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기석 기자] 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을 하면서 국내 경제에 먹구름이 잔뜩 드리워지고 있다.
여기에 원유 뿐만 아니라 원자재 가격 역시 급등세를 보이면서 원자재 전반으로 공급 충격이 확산되는 모습이어서 우려된다.
특히 미국의 이란 핵개발 관련 금융제재가 본격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이란의 반발 역시 수그러들지 않고 있어 국제유가는 올해 내내 상승 압력이 불가피해 보인다.
중국이 광물자원을 보호한다며 철광석 등 6개 광물에 대한 자원세를 인상했고, 인도네시아도 오는 5월부터 니켈 등 광물 원석 수출을 금지하고 자원세 도입을 검토할 방침이다.
더군다나 오는 7월부터 호주 의회가 자국의 철광석과 석탄 기업들에 대해 이른바 ‘자원세’(Resource Tax)를 부과할 예정이어서 수급 차질 걱정까지 늘게 됐다.
이에 따라 국제 유가 충격에 이어 원자재 공급 충격이 더해지면서 정부 내에서도 비상이 걸렸다.
국제유가 상승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원자재 공급 차질까지 더해질 경우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비용인상 인플레이션 뿐만 아니라 수급 자체가 차질을 빚으면서 아예 생산을 못하는 지경까지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 정부 위기대책회의, 원자재 수급 차질 여부 긴급 점검
21일 기획재정부 박재완 장관은 남대문에 위치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2012년 제10차 위기관리대책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중동 정세와 각국의 원자재 수출국들의 상황에 따라 수급에 차질이 발생할 위험요인이 항상 있다”고 위기감을 나타냈다.
이어 박재완 장관은 “원자재 상시 경보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원자재시장의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며 “주요 원자재에 대한 방출 규모와 비출물량을 확대하여 수급 안정을 지원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현재 대표적인 원자재로 수요가 큰 석유는 185일, 약 6개월치, LNG는 20일분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으며, 다른 주요 원자재 역시 아직은 수급 상황이 양호하다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정부 역시 원자재 수급 차질에 대해 안도하고 있지는 못하는 처지이다. 미국의 금융 제재 압박이 커질 경우 이란이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맞설 경우 국내 원유도입선이 꽉 막히기 때문이다.
국내 원유 도입의 주요 루트인 호르무즈해협 통과 원유의 수입 비중은 지난해 기준으로 연간 7억 1000만배럴, 하루 216만 배럴오 전체 중동산 중에서 98%, 전체 원유 총수입 중에서 87%나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원유의 경우 정부 100일, 민간 85일 등 185일분을 보유하고 있어 단기 수급 차질에 대응할 수는 있을 것”이라면서도 “그렇지만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할 경우 유가 급등과 함께 수급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 국제원자재 공급 충격, 이란 사태만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국제유가 상승이 올해 내내 지속될 가능성이 있는 데다 국제 원자재 공급 차질까지 빚어질 수 있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먼저 이란 사태의 경우 미국의 이란산 원유수입 감축을 놓고 압박 수위를 한층 높여가고 있다.
이란산 원유수입을 줄이기로 한 일본과 한국, 유럽국가들은 금융제재 대상에서 제외를 했지만, 또다른 12개국에 대해 새로운 금융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경고를 날렸다.
20일(현지시간) 미국의 국무부 관계자는 “미국이 이란산 원유를 수입하는 국가들 중 12개국이 이란으로부터 원유 수입을 대폭 축소하지 않을 경우 새로운 금융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해당 국가들의 명단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현재 이란의 주요 원유 수입국들은 중국, 인도, 터키,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이 포함돼 있다.
유럽국가들과 한국 일본이 일차 수입감축에 동참함으로써 제제대상에서 제외됐지만, 이란에 대한 제재효과가 크지 않자 새로운 압박 카드를 들면서 이란산 원유수입국가들에 경고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적어도 올해까지는 글로벌 경기 회복 조짐에 더해 미국과 이란간의 갈등이 심화 또는 정체되는 과정에서 국제유가는 내릴 가능성보다는 상승 압박이 커지는 상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만약 이란이 미국의 제재에 불만을 품고 호르무즈해협 봉쇄를 단행한다면 군사적 위협까지 증폭하면서 공포감이 원자재시장을 강타할 위험마저 도사리고 있다.
