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설사운영 그룹들 재무구조개선 절치부심
[뉴스핌=이강혁 기자] "중견그룹들 입장에서야 웅진 사태가 남일 같지는 않죠. 대부분 비슷한 성장모델을 추구해 왔다는 점에서 위기감이 드는 건 당연합니다."
재계 50위권의 한 중견그룹 관계자는 "선택과 집중보다는 성장에 좀더 무게를 둬 왔다는 점에서 '조' 단위 매출을 올리더라도 한곳에서 구멍난 '억' 단위 자금이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게 중견들 현실 아니겠냐"며 이같이 말했다.
웅진그룹 지주사인 웅진홀딩스와 계열사 극동건설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중견그룹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공격적인 M&A(인수합병)로 덩치를 키우면서 대부분 웅진그룹이 그동안 고민해왔던 문제들과 비슷한 현안들을 안고 있어서다.
◆ '맨손 신화'의 추락..자신감, 오히려 '화' 불렀나
웅진그룹은 재계의 대표적인 '맨손 신화'로 불린다. 그룹을 진두지휘하는 윤석금 회장이 책 세일즈맨에서 출발해 맨손으로 그룹을 만들면서 붙여진 별칭이다.
영속 할 것 같았던 그룹의 운명은 이제 창사이래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맨손 신화의 총수도 한번 무너지기 시작한 그룹 중심축을 다시 세우기는 힘겨워 보인다.
웅진그룹의 지주회사인 웅진홀딩스가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 26일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극동건설로 인한 채권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자회사인 극동건설은 하루 전 150억원의 만기어음을 막지 못해 1차 부도를 냈다. 극동건설은 웅진홀딩스와 함께 같은날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웅진그룹의 중심을 잡고 있던 지주목이 그동안 안으로 심하게 곪고 있었던 셈이다.
사실 웅진그룹의 이상징후는 극동건설 인수 이후 줄곧 시장으로부터 '무리한 확장 아니냐'는 갸웃한 시선을 받았던 부분이다.
심상치 않은 글로벌 경제의 흐름 속에서 국내 굴지의 대그룹들이 '다운사이징'을 외치며 군살빼기에 나서고 있었지만, '극동건설을 재무적 부담까지 가지면서 왜 인수하느냐'는 시선이었다.
하지만 웅진그룹은 과감한 몸집 불리기를 선택했다. 2007년 극동건설을 론스타로부터 6600억원에 인수할 때만 하더라도 재무적 부담이나 건설 경기가 크게 나쁘지 않았다는 판단이 컸다.
당시 2조원 대 매출을 기록하면서 재계 50위권의 중견그룹 면모를 갖춰가던 웅진에게 극동건설은 장미빛 미래 중 하나였던 것이다.
실제 웅진그룹은 이런 공격적인 M&A 전략으로 성장해 왔다.
또 대부분 즉각적인 현금창출이 가능한 업종 위주로 M&A를 진행하면서 사업다각화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1980년 출판업으로 시작해 86년 웅진식품, 89년 웅진코웨이, 2005년 웅진건설, 2006년 웅진캐피탈과 웅진에너지 등을 설립하며 10여개 계열사를 거느렸다.
막강한 현금흐름으로 무장한 사업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자신감은 공격적인 M&A를 가능하게 했고, 결국 이런 야망은 이제 시련으로 돌아왔다.
웅진그룹의 주력인 웅진홀딩스, 극동거널, 웅진코웨이, 웅진케미칼, 웅진싱크빅, 웅진에너지, 웅진식품 등 주력 계열사 7곳의 부채는 6조1000여원으로, 웅진홀딩스(부채 3조316억원), 극동건설(1조758억원)이 절반 이상의 부채를 끌어안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공교롭게도 웅진그룹은 극동건설을 인수할 당시 '2012년까지 그룹사 매출을 10조원대 수준으로 만들고 재계 30위권에 진입하겠다'고 목표를 세웠지만 이런 꿈의 해인 올해가 최대의 시련의 해로 바뀌고 말았다"고 안타까워 했다.
◆ 급성장 중견그룹들..곳곳서 '롤러코스터'
웅진그룹처럼 성장을 위한 확장경영을 펼치며 급성장한 중견그룹들이 추락의 길로 들어선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단적으로 대한전선그룹은 무리한 사업확장에 따라 후폭풍을 맞으며 재계 50위권까지 추락해 여전히 고난의 시절을 보내고 있다. 재계 70위권에 진입할 정도로 규모를 키웠던 C&그룹도 사업확장 부작용에 경기 침체까지 겹치면서 급기야 해체되고 말았다.
특히 유진그룹은 2008년 하이마트를 인수했다가 최근 다시 매각했다. 무리한 인수로 인해 막대한 부채를 짊어졌고 유진그룹 주력사업이 내리막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경영권 분쟁까지 겪으며 현재 바닥부터 새출발을 다짐 중이다.
공격적인 M&A로 성장해온 STX그룹도 자유롭지 못하다.
실제 STX그룹은 지난 24일 유동성 확보를 위해 계열사 STX에너지의 지분 최대 49%를 일본 오릭스에 매각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STX OSV를 매각하는 한편, 해외자원개발 지분, 경제성 없는 선박을 매각하는 등 '팔 수 있는 것'은 모두 팔아 재무구조개선에 안간힘을 쓰는 상태다.
이랜드그룹 역시 2006년 까르프의 대형마트 점포를 인수하며 유통업계 뛰어들었지만 쌓이는 부채를 해결하지 못하고 2년만에 다시 매각하기도 했다.
굴지의 대기업집단도 마찬가지 사정으로 고전 중인 곳이 여럿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이다.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무리하게 인수하며 '승자의 저주'에 빠져 그룹 해체의 위기를 맞았다. 여파로 금호아시아나와 금호석유화학으로 이합작업이 진행 중이다. 금호그룹은 여전히 금융권의 지원 속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삼성그룹, LG그룹, 롯데그룹 등 대그룹들은 이런 문제를 미연해 방지하기 위한 감량경영을 가속화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까지 장기 불황을 예고하는 마당이어서 지속적인 군살빼기가 진행 중인 것이다. 사업이나 조직, 인력을 합치고 줄이면서 위기 상황에 대비하는 경영 효율화 작업이 한창이다.
삼성은 올해 들어서만 자체 경쟁력 강화와 효율성 극대화 측면에서 사업을 뭉치며 체중을 줄여왔다. 삼성전기가 가지고 있던 삼성LED 지분을 삼성전자가 가져온 사례가 대표적으로 손꼽힌다. 되는 사업을 뭉치고 불확실한 사업의 체중은 줄이겠다는 의미가 크다.
LG도 전자분야 업황이 어려워지면서 조직을 통합하고 최고운영책임자를 신설하는 등 슬림화 작업을 진행했다. 일부 천덕꾸러기 사업의 경우는 하나로 통합하는 방안도 심도있게 논의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롯데 역시 그동안 적극적인 M&A를 통해 불려왔던 몸집을 빠르게 줄여가는 중이다. 무거워진 조직을 슬림화하면서 분산된 힘을 한곳에 모으겠다는 것이다. 신동빈 회장은 여러차례 사장단을 모아놓고 "계열사가 너무 많으니 사업영역이 비슷한 계열사를 합쳐라"라고 주문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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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이강혁 기자 (ik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