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고발로 판·검사, 경찰이 느끼는 압박 상당할 것"
"법 규정은 어느 정도 불명확…추상성 띌 수밖에"
[서울=뉴스핌] 홍석희 기자 = 판사·검사 등의 법 왜곡 행위를 처벌하는 이른바 '법왜곡죄'(형법 개정안)가 사법부의 거센 반발 속에서도 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당이 위헌 논란을 의식해 전날 본회의 상정 직전 법안을 대폭 손질했지만, 법조계에서는 여전히 처벌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져 판사·검사·경찰에 대한 고소·고발 남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국회는 이날 오후 법왜곡죄를 신설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재석 170명 중 찬성 163명, 반대 3명, 기권 4명으로 가결했다. 해당 법안은 부칙에 따라 공포한 날부터 즉시 시행되며, 국회를 통과한 법률안은 정부 이송 후 15일 이내에 대통령이 공포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법안은 3월 초께 시행될 전망이다. 형법이 제정된 1953년 이후 70년 넘게 유지돼 온 국내 형사·사법 체계가 큰 변화를 맞게 되는 셈이다.

◆ 與, 위헌 소지 의식해 수정…사법부 "추상적 구성요건" 우려
개정안은 판사·검사 또는 범죄수사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타인에게 위법·부당하게 이익을 주거나 권익을 해할 목적으로 재판·수사 중인 사건에서 법을 왜곡하면 10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전날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법왜곡죄의 구성요건을 구체화하는 수정안을 내, 당 안팎에서 제기돼 온 "구성요건이 지나치게 모호해 죄형법정주의에서 파생된 명확성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일부 반영했다는 평가다.
당초 원안은 법왜곡 행위를 ▲법령을 의도적으로 잘못 적용해 당사자를 유리 또는 불리하게 만든 경우 ▲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은닉·위조·변조하거나 위조·변조된 증거임을 알면서도 재판 또는 수사에 사용한 경우 ▲폭행·협박·위계 등 위법한 방법으로 증거를 수집하거나, 증거 없이 범죄사실을 인정하거나, 논리나 경험칙에 현저히 반해 사실을 인정한 경우 등 세 가지 유형으로 열거했다. 이 가운데 특히 1호의 '의도적으로 잘못 적용', 3호의 '논리나 경험칙에 반해'라는 표현이 추상적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민주당은 1호를 '법령의 적용 요건이 충족되지 않음을 알면서도 이를 적용하거나, 적용돼야 할 법령임을 알면서도 이를 적용하지 않아 의도적으로 재판·수사의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경우. 다만, 법령 해석의 합리적 범위 내에서 이뤄진 재량적 판단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상세하게 풀어썼다. 3호의 '논리나 경험칙에 현저히 반해 사실을 인정하는 경우' 표현은 아예 삭제됐다.
그럼에도 전국법원장회의는 전날 회의 뒤 입장문을 내 "법왜곡죄 수정안을 고려하더라도 범죄 구성요건이 여전히 추상적이어서 처벌 범위가 과도하게 확대될 수 있고, 재판의 신속성과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 "검·경, 고소·고발에 시달리면 안전한 선택만 할 것"
법조계 안팎에선 법왜곡죄가 시행되면 판사·검사·경찰을 상대로 한 고소·고발이 대거 쏟아질 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수사·재판 결과에 불만을 품은 사건 당사자나 제3자가 보복성 고소·고발에 나설 유인이 커지는 만큼, 수사기관과 법원이 상시적으로 형사 책임 리스크에 내몰릴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사법부 내부에선 하급심 재판부가 대법원 판례와 다른 소신 판결을 내리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하급심의 소신 있는 판결마저 무분별한 고소·고발의 대상이 될 위험성이 있다"며 법안 폐기를 요구해왔다.
여권은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취소 결정을 내리면서 구속기간을 '날'이 아닌 '시간' 단위로 계산한 지귀연 부장판사를 대표적 법왜곡 사례로 지목해왔다. 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도 지난해 한 언론 인터뷰에서 "법왜곡죄가 있었다면 지 부장판사는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취지로 언급한 바 있다.
이와 함께 실제 기소로 이어지지 않거나 무죄가 선고되더라도, 고소·고발 그 자체만으로 수사기관이 받는 압박은 상당할 것이란 지적이 많다. 수사기관이 형사책임 위험을 피하기 위해 '안전한 선택'에 치우칠 경우, 적극적인 사건 발굴과 실체적 진실 규명이 위축될 수 있다는 것. 또 법왜곡죄와 관련된 고소·고발 사건이 늘어나면, 이를 처리하느라 검찰·경찰의 업무 부담이 가중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검사장을 지낸 한 변호사는 "고소·고발에 시달린 검사나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심리적으로 가장 안전한 방향만 택하려 할 것"이라며 "수사기관이 안전지대만 찾게 되면 사회적 문제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거나 진실을 끝까지 파헤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법왜곡죄는 법적 판단 주체의 주관적 법 오남용을 막아 법치주의를 확립하기 위한 명시적 장치일 뿐이라는 옹호 의견도 있다. 헌법재판연구원장을 역임한 이헌환 아주대학교 로스쿨 교수는 "법 규정은 언제나 어느 정도 불명확하며 추상성을 띌 수밖에 없다"며 고소·고발 가능성이 낮을 것으로 전망했다.
hong90@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