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선진국과 비교하면 유독 기업의 수명이 짧은 나라 중 하나다. 안정된 사회제도를 가졌던 미국, 유럽 등의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자본주의 발전이 비교적 최근에 이뤄지면서 환경의 변화 속도가 유래 없이 빨랐다.
1987년 정부가 최초로 대기업집단을 지정한 이후 2010년 현재 30대 재계 서열에 이름을 남기고 있는 기업은 절반이 채 못 된다.
이 과정에서 대우그룹, 한보그룹, 진로그룹, 쌍용그룹, 해태그룹 등 수 많은 기업군이 30대 그룹에서 밀려나거나 사라졌다. GS, 현대중공업, STX, 하이닉스, CJ 등 새로운 기업군이 이 자리를 메웠다.
23년이라는 기간 동안 이들의 성패를 갈랐던 것은 무엇일까. 재계에서 사라졌던 기업과 살아남은 기업의 비밀을 조명해 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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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이강혁 강필성 기자] 지난 23년간 우리 기업들은 격동의 시대를 지나왔다.
1987년 6.29민주화 선언과 88년 서울올림픽을 지나오면서 정치논리와 경제논리의 틈새에서 고난사를 연출했다.
1993년 금융실명제와 1997년 IMF 구제금융을 거치면서는 살아남은 기업과 죽은 기업이 극명하게 갈렸다.
살아남은 기업의 지상 과제는 바로 기업집단의 경영승계였다. 이런 기류는 창업주 2세와 3세, 4세로 이어지면서 현재도 진행형이다.
1980~1990년대는 대부분의 주요 그룹사가 2~3세에게 경영을 승계하는 시기였다.
최충규 한국경제연구소 박사는 "우리나라 기업은 초기 성장 과정이 정부와의 협력관계에 따라 좌우됐다"며 "정부는 유능한 기업에게 사업 할 수 있는 환경을 줘야했고, 기업도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정부의 도움을 필요했다. 양자는 서로의 협력을 필요하는 단계였다"고 분석했다.
결과적으로 1980년대부터 이어져 온 국내 상위 그룹사는 대부분 재벌그룹이 차지하고 있다. 이 재벌그룹의 경영승계에 따른 경영방식에 따라 기업의 희비가 엇갈린 것이다.
김종연 삼성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국내 기업발전에 오너 경영제가 많은 영향을 줬다는 것은 확실하다"며 "불황에 반도체나 자동차 등 굉장히 큰 투자를 과감히 선택하는 것은 오너 경영제가 아니었으면 힘든 일이었다"고 평가했다.
실제 전문경영인 체제의 기업이라면 대규모 투자를 과감하게 선택하기 쉽지 않다. 주주의 동의를 얻기 위해서는 호황에 투자를 해야 하는데 투자가 결실을 볼 시점은 대부분 싸이클이 불황으로 돌아서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오너 경영제의 기업은 과감한 투자를 적기에 결정했고 이것이 전략적으로 맞아 떨어졌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적지 않았다. 최충규 박사는 "재벌 그룹의 경영이 급변하는 계기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승계다"라며 "기업이 그대로 승계되거나 기업 분할로 이어지는 만큼 승계가 가장 구체적이고 확실한 변화다"라고 지적했다.
오너 경영제는 오너의 결정만으로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있고 장기적 안목을 가질 수 있는 등 오너의 능력만 뛰어나다면 최고의 경영방식인 것이다.
그는 "다만, 오너의 영향력이 전사에 미치는 만큼 잘못된 판단을 하게되면 기업군 전체가 위기로 빠지는 최악의 경영방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세대교체 과정에서 기업집단이 위기를 겪는 경우는 적지 않았다. 주요 그룹사가 세대교체를 하는 과정에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과정에서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요건으로 바로 '변화'에 대한 적응을 꼽았다.
김종연 연구원은 "장수 기업의 특징을 살펴보면 변신력이 반드시 언급된다"며 "환경변화가 워낙 크다보니 기존의 방법론만으로는 해결이 쉽지 않기 때문에 핵심역량을 보존한 가운데에서도 변화에 능숙하게 대응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1980년대 이후 내수로 성장한 국내 기업들의 세계화가 당면한 가장 큰 과제였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현재 글로벌 사업장을 갖고 활동하는 기업들이 대표적으로 변신에 성공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며 "세계화에 따라 단순히 상품만이 아니라 기업의 내실도 몇단계 업그레이드 됐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단순한 기업의 변화가 반드시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라진 기업군 중에서 무분별하게 사세를 확장했다가 한순간의 위기를 극복 못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변화에 앞서 기업의 경영 철학이 필요한 이유다.
윤정구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이 철학 없이 단순하게 일류 기업의 사업성을 모방하다가 실패한 사례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초기 우리나라 기업이 남의 것을 밴치마킹해 카피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비즈니스 고유의 운영하는 정신모형(사고의 틀)이 잘 정착되지 않으면 생존하기 힘들다"며 "정신모형에 회사의 원리나 철학이 담겨 있고 그것을 기업이 정확히 이행해야 장기 생존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뉴스핌 Newspim] 이강혁 기자 (ikh@newspim.com) 강필성 기자 (feel@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