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PP 통해 러시아·이란 우회 새 교역축 부상
[워싱턴=뉴스핌] 박정우 특파원 = 미국과 아르메니아가 민간 원자력 협력을 위한 이른바 '123 협정(민간 원자력 협력 협정)' 협상을 마무리하고, 향후 정식 협정을 맺기 위한 절차에 착수하기로 했다. 이로써 아르메니아는 러시아·이란에 편중된 에너지 의존에서 벗어나 미국산 소형모듈원자로(SMR)를 축으로 한 새로운 에너지·안보 동맹의 제도적 기반을 확보하게 됐다. 또 미국은 러시아·이란과 맞닿은 구 소련 출신 독립국들이 모여 있는 코카서스 지역에서 민간 원전·방산 수출과 함께 러시아·이란을 우회하는 전략적 교역·안보 축을 넓힐 교두보를 마련하게 됐다는 평가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9일(현지시간)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에서 니콜 파시냔 총리와 회담을 갖고, 양국 간 원자력 기술 이전을 가능케 하는 123협정 협상 완료에 관한 공동성명(Joint Statement on the Completion of Negotiations on an Agreement for Peaceful Nuclear Cooperation)에 서명했다.
공동성명은 이번 협상 타결이 "양국 간 에너지 안보 파트너십을 위한 양해각서(MOU)의 핵심 축인 민간 원자력 협력을 심화하는 데 있어 중대한 단계"라고 규정하면서, 각국이 내부 심사·승인 절차를 거쳐 123협정 정식 서명과 발효를 추진할 것임을 확인했다. 이번 합의로 아르메니아는 그동안 러시아와 이란에 크게 의존해온 에너지 구조를 다변화하고, 미국의 첨단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술을 도입할 수 있는 제도적 기초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밴스 부통령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번 협정은 미국 기업이 아르메니아 원자력 프로젝트에 진출할 수 있는 관문이 될 것"이라며, 약 50억 달러 규모의 초기 수출과 40억 달러 상당의 장기 연료·유지보수 지원 등 총 90억 달러(12조 원)의 경제 효과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아르메니아는 미국의 고도 기술을 이전할 만큼 신뢰할 수 있는 소수 국가 중 하나"라고 평가하며, 이번 합의가 단순한 에너지 협력을 넘어 양국 간 전략적 신뢰 관계를 격상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동성명은 123협정 협상 완료가 지난해 8월 백악관에서 서명된 '에너지 안보 파트너십에 관한 미·아르메니아 정부 간 양해각서(MOU)'의 목표를 구체화하는 조치라고 명시했다. 당시 MOU는 민간 원자력 협력 확대, 에너지 인프라 현대화, 에너지 안보와 회복력 제고 등을 골자로 하고 있으며, 이번 협상 타결로 양국은 이를 실행할 법적 프레임을 갖추게 됐다. 양측은 앞으로도 강력하고 상호 이익적인 민간 원자력 에너지 파트너십을 구축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밴스 부통령의 이번 행보는 아르메니아를 러시아의 전통적 영향권에서 점진적으로 이탈시키려는 미국의 외교 전략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국은 원자력뿐 아니라 약 1100만 달러 규모의 미국산 V-BAT 정찰 드론 도입을 포함해 국방·기술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 중인 코카서스 지역 평화·번영 구상인 '트럼프 국제 평화·번영 루트(TRIPP·Trump Route for International Peace and Prosperity)'를 뒷받침하는 조치로도 해석된다.
TRIPP는 아제르바이잔과 나흐치반 월경지를 연결하는 아르메니아 내 약 43km 구간의 도로·철도 회랑 건설을 골자로 하며, 러시아와 이란을 우회하는 새로운 동서 무역 동맥으로 설계돼 있다. 미국은 이 회랑이 수십 년간 이어진 아르차흐(나고르노-카라바흐)분쟁의 긴장을 완화하고 역내 평화 체제를 공고히 하는 핵심 인프라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경로는 중앙아시아의 핵심 광물·금속을 서방 시장으로 연결하는 동시에, 중국과 유럽을 잇는 약 6500km 길이의 중부 회랑(Middle Corridor)을 완성하는 결정적 연결 고리로도 거론된다.
자유유럽방송(RFE)은 미국의 원전 기술 이전과 민간 핵 협력 심화가 아르메니아를 이 새로운 경제·물류 회랑의 안정적 핵심 파트너로 편입시키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지역 내 러시아의 영향력을 대체하려는 전략적 포석으로 작용할 것으로내다봤다.
AP는 아르메니아 독립 이후 미국의 현직 대통령·부통령 방문이 한 차례도 없었다는 점에서, 밴스 부통령의 이번 방문은 30년 넘게 아르차흐(나고르노-카라바흐)를 둘러싸고 대립해온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분쟁을 종식시키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강한 외교적 의지를 상징하는 방문으로 평가했다.

dczoomin@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