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문형민 기자] 증권업계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정부의 행정지도에 따라 시작한 업무가 다른 정부기관으로부터 담합으로 지목됐다. 검찰 고발까지 당해 벌금형 이상이 확정될 경우 자본시장법에 따라 3년간 신규 영업에 진출할 수 없고, 5년간 자회사의 대주주가 될 수 없다. 증권사들은 성장 전략이 큰 위기에 처한 셈이다.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국민주택채권 등 소액채권 담합 혐의로 검찰 고발 당한 대형 증권사의 한 임원은 5일 기자를 만나 하소연했다.
그는 "2004년 당시 건설교통부(현 국토해양부)가 증권사에 국고채와 국민주택채권간 수익률 차이(스프레드)를 기존 40bp(1bp=0.01%)에서 10bp 안팎으로 축소할 것을 권고해 증권사들은 이에 따랐을 뿐"이라며 "증권사들이 소액채권시장을 만드는 데 기여한 것은 감안하지 않고, 담합으로만 몰아부치는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정부는 당시 소액국공채의 실물발행제를 등록발행제로 바꿨다. 국민들이 부동산이나 자동차를 살 때 의무적으로 사야하는 채권이지만 표면금리가 낮고, 만기가 5년 이상으로 길어 증권사들이 직접거래를 기피했다. 국민들은 법무사 등 중간수집상들에게 금리도 따지지 않은 채 넘겨야했다. 정부는 국민들의 손해를 막고 위변조 위험, 분실 도난 위험, 재산은닉수단으로 악용 등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제도 개선에 나섰다.
제도 개선 과정에 한국거래소와 증권사들이 참여했다. 매수전담증권사는 매도대행증권사를 통해 나오는 물량을 신고시장수익률로 전량 인수해 소액채권시장의 유동성과 환금성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
증권사들은 금리의 변동성으로 인해 비싸게 사들여 싸게 팔게 될 위험도 안고 있었다. 이에 정부는 매수전담증권사들에게 시장수익률을 제출할 수 있는 권한을 줬다. 제출한 수익률을 산술평균해 신고시장수익률을 정하므로 스스로 매수할 채권가격을 정하게 된 것.
여기에 한국거래소는 국민의 채권 매입 부담을 줄이기 위해 스프레드 축소를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증권사들에게 채권 수익률 범위를 지정해주기도 했다. 증권사들은 이런 상황에서 서로 적정한 가격을 제출하기 위해 장외 채권 거래에 통상적으로 이용하던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 협의를 한 것이다.
증권사들이 참여해 이 제도를 정착시킴으로써 국민들이 받은 이익이 더 커졌다는 것도 봐달라는게 증권업계의 주장이다.
한편, 증권업계는 지난해 ELW 관련 증권사 사장들의 무더기 소송, 올해 CD금리 담합 조사 등으로 잇따라 곤혹을 치루고 있다. 업계의 잘못과 허점을 바로잡는 계기이기도 하지만 일련의 사건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고 있다고 보고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감사원, 공정위 등 감독당국은 물론 검찰 등 내부에서 금융을 잘 아는 것으로 평가를 받으면 몸 값이 달라진다"고 귀뜸했다. 정권 교체기를 앞두고 한 건을 올리려는 의도가 숨어있다는 얘기다.
ELW 소송 1심에서 12개 증권사 사장 모두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CD금리 담합 건도 이슈가 된 지 3개월여 지났지만 진척된 상황이 없다. 이 과정에서 상처를 입은 건 증권사들뿐이다.
[뉴스핌 Newspim] 문형민 기자 (hyung13@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