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만 고액 자산가들을 잡아라"
국내 개인자산관리(PB)시장이 확산일로다. 증권사 PB 경쟁력도 날로 강화되고 있다. 뉴스핌은 창간 8주년을 맞아 '한국 자산가들이 찾는 증권사 명품 PB지점과 상품'을 주제로 특별기획을 마련했다. 한국의 금융 자산가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그들이 어떤 기준으로 증권사와 상품을 선택하는지등 증권사 VVIP 자산가과 증권사 PB활동상의 면모를 짚어봤다. <편집자주>
[뉴스핌=홍승훈 기자] 최근 국내 금융기관의 PB센터는 한 VVIP고객에게 서비스로 맞춤형 파티를 열어줬다. 한 개인을 위한 투자다. 그 고객의 금융 예탁자산이 수십억원에 달하기도 했지만 이 고객을 통한 다른 고객에 대한 홍보효과가 그 이상이라는 판단에서다. 이 파티에는 이 고객의 '격' 있는 지인들이 여럿 참석해 이 PB는 그들의 최근 관심 이슈를 들을 수 있었다.
이렇듯 한국의 고액자산가들을 향한 유통업체, 금융기관의 구애는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소위 '끼리끼리' 어울리길 좋아하는 부자들의 습성 탓에 한 명의 VVIP고객을 유치할 경우 파급효과가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금융자산만 500억원에 달하는 강남 큰 손으로 알려진 박모씨(40)는 지금까지 PB를 찾은 적이 단 한 차례에 불과하다고 했다. 과거 은행 PB를 찾았고 그의 추천에 따라 주식시장 꼭지에서 펀드에 거액을 넣었다 크게 당한 기억 때문이다.
그는 하지만 최근 30억원 이상 고객들만 대상으로 한다는 증권사 PB점을 찾아가볼 생각이다. "은행보다는 증권사 PB의 내공이 높아졌다고들 해서 주식, 부동산 등 경제 전반에 대한 정보도 듣고 그림 등 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들어볼 생각이다"고 전해왔다.
또한 수백 억원 금융자산을 갖는 그로선 고액자산가들만 상대한다는 증권사를 통해 소위 부자들간의 교류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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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대우증권, 동양증권, 우리투자증권, 한화증권의 PB지점 내부 전경. 주로 강남 큰 손으로 불리는 VVIP 고객들이 주로 찾는 곳들이다. |
그렇다면 은행 PB에 이어 최근 급성장중인 증권사 PB센터의 VVIP고객에 대한 기준은 어느 정도일까.
최근 뉴스핌이 현장에서 뛰고 있는 130명의 증권사 PB(프라이빗 뱅커)를 설문한 결과, PB 중 절반 가량이 부동산을 포함한 자산이 100억원 이상의 고객들을 VVIP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까지 고액자산가들의 부동산에 묶인 자금이 많게는 80%대, 적게는 40%대 수준이지만 실제 금리수준이 경제성장률에 못미치는 저금리 상황이 지속되면서 주식 등 공격형 자산 비중이 나날이 증가추세에 있다는 점도 이들에 대한 고삐를 늦출 수가 없다. 현재 국내에 부동산을 제외한 금융자산이 10억원 이상인 자산가들만 대략 13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때문에 잠재된 PB시장은 여전히 넓고 증권사 PB들의 고객 마케팅 경쟁도 날이 갈수록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증권사 PB점 찾는 VVIP들은 누구?
강남에서 치과를 운영하는 김모 원장(46세)은 최근 증권사 한 PB로부터 방문 전화를 받았다. 과거에도 수십 차례 이같은 연락을 받았던 김 원장은 이번에도 별 기대가 없었다.
하지만 며칠 뒤 PB가 들고 온 것은 해당 증권사의 뛰어난 랩 수익률도, 펀드 수익률도 아니었다. 금융상품이나 재테크에 대한 정보도 보이질 않았다. 자신이 운영하는 치과와 경쟁하는 강남 유명 치과들의 운영 실태에 대한 보고서였다. 임플란트 공급사들의 퀄러티와 가격 추이, 경쟁 치과가 치아치료를 한 뒤 화이트닝과 스켈링을 어떻게 해주는지, 가격과 서비스는 어떤지 등에 대한 것이었다.
