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홍승훈 기자] 석달여전 씨티은행 사외이사들이 '상근감사위원 직무규정 완화 개정안'에 전원 반대표를 던졌다. 결국 해당 안건은 이사회에서 부결처리됐다. 본래 경영진을 견제, 감시하라고 선임한 사외이사들이 타당하지 않은 안건에 반대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지만 언론과 금융권 안팎에선 '사외이사의 반란'이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일각에선 하영구 행장의 리더십 위기라는 지적도 들렸지만 '거수기' 일색의 현 사외이사 풍토를 깬 모범사례란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사실 국내 사외이사 시스템하에선 나타나기 쉽지않은 사건이었다.
올해 역시 주총을 앞둔 금융권 안팎에선 자격미달 사외이사 문제로 시끌시끌하다. 최근 사외이사를 선임한 외환은행, 내주부터 이어질 은행과 금융지주에서 선임할 사외이사 후보들을 둘러싼 자격논란이 한창이다.
외환은행의 경우 계열 자회사 대표이사 및 사외이사를 오랜 기간 지낸 천진석, 김주성 사외이사, 그리고 윤용로 외환은행장과 과거 재경부에서 같이 지낸 방영민 이사에 대한 친분인사 논란이 일고 있다.
다음주 주총을 앞둔 KB금융지주 역시 사외이사에 선임 예정인 황건호, 이영남, 조재목씨를 두고 개인 자격미달에서부터 낙하산 인사 논란으로 내부반발이 크다.
이처럼 해마다 반복되는 여론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금융회사 경영진은 자격미달의 사외이사를 재선임하고 소위 친분인사를 신규 선임하는 행태가 이어진다. 세간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재선임되려고, 새롭게 자리를 꿰차려는 사외이사들이 넘쳐난다.
처우가 좋아서일까. 실제로 사외이사 연봉은 꽤 짭짤한 편이다. 불과 3~4년전까지 신한지주는 1억원을 웃도는 연봉을, KB금융도 6000만원대 연봉을 주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삭감했다. 이후 사외이사 연봉수준은 평준화되는 분위기다. 편차는 있지만 최근 은행과 금융지주 사외이사 연봉 수준은 대략 4000만~5000만원 정도로 알려졌다. 한 달에 300만~400만원 정도가 통장에 찍힌다고 한다. 한두 달에 한번 출근해 잠시 이사회에 참석하는 것 치고는 꽤 괜찮다는 평가다.
현직 금융회사 사외이사 A씨는 "정부 고위직 출신들과 교수들이 대부분인데 사실 공직을 그만둔 이들에게 매달 들어오는 300만~400만원의 돈은 사실 큰 돈"이라며 "여기에다 부수입이나 해외출장 등도 있고 상대적으로 업무부담은 거의 없어 인기가 있다"고 귀띔했다.
사외이사 명함 한장이 갖는 효과도 쏠쏠하다. 시중은행 사외이사로 재직했던 교수 B씨에 따르면 사외이사를 맡은 후 여러 정부관련 부처에서 연구용역을 따내거나 자문위원 등으로 위촉될 가능성도 높다는 점을 든다. 이 외에도 사외이사 명함 한장이 사회적으로 발휘되는 특혜가 꽤 있다는 전언이다.
하지만 이렇게 얻어낸 사외이사직으로 그들은 경영진을 감시 견제하고 제대로된 의사결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을까.
A씨는 "사외이사가 경영진의 결정 사안에 딴지를 걸거나 발목을 잡을만한 형편도 상황도 안된다. 그런 이들은 1년만에 쫓겨나더라. 또 그렇게 나가면 다른 기업에서 사외이사 의뢰도 안들어온다"고 실토했다.
국내 대형 금융지주 고위간부 출신의 C씨 역시 "이사회 결정에 반대하는 사외이사를 어느 경영자가 좋아하겠냐"며 "쓴소리 몇차례 했다간 1년 임기뒤에 옷 벗어야한다. 이사회 자료 역시 직전일 받기 때문에 제대로된 사업검토나 의견개진이 원천적으로 차단돼 있다"고 비판했다.
금융당국 역시 이같은 사태에 대한 책임을 피해갈 순 없다. 매년 3~5월 주총시즌이 되면 청와대, 국회,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 관련 부처에서 사외이사 청탁이 금융감독원으로 집결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주총시즌 금감원 수석부원장 등 인사라인 간부들이 바빠지는 이유다.
외풍에 민감한 금감원 간부로선 청탁을 귓등으로 넘길 수도 없고, 또 역으로 이를 조율하며 추후 금감원 출신의 금융회사 낙하산 명분을 만들기도 한다.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로 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한때 이같은 사안을 조율하던 금감원 간부 출신들은 지금 이 시각 은행 곳곳에 포진해 전 직장인 금감원으로 사외이사 청탁을 하고 있다. 돌고 도는 구조다.
주총 시즌이 다시 돌아왔고, 사외이사 자격논란도 또다시 불거진다. 하지만 결론은 이미 나와 있다. 금융회사와 금융당국이 정해준 기존 그림이다. 주인 없는 금융지주와 은행들, 그들의 공공성과 투명한 지배구조 개선에 희망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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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홍승훈 기자 (deerbear@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