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누구를 압박하고 있나.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이명박 대통령의 손발을 묶으려는 것인지, 아니면 이 대통령이 박 당선인의 입을 막으려는 것인가.
행여 당선인과 대통령이 ‘침묵의 카르텔’속에서 소기의 스케쥴이 가동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칭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 묘한 냄새가 풀풀나는 ‘설 특별사면’을 추진하자 많은 이들은 이 대통령과 박 당선인의 마지막 기(氣)싸움 결과에 눈길을 쏟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퇴임 보름여를 앞두고 설(2월10일)특사를 단행,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김재홍 전 KT&G 복지재단 이사장에게 제 식구를 위한 은전을 정말 뿌릴 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이 대통령이 기어이 모든 비난을 무릎쓰면서 단행하고 박 당선인 또한 이를 묵인하는 지가.
여기에 최근 1심 선고를 받은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 항소를 포기하고 형 확정시 특사 대상에 포함될 소지도 쟁점의 한 지류이다.
사면은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다.
노무현 정부, 김대중 정부, 김영삼 정부등 역대 대통령들 모두 취임초나 특정 국경일때 국민화합이나 경제를 위한다는 차원에서 수차례의 특사를 실시했다. 이명박 정부도 삼성 이건희 회장 1인 특사등 지금까지 모두 6회나 이 권한을 행사했다.
특사 단행시마다 특권층에 특혜를 주는 것 아니냐는 따가운 비판이 있었지만 이번 특사설이 어느때보다 논란이 되고 정치적 파장을 일으키는 것은 크게 두가지 이유 때문이다.
비리를 저지르고 법원 결정에 따라 형을 살고 있는 대통령의 측근이나 현 권력 핵심인사에게 면죄부를 남발한다는 게 첫 번째 지적이다. 그것도 국민 통합, 사회 통합의 명분을 내결면서 말이다.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 대통령의 친구, 대통령의 처삼촌, 대통령의 형이 설 특사에 포함될 경우, 대다수 국민들 눈에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 결국은 자기 식구를 구명하는 데에 쓰여졌다고 볼 것이다.
권력형 비리로 수감중인 대통령 측근을 풀어주는 권한으로 특별사면이 남용될 경우, 국민통합 사회통합의 길은 더 요원할 수 밖에 없다는 비아냥의 목소리가 더욱 커질게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자부한다면 ‘특별’한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음은 설 특사에 대한 박근혜 당선인의 입장과 행동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도 요즘 입방아의 재료이다.
여의도 일각에서는 밑도 끝도 없이 대통령과 당선인의 특사 교감설도 나돈다. 당선인 입장에서는 매우 불쾌하고 어처구니 없겠지만 교감설을 지피는 ‘군불떼기’작업이 전혀 없는 게 아니다.
지난해 12월 28일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당선인은 비공개 회동을 가졌다. 그날 40여분간 진행된 두 사람의 단독회동과 관련, 조윤선 당선인 대변인은 “민생예산 통과를 위해 이 대통령과 정부의 협조를 요청했고 , 이 대통령은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등의 이야기를 나눴다고 전했다.
이 대통령과 박 당선인은 정권 인수인계와 관련된 폭넓은 현안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 받은 것으로 보이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주로 민생예산협조 대목만 국민들에게 알려졌다.
이후 해를 넘기면서 민생예산은 우여곡절 끝에 통과됐고 문제의 ‘군불떼기’ 작업용 멘트가 1월7일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에게서 나온다.
임 전 실장은 평화방송 라디오에 출연해 이명박 대통령 측근의 특별사면 가능성에 대해 운을 뗐다.
“새 임금이 나오면 옥문을 열어준다고 하지 않습니까”(대통령 측근 특사가능성에 대한 언급) “그건 당선인하고 현 대통령께서 아마 어떤 형태로든 의견을 주고받지 않을까 싶습니다”(특사를 박근혜 당선인이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냐는 질문에 대한 임 전실장 언급)
대통령 측근 특사가능성에 대해 대통령과 당선인이 어떤 형태로든 의견을 주고받지 않을까 싶다는 그의 발언은 귀흘려 넘기기에는 많을 걸 함축하고 있다. 대통령과 당선인의 교감설 진앙지이다.
임 전 실장의 발언으로 설날 특사설이 불거지자 이틀뒤인 1월9일,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은 “각계 각층에서 공식,비공식적으로 사면을 탄원하거나 요구하고 있어 검토하고 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사면시기나 대상에 대해 특정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며 청와대측은 방어진을 쳤다. 청와대는 이미 지난해 10월부터 법무부와 특사논의를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야당은 물론 박 당선인측도 이 대통령 측근 특사는 있을수 없다고 맹공을 퍼붓고 있다.
박 당선인 측근들은 “사면권이 힘센 사람을 봐주는 수단으로 악용돼서는 안된다”는 당선인의 예전 주장을 인용하면서 이 대통령의 임기말 특사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피력중이다.
당선인측은 민심 풍향계가 대통령 측근 특사 반대로 불고 있다는 걸 노련하게 느끼고 있다.
박 당선인은 한나라당 대표시절에 노무현 대통령의 특사와 관련해 “사면권은 대통령 고유 권한이지만 대통령 마음대로 하라고 주어진 것은 아니다”고 반박한 적이 있다.
대선 후보때에는 권력형 비리 연루자나 경제사범등 특권층에 대한 사면을 제한하고 징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제 ‘법질서와 원칙‘을 자신의 특장으로 여기고 있는 박 당선인은 지금의 설 특사 국면에서 입장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단적으로 “특사는 대통령의 권한이다”고 매듭지으면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공을 넘기는 것도 한 요령이다. 아니면 “임기말 측근용 특사는 민심과 어긋난다”고 못을 박으면서 박근혜 정부의 짐으로 떠 안아야 한다.
설날이 다가올수록 특사설은 새 정부를 원칙을 시험하는 리트머스가 될 것이다.
박 당선인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색다른 법치주의를 내걸면서 이 상황을 벗어날까, 아니면 혹자의 관측처럼 삼일절 박근혜 대통령의 특사를 원점에서 검토할까.
혹시 며칠뒤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 항소를 포기한다는 뉴스가 나오면 이명박 대통령의 설 특사설은 정국을 요동치게 만드는 핵 뇌관으로 작동할 것이다.
박근혜 당선인에게 많은 시간이 있는 게 아니다. / 논설위원 명재곤
[뉴스핌 Newspim] 명재곤 논설위원 (s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