켜 나갈지가 ‘우리의 반(半)인 남성‘에게도 시대적으로 매우 의미심장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여성 대통령으로서 퇴임시 국민 지지율이 80%에 달했던 할로넨 전 대통령은 “한국 여자도 그렇겠지만 모든 여자는 세심한 여자이면서 동시에 더 좋은 세상과 권리를 위해 싸우는 용감한 전사입니다”고 강조했다. 또 “리더란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변화를 만들어 내도록 하는 사람이다”며 ‘여성 대통령 리더십’을 설명했다.
또 “리더는 사람 이야기를 잘들어야 하고, 용기가 있어야 하고, 방향을 제시할수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 모든 판단기준은 ‘국민’이라는 걸 누차 상기시키면서.
프로그램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박근혜시대의 향후 5년간 여성정책과 리더십을 그려봤으나 솔직히 바깥으로만 나돈 한 남성의 한계에서는 스케치조차 막막했다. 겨우 박 당선인의 여성정책 공약을 재차 되짚어보는 게 전부였다.
딱 두달전 지난해 11월14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 후보는 여성정책 주요 플랜 3가지를 내놨다.
여성이 당당하게 능력으로 인정받는 세상, 마음 편히 아이를 낳고 키우는 세상, 다양한 유형의 가족이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다.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을 충분히 반영해서 내놓았다는 게 ‘여성정책 플랜 3’이다.
현 삶의 환경이 여성이 능력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마음 편하게 아이를 낳고 키우기가 힘들고, 다양한 유형의 가족이 함께 살기가 힘들기에 여성 유권자들 표심을 잡았을 것이다.
국내 굴지의 그룹에서 여성 사장이 나오고, 임원이 배출되는 게 화제가 되는 시대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셋째 아이부터는 대학교 등록금을 전액 지원하겠다는 공약이 눈길을 끌고 ‘왕따’와 ‘성 범죄’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반복되는 당국의 발언속에 우리 아이들이 놓여있다. 세대간, 다문화 가족간 다양한 격차가 발생하는 갈등의 고리에서 여성들이 힘들어하는 게 우리 자화상이다.
박근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내일(15일) 여성가족부의 업무보고를 받는다. 헌정사상 첫 여성 대통령을 맞는 여성가족부는 내심 의욕도 강하고 기대도 클 것이다. 여성부는 향후 5년간 여성인재 10만명 양성 추진등 다양하게 새 대통령의 공약을 이행할 정책을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부의 궁극적 정책 지향점은 부처 특성상 실질적 ‘여남 동등권’확보일 게다. 어찌보면 박 당선인의 ‘여성정책 플랜 3‘이 여성부의 출발이고 마지막이다.
며칠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84명의 해당 전문가들 대상으로 박근혜 당선인의 성평등 공약에 대한 평가를 조사했다. 여성정책 전문가들 절반 가량은 박 당선인의 성평등 공약 제시수준을 ‘미약’하다고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우리나라의 전반적 성평등 수준이 낮다(51.2%)’고 봤고 성평등 수준이 낮은 이유로는 ‘가부장적 인식’ ‘성평등 정책 미약’ ‘여성 능력의 과소평가나 활용되지 못해서’등이 상대적으로 많이 나왔다.
“출생지역에 따른 사회적 차별문제보다 더 고질적이고 심각한 망국병은 출생성(性)에 따른 차별이다”고 ‘나쁜 여자가 성공한다’는 지적했다.
17년여전 책속 주장이 지금에도 낯설지 않고 거듭 음미해야 한다는 게 계면쩍고 적지않게 부끄럽다. / 논설위원 명재곤
[뉴스핌 Newspim] 명재곤 논설위원 (s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