현대증권의 이상재 이코노미스트는 “이란의 핵개발 관련 사태는 좀더 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만 일시적인 변수로 보고 있다”며 “만약 이란 변수가 상시화된다면 충격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호주 ‘자원세’ 전격 도입, 중국 인도네시아도 ‘자원 보호 나선다’
유로존의 재정위기가 다소간 완화될 조짐을 보이고 미국의 경기가 생각보다 나아지면서 글로벌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가 에너지 수요를 부추기고 있다.
특히 유럽과 미국의 양적완화 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의 양적완화까지 더해지면서 투기적 수요가 국제 유가 및 원자재 가격을 들어 올리고 있는 상태이다.
이런 가운데 호주가 자원세를 전격 도입해 오는 7월부터 시행하고, 중국이 자원세 인상에 나서는 가운데 인도네시아도 광물 원석 수출을 금지하는 등 ‘원자재 전쟁’ 상태로 들어설 것으로 우려된다.
지난 19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호주 의회는 2년여의 진통 끝에 오는 7월부터 자국 내 철광석 및 석탄 개발기업들한테 이이률이 12%를 넘는 경우 순이익의 30%에 이르는 자원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국내 도입 철광석과 석탄의 수입가격 상승이 우려된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기준으로 철광석 수입량의 68%, 석탄 수입량의 35%를 호주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동남아 최대 광물 수출국인 인도네시아도 원자재 수출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당초 2014년으로 예정돼 있던 광물원석 수출 금지를 오는 5월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니켈과 보크사이트 등 일부 광물에 대한 수출 금지를 당초 예정보다 2년 앞당긴 것이다.. 석탄과 구리 등에 대해서는 올해부터 자원세를 징수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인도네시아 산업부의 모하메드 히다야트 장관은 "광물 원석 수출금지에 앞서 자원세를 먼저 도입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 중국도 광물자원 보호라는 이유를 들어 철광석 등 6개 광물 생산에 대한 자원세를 인상했다. 이번의 자원세 인상 조정은 광물자원 보호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지만 조정폭이 커 관련 업계가 느끼는 원가부담은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중국 언론이 보도했다.
상하이저널에 따르면, 최근 중국 재정부, 국가세무총국은 철광석, 주석, 몰리브덴, 마그네사이트, 활석, 붕소 등 6개 광물의 자원세를 인상한다는 내용을 담은 ‘주석 광물 등 자원세 적용세율 조정 통지’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지난 1일부터 철광석에 부과되는 세금은 종전의 60%에서 80%로 올랐다. 철광석 세금은 품질에 따라 톤당 2~30위안으로 다르게 부과돼 왔다.
주석 광물의 인상폭이 가장 컸고 구체적으로 1등급 주석은 톤당 20위안, 2등급은 18위안, 3등급 16위안, 4등급 14위안, 5등급 12위안으로 20배 가깝게 높아진 셈이다.
현재 주석은 주로 전자, 석유화학, 야금, 기계설비 등에 사용되고 있고 몰리브덴은 철강, 전자, 화학공업, 제약, 제지 등의 분야에서 쓰인다.
한국수입업협회 관계자는 “국제유가 급등과 이란의 석유화학제품 수출 중단 등에 따라 수급이 타이트해지면서 유화원료가 대폭 올랐다”며 “또 유무기원료의 생산감소, LME 재고감소와 수요증가로 비철금속 등 원자재가격이 급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재고소진에 ‘따른 구매 회복세와 이란발 고유가 사태 등 복합적인 요소로 국제원자재 수입가격이 전반적으로 상승하고 있다”며 “3월 이후에도 이런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보여 관련업계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동양증권의 이철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국제유가 급등세가 국내 경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내수 축소와 맞물려 경기 회복 시기를 지연시키고 있다”며 “유가와 원자재 충격이 더 커질 경우 국내에 미칠 악영향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있는데 국민들의 에너지 소비 행태는 전혀 바뀌지 않고 있다”며 “정부도 비상 상황에서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지만 국민들도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이기석 기자 (reuhan@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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