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배상희 기자 = 미국 정부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와 중국의 '탈(脫) 엔비디아' 기조가 맞물리면서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최근 엔비디아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파트너사인 TSMC에 중국 수출용 H200 반도체의 생산 중단을 요청하고, 차세대 칩인 '베라 루빈(Vera Rubin)' 양산으로 생산 설비를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사실상 중국 빅테크들이 세계 최고 성능의 AI 가속기를 합법적으로 공급받을 마지막 동아줄이 끊어졌음을 의미한다.
미국의 전방위적 압박에 맞서 중국은 역대 최대 규모의 국가 자본을 투입하며 '반도체 국산화(자립)'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전날 제14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4차 회의 개막식 업무 보고에서 공개된 2026년 정책 방향 로드맵에서도 반도체를 필두로 한 최첨단 기술은 중국 당국의 정책·자금 지원이 집중될 핵심 분야로 재거론됐다.
과연 중국의 반도체 자립은 어디까지 왔으며, 이를 뒷받침할 국가 펀드의 위력은 어느 정도일까. 해당 질문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커지는 가운데, AI 도구를 활용해 그 해답을 점검해 보고자 한다.
◆ 중국 AI 칩 국산화 현주소 : '화웨이-SMIC' 연합군의 고군분투
현재 중국 반도체 굴기의 선봉장은 단연 '화웨이(Huawei)'와 중국 파운드리 1위 기업 'SMIC'다. 엔비디아 제품 수입이 막힌 상황에서 중국 당국은 SMIC의 첨단 공정 라인을 화웨이에 최우선 배정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화웨이의 최신 AI 칩인 '어센드 910C'는 이미 엔비디아의 구형 칩인 A100과 대등하거나 일부 능가하는 성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다만, 엔비디아의 H100과 비교해서는 대등한 성능을 갖췄다고 소개됐으나 실제로 사용해본 결과 여전히 H100 성능에는 못 미친다는 평가가 나온다.
화웨이는 칩을 이어 붙이는 첨단 패키징 방식을 통해 연간 최대 75만 개의 910C 칩을 생산할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미 중국 내 AI 칩 생산량의 75% 이상을 책임지고 있다.
하지만 뼈아픈 한계도 명확하다. 네덜란드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수입이 차단된 상태에서, SMIC는 구형 심자외선(DUV) 장비를 여러 번 겹쳐 찍는 '멀티 패터닝' 방식으로 7나노 이하 공정을 무리하게 시도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제조 비용이 급증하고 핵심 칩의 수율이 20% 남짓에 불과할 정도로 수율 확보에 엄청난 난항을 겪고 있다.

◆ 실탄 장전한 중국 : 73조 규모 '빅펀드 3기'를 무기로
이러한 기술적 난관과 막대한 비용을 극복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꺼내든 무기가 바로 역대 최대 규모의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기금, 일명 '빅펀드(대기금) 3기'다.
빅펀드 3기의 핵심 포인트는 역대급 자금력이다. 2024년 5월 공식 출범한 빅펀드 3기의 자본금은 3440억 위안(약 73조4000억원)으로, 1기(초기 자본금 987억2000만 위안, 최종 모집 자금 1387억 위안)와 2기(2041억5000만 위안)를 합친 것보다 큰 사상 최대 규모다. 여기에 지방정부와 민간 자본까지 매칭되면 실제 시장에 풀리는 유동성은 1조 5000억 위안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3기 펀드의 핵심 목표는 2027년까지 핵심 기술의 외부 의존도를 해소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금의 절반 이상이 미국의 제재가 가장 뼈아픈 '첨단 노광장비, 포토레지스트(감광액), 실리콘 웨이퍼' 등 반도체 제조를 위한 필수 '소재·부품·장비 분야'에 집중 투하된다.
과거 1, 2기가 파운드리 등 기초 체력 다지기에 주력했다면, 3기는 엔비디아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한 AI 반도체(어센드, 캠브리콘 등) 생태계 구축과 초고도 패키징, 그리고 고대역폭메모리(HBM) 기술 확보에 집중 포화를 퍼붓고 있다.
이러한 막대한 자금 수혈을 바탕으로 북방화창(北方華創 NAURA, 002371.SZ), 중웨이반도체(中微半導體∙Cmsemicon 688380.SH)와 같은 중국 본토 A주의 반도체 장비 대장주들은 수율 저하로 인한 경제성 부족 문제를 국가 보조금으로 상쇄하며 '비정상적인 속도'로 덩치를 키우고 있다.
◆ 완전한 반도체 자립의 시점 : "단기 충격 속 5년 이상의 맷집 싸움"
전문가들은 중국이 빅펀드를 앞세운 막대한 자본과 거대한 내수 시장을 무기로 기술 격차를 좁혀가고 있지만, 글로벌 수준의 완전한 생태계 자립을 이루기까지는 5년 이상의 '시간 싸움'이 될 것으로 내다본다.
단기적(1~2년)으로는 엔비디아 H200의 공백을 자국산 칩으로 완전히 메우지 못해 중국 빅테크들의 AI 모델 훈련 속도가 지연되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볼 때, 73조원 규모의 빅펀드 3기가 창출하는 든든한 내수 수요는 중국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에게 끝없이 실패를 반복하며 기술을 끌어올릴 수 있는 훌륭한 테스트베드를 제공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엔비디아의 H200 단종은 중국의 'AI 반도체 굴기'에 치명적인 고통을 안겨주는 동시에, 빅펀드 3기를 앞세운 국산화 속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강력한 촉매제가 되고 있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미국 기술 패권과 중국 '빅펀드' 자본력 간의 이 거대한 충돌이 만들어낼 밸류체인 지형 변화에 주목해야 할 시점이다.
pxx17@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