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강혁 강필성 기자] 현대그룹은 2000년 이전만 해도 자타가 공인하는 국가대표 대표 재계서열 1위의 기업집단이었다. 최초로 정부가 대규모 기업집단 지정을 시작한 1987년부터 2001년까지 13년간 단 한번도 재계서열 1위를 양보하지 않았다.
같은 기간 재계서열 2~4위를 두고 대우그룹, LG그룹, 삼성그룹이 치열한 순위다툼을 벌인 것을 감안하면 당시 현대그룹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현대그룹이 1위를 내어주기 시작한 것은 2001년부터다. 현대의 역사를 논 할 때 2001년은 빼놓을 수 없는 해다.
같은 해 3월 고(故) 정주영 창업주가 작고했고, 동시에 2001년은 2000년부터 불거진 현대가 형제들의 갈등이 절정으로 치닫는 때이기도 했다.
당시 정주영 창업주의 차남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당시 현대그룹 공동대표)과 5남인 고(故) 정몽헌 현대그룹 명예회장(당시 현대그룹 공동대표)와 이른바 ‘왕자의 난’으로 불리는 후계구도 갈등을 벌였다.
2000년 당시 두 형제는 정주영 창업주의 후계구도를 두고 유언장 및 서류를 서로 공개하는 등 극심한 다툼을 벌이다가 결국 계열사 지분 정리 과정에서 그룹 내 유동성위기 및 주가폭락까지 불러왔다.
파장은 적지 않았다. 갈등이 극심해지자 현대그룹은 정주영 창업주와 두 형제를 포함한 ‘3부자 동반퇴진’을 발표했을 정도. 이마저도 정몽구 회장 측에서 ‘서명 위조’ 의혹을 제기하면서 결국 2001년 형제간 계열분리 수순을 밟게 됐다.
![](http://img.newspim.com/content/image/2010/10/25/20101025000016_0.jpg)
범현대가의 형제간 희비가 엇갈린 것도 이때부터다.
이때를 전후로 현대그룹은 수많은 소그룹사로 핵분열 했다. 현대그룹을 필두로 현대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현대백화점, 현대산업개발 등이 각기 친척·형제들이 경영을 맡아 독자노선을 타기 시작했던 것이다.
1999년 현대백화점, 현대산업개발을 시작으로 2001년 최종적으로 현대그룹과 현대자동차 2002년 현대중공업 등으로 계열분리하면서 그 위상도 상당부분 축소됐다.
그런 의미에서 2001년은 2000년까지 재계서열은 1위를 놓지 않았던 범현대가가 각기 다른 순위로 계산되는 첫해가 됐다. 2001년 당시 재계서열은 현대그룹이 2위, 현대차그룹이 5위, 현대산업개발이 22위, 현대백화점이 26위를 차지했다.
이듬해인 2002년 재계서열은 현대차가 4위, 현대중공업이 11위, 현대백화점이 24위, 현대산업개발이 25위를 차지했지만 현대그룹은 8위로 밀려나면서 사실상 ‘현대’의 재계서열 1위 역사에 마침표를 찍었다.
사실 이같은 범현대가의 핵분열 속에서 ‘현대’의 위상을 되찾아 준 것은 정몽구 회장이 맡은 현대차그룹이다.
2001년 계열분리 당시 삼성그룹, 현대그룹, LG그룹, SK그룹 뒤를 이어 재계서열 5위를 차지했던 현대차그룹은 3년만인 2004년 현대그룹과 SK그룹을 재치고 3위로 부상했고 이듬해인 2005년 2위를 차지했다.
이후 현재까지 현대차그룹은 재계 2위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다.
이같은 현대차그룹의 성장은 위기를 기회로 활용했던 정몽구 회장의 위기 경영능력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현대차그룹은 부실기업 인수를 통해 성장 동력을 삼았다는 점이 특징이다. 현대자동차는 1998년 기아자동차를 인수를 시작으로 2001년 계열사 현대캐피탈이 다이너스카드를 인수했고 2004년 한보철강을 인수했다.
우려의 시각도 적지 않았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대기업의 문어발식 사세 확장은 그룹의 동반부실을 가져온다는 인식이 지배적인 때였다. 더욱이 피인수 기업은 모두 위기를 겪던 부실기업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인수는 현대차그룹의 성장에 기반이 됐다. 기아차는 국내 자동차시장 점유율 33.2%(2010년 9월 기준)를 차지하면서 현대차그룹 자동차 시장의 주력 계열사가 됐고 현대카드는 시장점유율(개인신용판매, 2010년 2/4분기 기준) 15.4%를 차지하는 국내 2위 카드사로 성장했다.
현대제철도 지난 4월 연산 400만톤 규모의 제1고로를 준공한 데 이어 오는 11월 제2 고로 화입식을 앞둔 세계적 종합제철소로 거듭났다. 특히 고품질의 자동차강판을 생산하면서 현대·기아차와 시너지 효과를 누리고 있다.
