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만 있고 권한은 없는 구조 지적 이어져
'건설기술인법 제정' 및 토목·건축 전공 통합 등
학제 혁신 필요성 제기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건설 현장의 안전 및 환경 규제가 지속해서 강화되는 가운데, 이에 수반되는 비용과 책임을 건설사가 홀로 떠안는 구조적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해결책으론 건설기술인의 권한을 명문화하고 발주처와 위험 부담을 나누는 국제 표준 방식의 도입 등이 떠올랐다.

◆ 처벌 위주 안전 규제 한계…전문가 중심 특별법 제정될까
18일 대한토목학회에 따르면 전일 한국건설관리학회와 공동으로 주최한 '제41회 건설정책포럼'에서 이 같은 의견이 제시됐다.
정부의 안전 관련 규제는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2022년 처음 실행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4년째를 맞이했다. 공사 참여자가 안전 의무를 위반하면 최대 연 매출 3%에 해당하는 과징금이나 7년 이하 징역형이 규정된 '건설안전특별법'이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2022년 발표된 '건설안전 종합대책' 또한 본격적으로 법 개정 절차로 돌입할 예정이라 안전 규제는 점점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도 산업재해 사망자는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3분기 기준 건설업 사망자는 200명을 넘기며 전체 산업의 46%를 차지했다.
김영덕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건설사들은 법정 비용을 초과하는 비용을 안전에 지출하고 있는데, 최근 올라간 공사비와 맞물려 부담이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며 "중소건설업체는 재무적 여건상 막연한 사고 두려움에 휩싸여 건설업을 포기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기업만의 몫이 아닌 참여자의 의식 수준 향상과 소규모 현장에 대한 맞춤형 지원책, 처벌보다 예방에 초점을 맞춘 정책 강화를 촉구했다.
업계에선 책임은 있으나 권한이 없는 현 구조가 모순적이라고 지적한다. 현행 건설 관련한 법 체계가 대부분 시공업체 중심으로 짜여 있어, 설계·시공·감리 등 현장에서 기술적 판단을 수행하는 건설기술인은 책임 대상이 되지만 전문가로서 지위는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김형석 한국건설기술인협회 상근부회장은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건설기술인법' 제정을 핵심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며 "전문적 판단을 존중받을 권리, 부당한 요구를 거부할 권리, 정당한 보상을 받을 권리 등을 명문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제화 이후 과제로는 기존 업체 중심의 제도 구조 관성과 책임 강화 중심의 정책 환경이 지목됐다.
◆ 꽉 짜인 계약에 시공사 '진땀'…"위험 분담·간접비 보상 필요"
한국 건설산업의 모든 영역에서 발주처가 대부분의 리스크를 시공사나 엔지니어에게 전가하는 계약 체계도 도마 위에 올랐다. 정확한 공사비와 공기 추정이 어렵다 보니 국민 세금을 쓰는 발주처 입장에서는 수급자가 리스크를 지게 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는 주장이다.
손윤기 엔비코컨설턴트 대표는 "발주처 담당자가 기술적 역량을 갖추고 업무를 명확히 이해해 건설사의 동반자가 되는 것이 전문가의 권한을 인정하는 해외 선진 시장의 일반적인 사업 방식"이라며 "국제 건설 계약 표준처럼 발주자와 건설사가 위험 부담을 나누고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해 분쟁을 예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공사 중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추가 업무에 대한 기술자 대가가 사업 성패를 좌우한다"며 "세부 항목별로 꽉 짜인 한국의 경직된 공사비 산정 방식을 개선해 돌발 상황에 대비한 예비비를 인정하는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시공사 입장에서도 일방적 규제가 아닌 산업 선진화 관점의 제도 개선 추진이 시급하다. 조성한 GS건설 부사장은 "안전, 환경, 근로자 권익 보호 등 규제 강화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를 지키기 위해 실제 투입되는 시간과 비용이 공사비 및 공기 산정에 합리적으로 반영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현장의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환경영향평가 및 현장 민원에 따른 특정 시간 작업 제한으로 터널 공사 등에서 적정 연속 공정을 지키기 어렵고, 야간 작업 금지나 작업 중지 권고로 하루 4~6시간밖에 장비를 돌리지 못하는 현장이 상당수다. 그럼에도 계약 공기는 항상 가동을 전제로 산정돼 추가 비용을 시공사가 감당하고 있다.
조 부사장은 "주 52시간 근로제와 레미콘 토요휴무제가 공사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한편 강화된 기준으로 현장 노무자들의 생산성이 눈에 띄게 낮아졌다"며 "현장 여건에 따른 탄력적인 적용이 필요하며, 적정한 공기와 공사비 예산 편성 및 간접비 보상 등 제도 보완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 양성과 학계의 혁신 필요성도 제기됐다. 홍기증 국민대 건설시스템공학부 교수는 "건설산업이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려면 검증된 전문가가 현장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며 "학생들에게 전문가가 됐을 때 충분한 보상과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권한을 줘 동기부여를 해야 하지만, 지금의 건설제도와 경기 상황은 전문가로 성장하기 위한 사례가 줄어드는 어려운 점이 있다"고 우려했다.
낡은 학제 시스템을 근본 문제로 지적했다. 홍 교수는 "일제강점기 잔재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과 일본만 건축구조와 토목구조를 분리해 교육하고 있다"며 "칸막이로 인해 기득권을 가진 전문가들이 법 제도를 퇴화시키고 있는 만큼, 건축과 토목 전공을 통합하고 자격 면허 제도를 함께 바꿔 건설 분야 전체의 법 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chulsoofriend@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