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비지수 역대 최고치 경신
나프타 수급난·유가 폭등 이중고
2022년 러·우 전쟁 충격 넘어설 듯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중동 지역 긴장이 전면전 양상으로 확산되면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이 흔들리고, 그 여파가 국내 주택건설 현장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필수 건자재 수급 차질과 물류비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면서, 대형 건설사의 정비사업 현장 역시 공정 지연 및 가동 차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주택시장뿐 아니라 거시경제 전반에 부정적 파급효과를 미칠 수 있다는 경고가 제기된다.

◆ 널뛰는 자재값에 유류비 부담까지…건설사 채산성 '빨간불'
1일 업계에 따르면 건설 공사에 투입되는 원가 부담이 역대급으로 치솟고 있다. 안정세를 보이던 건설사의 원가율이 재차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지난 2월 기준 건설공사비지수가 전년 동월 대비 2.04% 뛴 133.69(잠정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역대 최고 수치다. 건설공사비지수는 자재비, 노무비 등 건설 공사에 투입되는 직접 비용의 변동을 나타내는 핵심 지표다. 시장 물가를 뒤늦게 반영하는 후행 지표라는 점을 고려하면 본격적인 중동 전쟁의 충격파가 스며드는 올 하반기에는 오름폭이 한층 가팔라질 것이란 우려가 팽배하다.
지난 2월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 시설 저지와 정권교체를 목표로 선제적 공습을 실시했다. 작전 과정에서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다. 이에 맞선 이란 혁명수비대는 이스라엘 주요 도시와 중동 내 미군기지를 향해 미사일 공격을 감행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에너지 대동맥'이라 부르는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와 UAE·바레인·쿠웨이트·사우디 등 인근 걸프 국가들에 대한 보복 공격을 지속 중이다.
중동 정유 시설 타격으로 기초 원자재인 나프타(납사·Naphtha) 수급망이 무너지며 현장은 직격탄을 맞았다. 나프타는 원유를 정제할 때 가장 먼저 추출되는 물질로 건설 현장에서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나프타를 열분해해 얻는 에틸렌과 프로필렌은 창호 등에 쓰이는 PVC(폴리염화비닐), 배관재, 바닥재, 단열재(스티로폼), 페인트 등 필수 건축 자재를 만드는 핵심 원료다.
레미콘의 강도를 높이고 작업성을 좋게 만드는 화학 혼화제 역시 나프타에서 추출한 원료를 기반으로 제조된다. 관련 건축 자재 단가는 이미 품목별로 10%에서 최대 40%까지 널뛰기하며 공급 대란이 예고된 상황이다.
폭주하는 유가도 현장의 목을 옥죄는 직접적인 부담거리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오피넷)에 따르면 이날(1일) 전국 주유소의 평균 경유 판매 가격은 1899.36원으로 전일 대비 13.16원 급등했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 분석 결과 유가가 20% 오를 경우 토목 공사는 7%, 건축 공사는 4%의 원가 상승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굴착기, 덤프트럭, 크레인 등 건설 중장비 가동에 필수적인 원료다.
유류비는 전체 기계 경비의 약 30%를 차지하는 동시에 주택 공사에서도 전체 원가의 5% 수준을 점유한다. 도로 포장에 쓰이는 아스팔트와 건설 장비용 윤활유 등 석유화학 계열 제품 비용의 연쇄 상승, 내륙 및 해상 물류비의 폭등까지 겹치면서 건설사들의 채산성은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
건설업계는 이번 위기가 2022년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의 충격 이상일 것으로 본다. 유연탄 수급난에 따른 시멘트 가격 폭등과 글로벌 철강재 가격 상승이 겹치면서 2021년 1분기 103.04였던 건설공사비지수가 1년 만인 2022년 1분기 113.77로 수직 상승한 바 있다.
당시 서방의 제재 속에서도 러시아산 원유는 인도나 중국 등을 통한 우회 수출을 통해 시장에 공급되면서 에너지 대란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이번 사태는 양상이 상이하다는 분석이다. 세계 원유 물동량의 20%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 위험은 물론, 산유국들의 직접적인 생산 시설 파괴가 동반되고 있다.