엇비슷한 금융상품 추천서와 수익률 보고서를 받고 '생각해본 뒤 연락주겠다'며 쓰레기통에 버렸던 이전과는 달리 이번만큼은 면밀히 자료를 살폈고,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당연히 그 PB에 대한 호감이 생겼고, 다음 상담 예약일자를 스케줄에 넣었다. 그는 이후 이 PB에게 10억원 가량을 맡겼다.
자녀를 미국 대학에 유학보내려는 한 중소기업 CEO 부인은 최근 한 모임에서 증권사 PB를 소개받았다. 하지만 이 PB가 알려준 정보는 주식정보도, 재테크정보도 아닌 미국 대학별 인터뷰 질의항목 등 분석자료였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자녀를 보내고 싶은 미국의 한 대학에 보낼 수 있었다. 물론 이같은 신뢰와 정성 덕에 증권사 PB는 5억원이 넘는 고객자산을 유치할 수 있었다. 또 그 부인의 지인을 소개받아 고객 네트워크도 늘릴 수 있었다.
이렇듯 요즘 PB는 고객의 자산증식을 위한 재테크 전문가의 역할을 뛰어넘어 인생 상담사 기능까지 해주고 있다.
한 증권사 PB센터장은 "지난 90년대말 홍콩 출장에 갔을 때 지인 소개로 홍콩의 PB 한 분을 소개받았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60대 후반의 할머니였죠. 지인의 말에 따르면 그 PB는 지인의 부친 재산을 관리해줬고 본인에 이어 자녀까지 그 PB의 관리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집사 개념이었어요.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 VVIP, 그들은 무엇을 원할까?
부자들은 PB에게 뭘 기대할까. 대박 수익률을 낼 수 있는 소위 '작전주'를 원할까. 한번 신뢰를 줬다고 한 번에 자신의 재산내역을 공개하고 수억 원, 수십 억원을 예치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이들은 대박 수익률보단 자신의 재산을 안정적인 유지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바란다고 한다. 수천 만원, 1억원 정도를 넣는 이들은 큰 수익률을 원하지만 수십 억원 이상의 자산을 가진 소위 VVIP들은 잦아드는 금융위기 등 글로벌 경제 변화 속에서 자신의 재산을 어떻게 하면 잘 유지하고 조금씩 불려나갈 수 있나가 주된 관심사다. 또한 그와 비슷한, 그보다 조금 더 나은 이들과의 친교를 원한다.
H증권 한 유명 PB는 "돈 많은 사람일수록 처음부터 몇 억원씩 넣지 않습니다. 처음엔 5000만원, 1억원 정도를 넣고 PB를 테스트하죠. 이후 고객 니즈에 맞는 성과와 신뢰가 쌓이면 조금씩 자금을 더 넣으시죠. 지금 수십 억원 자산을 맡기신 분들 대부분이 그랬습니다"
또 다른 대형증권사 PB센터장도 이에 공감한다. 그는 "PB는 수퍼맨이 돼야 합니다. 재산 문제 뿐 아니라 자녀의 학교문제, 회사 노조문제, 개인의 증여 및 상속 문제 등 인생 전반에 대해 풀어주고 최고의 전문가그룹을 연결해주는 그런 고리역할이 중요합니다"고 강조한다.
그는 "대나무 중에는 처음 5년은 하나도 자라질 않는 종이 있습니다. 5년동안 눈에는 보이지 않는 뿌리만 자라기 때문이죠. 이후 5년이 지난 뒤부터 하루에 5cm씩 자라 한달 뒤엔 15m에 달한다고 합니다. PB 영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식 브로커보다 더 인내하고 기다리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지난 2000년을 전후해 모 외국계은행이 PB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해 돈 많은 사람들에게 해주는 서비스라는 개념, 즉 골프접대나 럭셔리한 방에서 친절한 상담을 해주는 정도의 PB 개념은 바뀐 지 오래다. 다양한 고객 니즈에 맞는 맞춤형 서비스, 인생 전반에 대해 경청하고 코치해주며, 분야별 최고 전문가를 연결해주는 그런 기능으로 변화 발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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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홍승훈 기자 (deerbear@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