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원 환율이 다시 하락했다.
지난주 외환당국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940원대를 회복하며 기를 펴는 듯했으나 주말 글로벌 달러 급락으로 940원을 하향한 이후 시장분위기가 영 썰렁하다.
시장은 매수와 매도, 사자와 팔자가 공존하고 자기 주장을 적극적으로 펴야 가격 기능이 활성화되는 곳이다.
그렇지만 현재의 외환시장은 매수, 사자 세력들이 몸을 낮추고 자기 주장을 펴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달러를 매수해서 이익을 볼 만한 여건이 못 되기 때문이다.
수급상으로는 수출업체들의 대기 매물이 상존하고 있는, 이른바 공급우위 장세가 지속되고 있고, 시장 매매세력 역시 매수세가 위축되고 있다.
특히 역외세력의 경우 매수에 적극적이었던 이전 모습은 거의 해체된 양 방향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국내 외환시장이 기관 장세여서 시장 참가자들이 적다는 구조상의 문제는 여전하다. 수급상 경상거래 위주의 시장이어서, 즉 국내 경제구조가 수출주도 경제라는 점 역시 외환시장에 투영돼 있다.
내수가 중요하다는 얘기는 최근 양극화라는 유행어와 더불어 다소 중요하게 지적되고 있기는 하지만, 지난 시절 신용불량자를 양산하면서 개인들의 소비 에너지가 소진됐고, 기업투자가 축소되거나 국내보다는 해외투자가 늘어난 상황처럼 아직 그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지만 최근 시장을 분석하고 사태를 좀더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같은 구조상의 문제만으로는 가려운 곳을 콕 집어내기가 여의치는 않다.
개별 기업, 또는 미시적인, 그야말로 경영학적인 관점이면서도 굳이 ‘경제학’을 들먹여서 책을 만들어 파는 ‘책방 경영학’처럼 사람들한테 유용한 것을 적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최근 시장은 ‘북핵 사태 이후’라는 점이 지적될 필요가 있다. 지난 10월 9일 북한이 예기치 않게 핵실험을 강행하고 그 이후 한반도 지정학적 리스크가 고조됐던 분위기가 점차 평상심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점이다.
여전히 ‘정전 협정’ 상태이고 50년 이상의 분단 상황이고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이지만, 분단은 몸 속의 오래된 병처럼 친숙하기까지 해서 ‘정전’ 그 상태라면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오히려 총칼을 직접 겨누고 있는 한반도 사람들이 해외동포들한테 불안하지 말라고 얘기하는, 그런 아이러니가 이상할 것 없다는 듯이 벌어지고 있는 게 한반도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21일 오전 8시 37분 유료기사로 송고된 바 있습니다.)
◆ 한반도 정전상태 벗어날까, 환율은 눌린 상태 지속될 듯
이런 상황에서 중간선거에서 패한 미국이, 지난 6년간 ‘악의 축’으로 북한을 ‘팽’하고 무시하고 외면했던, 그래서 오히려 한반도 긴장을 부추기는 게 아닌가 했던, 부시 행정부가 ‘정전’ (停戰) 상태를 종료하고 ‘종전’(終戰)을 선언할 수 있다고 놀랄만한 태도변화를 보이고 있다.
역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선거’가 그만큼 무섭구나 하는 점을 알려주기도 하지만, 그 영향으로 한반도 사태는 이전의 고조된 위기의식에서 평화로움으로 급진전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따라서 북핵 사태로 인한 지정학적 리스크, 그에 따른 달러 매수-원화 매도 환경은 이미 벗어나고 있다는 점을 새삼 강조해야할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이런 점들이 최근 외환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역외든 업체들이든 이전까지 북핵 사태로 달러 보유심리가 컸던 상황에서 이제는 보유달러를 매도하는 쪽으로 태도가 변했다는 것이다.
다만 환율이 940원 이하로 속락하면서 외환당국의 적극적인 개입이 나서주면서 매도일변도의 태도가 변하긴 했으나 아직 매수쪽이 강화되지 못하고, 또한 환율이 반등할 경우 매도관점을 지속하는 이유는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외환당국의 개입이 다시 나올까 하는 지점에 도달해 있기 때문에 시장의 매매세력들이 공세적인 거래를 하기는 힘든 것도 또한 사실이다. 지난 이틀간 거래량이 겨우 50억달러 안팎으로 급격히 축소된 것이 이를 증거하고 있다.
글로벌 달러도 하향 조정 속에서 일부 반등하기는 했으나 뚜렷한 모멘텀을 보여주지 못하고 국내 시장 자체적으로 940원을 돌파하기도 힘들고 외환당국의 개입 경계감으로 매도를 지속하기도 힘든 게 현재의 외환시장 상황이다.
따라서 달러/원 환율은 920~950원대 박스권을 형성하는 가운데 단기적으로는 935원을 중심으로 933~937원대 수준에서 소규모의 등락이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