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까지 미국과 그 대변인 역할을 하는 국제통화기금(IMF)의 "환율 유연화" 압력을 거부하던 아시아 정책당국들이 올해들어서는 다소 유연화를 지지하는 쪽으로 자세가 전환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아시아 정책당국자들은 여전히 이런 소식에 대해 중요성을 두지 않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지만, 일본이 올해들어 외환시장 개입을 중단하고 있고 또 일부 나라들에서도 유가 상승에 대처하기 위해 자국통화 평가절상을 용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등 올해 상황이 유동적인 것은 사실이다.국내에서도 콜 금리 인하 이후 물가상승 압력에 대처하려면 환율 평가절상을 용인하는, 시장개입에서 한발 물러서는 입장이 힘을 얻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는 점은 이번 APEC회담의 변화된 지형과 무관하지 않은 듯 하다.역시 관건은 중국 정부의 태도다. 올해 경기과열 억제를 통한 경기 연착륙이 최대 과제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 정부당국으로서는 외환시장 유연화에 대해 다시 '내부 일정'에 따를 것임을 재확인하고 있는 중이다.IMF 등 주요 기관들도 최근에는 자본이동 규제와 외환시장 개입에 대해 다소 용인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美 경상수지 적자 확대와 국채시장의 충격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아직 미국 당국자들은 경상수지 적자 조달 문제나 국채시장의 동요 가능성에 대한 세간의 우려를 폄하하고 있지만, 단지 '시장이 깊고 금리변수는 다양한다'는 근거로 亞 중앙은행의 국채매입 효과를 무시하고 지나치기는 힘들 것으로 판단된다.참고로 APEC 회담에 참석하고 있는 美 존 테일러(John Taylor) 재무부차관은 기자회견에서 이번 회담에서 아시아 재무장관들이 '보다 유연한 환율제도'를 도입할 필요성에 동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그는 기자 브리핑을 통해 "이번 성명서에는 좀 더 유연한 환율제도로 이행해야 한다는 내용이 표현된 점을 특히 기쁘게 생각한다"고 언급했다.이는 아직 성명서 초안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번에 APEC회담은 지난 해 태국 푸켓에서 채택한 "모든 경제와 시대에 적합한 단일한 환율제도란 없다"는 문구에서 나타난 외환시장 유연화에 대한 반대 입장에서 다소 이탈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로드리고 라토 IMF 전문이사 역시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아시아 각국이 무역수지 흑자 확대와 외환보유고의 큰 폭 증가를 배경으로 안전하게 외환시장 비유연성을 완화할 기회가 열리고 있다"는 식의 다소 모호한 표현을 통해서 이 같은 변화를 감지하게 한다.테일러 차관은 일각에서 아시아 당국의 외환시장 개입 중단이 美 국채시장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견해를 의식, "여기서 국채시장에 대한 우려는 그다지 중대한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미국 국채시장은 대단히 방대하고 깊이있으며 활력이 있어 일부 변수에 따라 시장금리가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견해는 최근 일본 외환시장 개입중단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상원의원에 대해 앨런 그린스펀 연준리 의장의 답신에 나온 내용과 동일하다.테일러 차관은 "외환시장의 유연화를 강조하면 당연히 통화당국은 美 국채를 추가 매입하지 않게 될 수 있지만, 어떤 식이든 시장의 유연화 자체가 더 중요한 쟁점"이라고 강조했다.그러나 이날 아시아 각국 정책당국자들은 미국과 IMF측의 언론플레이에 대해 반발하는 모습을 나타냈다.이날 홍콩 프레드릭 마(Fredrick Ma) 재무장관은 다우존스(Dow Jones Newswires)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경제와 모든 상황에 다 들어맞는 단일한 환율제도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는 지난 번 푸켓 APEC 회담에서 합의된 성명서 내용을 반복해서 강조한 의견이다.물론 지난 해 회담 성명서는 "경상수지 흐름을 조절하고 균형을 이룰 수 있게 만드는 적절한 환율 정책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외환시장의 유연화의 필요성은 부분적으로 인정했으나, 미국과 중국 사이의 환율 분쟁을 의식해 위와 같은 입장을 덧붙인 것이다.마 장관은 "우리는 고정환율제도로도 지난 31년동안 잘 지내왔다"고 강조했다.한편 도로작툰 쿤토르-작티 인도네시아 경제장관도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현행 환율제도를 변화시킬 필요는 없다고 본다"며 미국 측에서 나온 보도내용의 중요성을 폄하하는 태도를 취했다고 한다.그는 환율체제의 변화보다는 중국경제의 연착륙 유도가 더욱 시급한 문제라고 강조했다.결국 이번 APEC 회담 성명서에도 아시아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이 지나치게 증가한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비판과 그 동안 수출호조를 통한 대외수지 흑자의 확대 그리고 미국의 적자조달 문제가 또 한번 기묘한 균형을 이룰 것으로 기대된다.현재 APEC은 한국 일본 중국을 비롯 호주, 브루나이, 캐나다, 칠레, 홍콩,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멕시코, 뉴질랜드, 파푸아뉴기니, 필리핀, 러시아, 싱가포르, 대만, 태국, 미국 그리고 베트남 등의 회원국으로 구성되어 있다.[뉴스핌 Newspim] 김사헌 기자 herra7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