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기석 기자] 기획재정부 박재완 장관이 국제유가 급등에 이어 “내수가 취약하다”고 공식 언급하고 나섰다. 정부의 정책 초점이 내수 방어쪽으로 이동할 태세여서 주목된다.
유로존 재정위기가 그리스 2차 구제금융지원 등으로 다소 잠잠해지는 가운데 미국 경기가 회복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 긴박한 금융현안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국내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 역시 내수 방어를 위해 재정집행률을 높이며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렇지만 국제유가 급등세가 지속되고 국제원자재 가격 역시 고공행진을 지속하면서 내수 진작을 위한 묘책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는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둔 상태이고 이명박 정부가 마지막 해를 맞아 유종의 미(有終之美)를 거두기 위해서 내수 활성화는 중요 과제일 수밖에 없다.
일자리 창출과 물가 안정 등 서민경제 안정을 무엇보다 중시하겠다는 것이 올해 경제정책의 최우선 목표이며 경제성장률 3%대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내수방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 재정부 박재완 장관, 국제유가 비정상적, “내수 취약” 공식 언급
22일 기획재정부 박재완 장관은 그랜드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열린 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KBCSD) 정기총회에서 <최근 경제동향 및 정책방향>에 대한 강연을 통해 “국내경제는 세계경제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불확실성경제전망을 낙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박 장관은 “지난해 말 전망 때보다 두 가지 대외여건이 달라졌다“며 “유럽의 재정위기는 생각보다 최악의 상황을 덜었다는 것과 비정상적으로 높은 유가”라고 말했다.
국제유가가 지난해 많이 올라 평균 배럴당 106달러를 기록해서 올해는 오르지 않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되레 20% 가까이 오르면서 국내 경제에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란발 사태에 따른 수입물량 축소 등 물량에 대한 걱정보다는 그에 따라 가격 상승세가 가팔라질 것에 대해 더 우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 장관은 “원유 비축에 대해서는 걱정을 하지 않는다”며 “다만 가격상승세에 대해서는 걱정이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중동 순방 때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라크 등에서 수입선을 확보해 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수입물량은 걱정이 덜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국제유가의 상승세가 이란발 사태가 악화될 경우를 포함해 최근 글로벌 유동성 지속 속에서 미국경기가 다소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4월 이후 미국의 드라이빙 시즌으로 수요가 증가하는 시기와도 맞물려 있어 하락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이에 따라 국제유가의 상승이 올해 내내 지속될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국내 경기가 당초 상저하고(上底下高)의 패턴을 기대했으나 이같은 전망이 훼손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이날 강연에서 박재완 장관은 “전체적으로는 "금융부문에서는 우려가 줄고 실물면에서는 우려가 남아있다“며 ”내수가 취약한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고 내수 취약성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전날 박재완 장관이 <민관 합동 경제금융점검 간담회>에서 만난 민간 전문가들이 ▲ 국제유가 상승에 따라 글로벌 경기회복 추세가 위축될 가능성이 심화되고 있으며, ▲ 특히 국내 물가안정기조가 약화되고 내수 침체가 가속화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 것과 무관치 않다.
이에 대해 박 장관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세계 경제동향의 리스크 요인에 대한 모니터링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며 “일자리 창출, 내수 활력 제고 등을 통해 국내 경기 보완 노력을 꾸준히 추진하겠다”고 답변했었다.
◆ 국내 경기 내수 약화 우려, 정부 정책 내수 보완 초점
경제전문가들 역시 국제유가 급등에 따라 경기 위축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정부 정책의 초점이 내수 방어쪽으로 전개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을 하면서 정부의 정책방향에도 초점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의 현오석 원장은 최근 “당초 올해 국제유가는 100달러선 정도로 예상을 하고 경제성장률을 전망했으나 되레 상승해서 120달러선 이상으로 올랐다”며 “국제유가 상승분을 고려해 성장률이 좀더 둔화되는 쪽으로 작용할 공산이 커졌다”고 말했다.
현오석 원장은 “올해의 경우 수출이 경제성장률에서 차지하는 기여도가 크게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며 “이런 가운데 내수가 더 취약해질 경우 성장률 전망을 3% 후반선에서 하향할 우려도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동양증권의 이철희 수석이코노미스트도 “국제유가 상승세가 지속되면서 국내 실물 경제에 부담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며 “올해 국제유가가 하반기 들어 완만해지지 않고 고공행진을 지속한다면 3%대 초반대의 성장률도 안심하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정부 역시 최근 내수 진작을 위한 행보를 진전시켜 나가고 있다. 당초 상반기 재정집행률을 60%로 잡고 1/4분기 중 30%의 목표를 추진하려고 했으나, 지난 15일 열린 <제5차 재정관리점검회의>에서 이를 32%로 높여 5조원의 재정집행을 앞당기기로 했다.
또 실제 재정집행률도 높여나가고 있다. 지난 2월말까지 연간 계획금액인 276조 8000억원 중에서 55조 300억원을 집행, 집행률이 20%에 달함으로써 당초 17.5% 목표치를 초과달성하는 등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김동연 제2차관은 “일부 출연 보조사업의 경우 국회 예산통과 지연 등으로 사업자 선정순연, 동절기 공사 어려움 등으로 최종 수요자에게 자금 전달이 다소 늦어지고 있다”며 “각부처에서는 현재 진행중인 사업자 공모선정 등을 조속히 완료하고, 3월부터는 시설공사도 본격적을 추진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독려했다.
미래에셋증권의 박희찬 이코노미스트는 “정부가 상반기 중에 재정지출을 예산의 70% 이상 배정하는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된 현상으로 크게 새로울 것은 없다”면서도 “상반기 중 순수출의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므로 재정지출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꽤 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박희찬 이코노미스트는 “중요한 것은 실제로 재정집행이 강도있게 진행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며 “상반기 중 내수 경기, 나아가 경기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향후 승수 및 시차효과 등으로 하반기까지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양증권의 이철희 이코노미스트는 “정부의 최근 재정집행은 4대강 사업이 종료됨에 따라 사업자들과 직접 연관된 쪽으로 집행되는 것이 아니라 보육비 지원 등 가계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이에 따라 정부의 재정집행률이 커진다고 해도 커다란 효과를 갖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뉴스핌 Newspim] 이기석 기자 (reuhan@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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