오늘날 현대차그룹은 현재 계열사 수 42개로 자산총액만 100조원에 달한다. 현재 범현대가 중에서 옛 현대그룹의 위상에 가장 가깝게 다가간 셈이다.
![]() |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
정몽헌 회장이 맡은 현대그룹의 재계서열은 2001년 현대차와 계열분리 당시 2위를 차지했으나 이듬해 현대중공업과 계열분리하며 8위로 떨어졌고, 2003년에는 11위로 추락했다. 이후 2005년에는 14위, 2007년에는 17위, 2010년 현재는 21위(4월 기준)로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분리 당시(2001년 기준)만 보면 현대그룹은 범현대가에서 가장 많은 26개 계열사를 보유했고 자산총액도 현대차그룹 보다 17조원 이상 많은 52조 6320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현대’ 브랜드의 모태인 현대그룹의 위기는 이때부터 이미 시작됐었다는 것이 지배적인 시각이다.
그룹 내에서도 알짜회사였던 현대건설, 현대전자, 현대투자신탁증권, 현대상사 등 주요 계열사들이 이미 2000년부터 위기요인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그룹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현대건설은 2000년에 이미 유동성 위기에 빠진 상황이었다. 이라크 등 해외에서 미수금 1조 195억원이 발생했고 외환위기로 인해 채권 회수가 이어진 것이다. 결국 현대건설은 2001년 채권단에 의해 워크아웃을 됐다.
이밖에도 정부의 빅딜로 LG반도체를 인수한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도 자본잠식으로 인해 2001년에, 계열사의 물량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 현대상사가 2003년에 채권돤 관리로 넘어갔다. 한때 ‘바이 코리아’ 신드롬을 이끌었던 현대투자신탁증권(현 푸르덴셜증권)도 대우사태 및 ‘왕자의 난’을 거치며 부실을 이기지 못하고 2003년 현대그룹의 손을 떠났다.
무엇보다 가장 큰 악재는 2003년 8월 정몽헌 명예회장의 자살이었다. 당시 그는 현대그룹은 비자금 150억원 조성 혐의 및 대북 송금자금 관련 의혹 등으로 심적 부담을 안고 있었지만 정확한 자살 원인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정몽헌 회장의 뒤를 이어 그의 부인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경영을 맡았다.
한때 범현대가의 간판이었던 현대그룹은 이제 자산총액 12조 4720억원으로 현대상선, 현대증권, 현대엘리베이터, 현대택배, 현대아산 등 12개 계열사밖에 남지 않았다.
한편, 현대그룹과 현대차의 희비가 엇갈리는 와중에도 여타 범현대가 기업집단은 자신만의 위치를 공고히 해왔다.
현대중공업은 2002년 계열분리 이후 재계순위 10위를 차지했고 2007년 11위, 2008년 8위, 2009년 7위까지 상승한 뒤 2010년 현재 8위로 한 순위 하락했다.
현대중공업은 정주영 창업주의 6남 정몽준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최대주주로 있지만 별도로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그는 현대중공업에서 별 다른 직책을 맡지 않고 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정주영 창업주의 3남 정몽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이 맡았다. 현대백화점은 범현대가 중에서는 가장 빠르게 3세 경영승계를 이뤄낸 곳이다. 지난 2007년 정몽근 명예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장남인 정지선 회장이 취임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2001년 재계서열 26위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2002년 24위, 2004년 25위, 2005년 27위를 차지했다. 이후 현대백화점의 재계서열은 기복을 보였다. 2006년 재계서열 30위권 밖으로 밀렸다가 2007년 27위로 다시 복귀했지만 2008년 이후 지금까지 30대 그룹 명단에서 이름을 내렸다.
‘포니정’으로 유명한 정주영 창업주의 넷째 동생 정세영 명예회장은 현대산업개발그룹을 이어받았다. 현재 현대산업개발은 그의 외아들 정몽규 현대산업개발그룹 회장이 이어받았다.
현대산업개발은 2000년 재계서열 25위를 시작으로 2001년 22위, 2002년 25위까지 상승했지만 2003년 28위를 차지한 이후 이듬해 30대 그룹에서 이름을 내렸다.
정주영 창업주의 넷째 동생 정세영 명예회장은 현대산업개발그룹을 맡았다.
KCC그룹은 정주영 창업주의 막내 동생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이 맡고 있다. KCC는 현대그룹에서 계열분리된 범현대가의 다른 계열사와 달리 처음부터 독자노선을 걸었다. 정상영 명예회장이 1958년 금강스레트공업을 설립한 것이 오늘날 KCC의 시초가 됐다.
KCC그룹은 2002년 재계서열 30위를 차지한 것을 시작으로 2004년 26위까지 상승, 2006년 30대 그룹 밖으로 밀려났다 2007년 재계서열 30위로 다시 등장했다. 2010년 현재 KCC의 재계서열은 28위다.
[뉴스핌 Newspim] 이강혁 기자 (ikh@newspim.com) 강필성 기자 (feel@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