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사헌 기자] "주식시장은 과거 5차례 경기침체를 9번이나 맞출 정도로 예측력이 대단하다". 작고한 미국 첫 노벨상 수상자인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의 농담이다.
최근 미국 월가 대형 투자은행(IB)의 경제학자들은 이런 농담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모양이다. 미국 국가신용등급 강등 사태 전후로 금융시장의 격변이 지속되자 월가 IB들은 시시각각 변화되는 시장의 움직임을 따라 미국 경제전망을 수정했다.
특히 골드만삭스와 JP모간은 2주 사이에 미국 성장률 전망치를 2차례나 수정했다. 골드만삭스의 경우 8월 들어 3차례 경제 전망을 수정한 경우다. IB들은 보통 한 달에 한 차례 정도 경제전망을 재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은 이 보다 자주 재평가 프로세스를 가동하고 있음이 확인된 셈이다.
이들 외에도 모간스탠리와 씨티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 등 유수한 IB 소속 경제전문가들이 최근 경제전망 수정 대열에 동참했다.
상반기까지만 해도 빠른 경기회복에 방점을 찍던 월가 경제전문가들이 지금은 미국 경제가 다시 침체로 빠져들 확률이 반반, 즉 50%에 이른 것으로 보고 있다.
왜 이렇게 빠르게 전망을 수정하는 것일까? 바로 경제 주체의 '기대', 정확하게는 '신뢰 수준'의 변화를 중요하게 보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금융시장의 변동성은 경기를 6개월 정도 선반영한다는 것이 상식인데, 최근 주가 폭락 양상은 이런 상식과 더불어 경제 주체들의 신뢰 수준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는 요인이다.
더구나 지금 금융시장의 동요는 아마도 정책당국이 경기 침체 위험에도 불구하고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소진되었을 것이란 불안감과, 나아가 최근까지 정책당국의 정책 효과에 대한 실망감과 불신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더욱 '신뢰의 위기'가 강조된다.
미국 S&P500 지수는 지난 4월 29일 고점에서 월요일 마감 시점까지 17.6%나 조정받았다. 이 정도 주가 하락이 명백한 경기 침체의 신호였던 사례는 없지만, 이 가운데 미시건대 소비자신뢰지수가 1980년 이래 최저치로 추락했다는 소식은 공포감을 자아냈다. 재계신뢰도 역시 악화되어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이 발표한 중서부지역 제조업지수는 2년반 최저치로 내려섰다.
이 가운데 지난주 골드만삭스는 3분기 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2%에서 1%로 1%포인트나 급격하게 하향조정했다. 4분기 전망치도 1.5%로 내려잡았다.
골드만 측은 이 같은 전망치 하향 조정이 부담스러웠는지 "금융시장의 변동성과 채무 한도 논쟁이 지속되면서 서베이 자료가 경기 하강 쪽으로 쏠리는 경향을 보였을 수 있다"고 설명해다. 다만 골드만은 "이런 것도 중요한 경기순환 지표이며, 모두 앞으로 성장률이 약할 것을 시사한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가장 최근 거시지표 변화와 시장의 상황을 감안했을 경우 미국 경제가 다시 침체로 빠져들 확률이 1/3 정도가 된다고 판단했다.
지난 주말 JP모간의 경우도 4분기 성장률 전망치를 1%로, 내년 1분기 전망치는 0.5%로 각각 1.5%포인트 및 1%포인트 대폭 하향조정했다.
하지만 월가 대형 IB의 불길한 전망에도 불구하고, 최근 주식시장의 움직임을 이미 경기침체가 확실히 발생하는 것을 예상하는 정도로 과장된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2008년의 경험으로 보자면 증시나 금융시장 전반이 불안할 때는 경제전망도 역시 크게 변화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2008년 금융 위기 발생 당시에는 신용 경색이 심각했지만, 지금은 그런 위험이 보이지 않는다. 금융시장이나 시스템이 잘 작동하고 있다.
특히 일부 경제분석가들은 미국 경기침체 여부를 판단하는 전미경제연구소(NBER)가 주로 보는 4가지 변수로 볼 때 지금 미국 경제는 명백한 침체 보다는 경제성장률 둔화를 가리키는 정도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7월에 산업생산은 일본 대지진 여파로 인한 공급망 혼란이 복구되어 가면서 증가했고, 개인소득 및 기업 수익도 계속 증가했다. 더구나 7월 고용보고서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해도 최악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5월과 6월에 10만 개 미만으로 일자리가 증가했던 것이 7월 한달 동안 11만 7000개 증가했다.
한편, 주식시장의 움직임을 너무 과소평가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 월가 경제분석가들의 고충이다. 주식시장의 움직임이 신뢰수준의 변화를 유발하고 이 변화가 다시 주식시장에 악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이 반복될 경우 전반적인 경제에도 어떤 부정적인 추세가 형성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우니크레디트의 수석 미국 경제분석가인 함 밴드홀츠는 "특히 주식가치를 떨어뜨리면서 기업의 신뢰를 떨어뜨려 투자와 고용을 저해하는 부정적인 충격이 나타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김사헌 기자(herra7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