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명운 걸린 중간선거...북한에 손댈 여력 있나
'이벤트성 북미 대화'는 한국에 기회 아닌 리스크
트럼프-김정은 만남은 '기대' 보다 '대비'가 필요
[서울=뉴스핌]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다음 달 31일부터 시작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으로 정부 내에서는 북·미 대화 재개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의 중국 방문을 전후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접촉할 가능성이 있고, 이를 한반도 평화 정착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인식이 반영된 기대감이다.
'트럼프 방중 계기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의 시발은 지난해 10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당시 부산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트럼프의 기내 기자회견이었다. 트럼프는 김 위원장과의 만남이 불발된 것에 대해 "나는 김 위원장에 대한 존중을 가지고 다시 올 것"이라면서 "내년 4월에 시진핑(習近平) 주석을 만나기 위해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트럼프의 이 기자회견 이후 정부는 2026년 4월을 '한반도의 봄'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특히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관건적 시기' '천재일우의 기회' 등의 표현으로 북·미 대화 재개를 기정사실화하고 준비를 시작했다. 정 장관이 무인기 침투 사건에 대해 발 빠르게 북한에 유감 표명을 하고 9·19 남북 군사합의의 비행금지구역을 복원하겠다고 서두르는 것도 4월이 오기 전에 남북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하지만 현재 국제정세와 미국 국내 상황, 북한의 태도 등을 고려해볼 때 트럼프-김정은 만남에 대한 기대가 현실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트럼프 자신이 지금 북한 문제에 손을 댈 여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11월 중간 선거다. 선거에서 의회 권력을 민주당에 넘겨주면 자신의 집권 후반기는 식물 상태가 된다는 것을 잘 알기에 그는 중간선거에 모든 것을 걸다시피 하고 있다.
지난 24일(미국 시간) 트럼프의 집권 2기 첫 국정연설은 대부분이 사실과 부합하지 않은 자화자찬었지만 그의 연설 내용을 통해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트럼프가 지금 가장 신경 쓰는 것이 중간선거 승리를 위한 '성과 포장'이라는 것이다. 역대 최장 시간인 108분 동안 이어진 장광설은 관세 정책 옹호, 경제와 이민단속 성과 강조, 이란에 대한 위협, 서반구에서 미국의 지배력 강화 주장 등으로 채워졌으며 북한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었다.
현재 트럼프에게 주어진 정치적 에너지와 시간은 국내 경제·이민·치안, 그리고 중국·우크라이나·이란 등이 이슈에 모두 쏟아부어도 모자란다. 특히 미국 국가안보전략에서 북한은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비중이 낮아졌다.
북·미 대화가 트럼프에게 도움이 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북한 문제는 중국·러시아·이란에 비해 미국 유권자의 체감도가 매우 떨어지는 사안이다. 이란에 대해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핵무기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군사행동 가능성을 언급한 트럼프가 이미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핵무기를 갖고 있고 세계 최대 인권탄압국으로 꼽히는 북한의 지도자와 개인적 친분을 내세워 만남을 갖는 것이 중간선거에 플러스 요인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은 트럼프에게 중요하다. 트럼프는 지난해 10월 첫 미·중정상회담에서 '일시 휴전'에 합의하고 뒤로 물러섰지만, 이번에는 중간선거를 위해 실적이 절실히 필요하다. 하지만 미 대법원의 관세 부과 위법 판결로 이미 협상의 하이그라운드는 중국이 선점했다. 사실상 '언더독'이 된 트럼프가 명운이 걸린 중국 방문에서 '온 김에 김정은을 만나는' 여유를 보일 수 있을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미국이 북한에 대화를 제의한다 해도 북한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는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미국은 여전히 '완전한 비핵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이 핵동결에서 시작하는 단계적 비핵화와 일부 제재 완화 카드를 제시할 수 있겠지만, 이를 정교하게 연구하고 배열할 시간적 여유도 없고 북한이 미국의 제안을 신뢰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물론 트럼프와 김정은이 모두 예측불가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깜짝 이벤트가 성사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이같은 사태는 미리 대비해야 할 사안이지 기대를 갖고 그에 기반한 정책을 추진할 일은 아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트럼프가 북한과 대화를 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정착이나 냉전구도 해체 등의 목적 의식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성과 포장을 위한 '극적 이벤트형 외교'라는 사실이다.
현재로서는 아무 준비없이 트럼프가 김정은을 만나는 것은 남북관계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개에 도움이 되기보다 리스크를 더 키울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번에 북·미 대화 재개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대화 분위기 조성이 아니라 미국과 면밀한 협의를 통해 한·미 공동의 대북접근법을 만들고 '과연 피스메이커가 페이스메이커를 따라 같은 길을 달릴 것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어야 한다.
opento@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