김화랑 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글로벌 공급망 경색이 전방위로 심화함에 따라 국내 시공사들은 천문학적인 비용 초과와 조달 지연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했다"며 "이는 건설사들의 현금 흐름을 악화시킬뿐 아니라 올해부터 2028년까지 추진이 예정된 대규모 민간 및 공공 프로젝트의 경제성 확보에 결정적인 위협 요인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공기 연장·공사비 인상에 조합 '안절부절'…장기화 여부가 핵심
전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주 내 전쟁이 종료될 수 있다는 낙관론을 폈지만, 시장의 시각은 대단히 회의적이다. 이미 이란의 무차별적인 미사일과 드론 공격으로 주요 산유국의 핵심 에너지 인프라가 파괴됐기 때문이다. 당장 포성이 멎더라도 잿더미가 된 시설을 복구하고 정상적인 석유·가스 생산량을 회복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시선이 짙다.
대형 건설사들도 전례 없는 위기 상황에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전쟁 발발 직후부터 수입에 의존하는 주요 마감재와 플랜트 기자재의 해상 운송이 매우 어려운 상태"라며 "단순히 자재 가격이 오르는 문제를 넘어, 웃돈을 줘도 물건 자체를 구하지 못해 핵심 공정이 멈춰 설까봐 불안하다"고 말했다.
현장의 위기감이 고조되자 건설업계도 다급히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국토교통부와 대한건설협회는 신속한 피해 파악을 위해 '중동전쟁 기업애로 지원센터'를 개설해 운영하기로 했다. 물류 차질과 공기 지연 등에 대한 정부와 업계간 실시간 소통 창구 역할을 수행하고, 공공 공사의 경우 공기 연장이나 계약 금액 조정 등의 지원책을 모색한다는 방침이다.
불똥은 이미 주택 공급의 최전선인 정비사업 현장까지 옮겨 붙은 모습이다. 현대건설은 최근 시공 중인 전국 모든 현장에 '건설환경 악화에 따른 현장운영 현황 보고'라는 지침 공문을 하달했다. 해당 공문에는 국제 유가 급등과 원자재 물류비의 불확실성이 극도로 높아지고 있으나, 현장별로 자재 확보와 공정 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일부 재개발·재건축 현장의 경우 자재난을 버티지 못하고 멈춰 설 위기다. 올 초 서울 은평구 대조1구역 재개발 현장은 인허가 사항 변경, 설계 도서 수정, 그리고 외부 거시 환경 악화를 이유로 시공사로부터 222억원 규모의 추가 공사비 인상 요구를 받았다. 자재 가격이 인상되더라도 현장 반입만 정상적으로 이뤄진다면 공사를 이어갈 수 있으나, 현재 공종별 필수 자재의 현장 반입 자체가 전면 중단된 상태라 불가피하다는 것이 시공사 입장이다.
서울의 한 재건축 조합원은 "금융비용만 한 달에 수억 원씩 나가는 마당에 공사라도 빨리 해야 분담금을 줄일 수 있는데, 먼 나라 전쟁 때문에 자재가 안 와 현장이 멈춘다니 황당하다"며 "물가 오르는 속도를 보니 나중에 분담금이 몇 억원씩 더 나올까 무섭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거시경제 전반으로 번질 악순환의 고리를 선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태준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에너지발 인플레이션이 길어져 금리 인하 기대감이 꺾이고 시장 금리가 다시 뛰게 되면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 우려나 차입 비용 등의 차환 리스크가 눈덩이처럼 커진다"며 "이는 결국 추가 자금 조달 비용 상승이라는 치명적인 악순환을 부를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전쟁이라는 불가항력적 요인을 인정하고, 공공·민간 공사 전반의 유연한 계약 금액 조정 및 공기 연장 등 합리적인 계약 관리가 중요하다"고 부연했다.
chulsoofriend@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