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8일 치러진 일본 중의원 선거(총선)는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내건 정치 구호 '강한 일본'이 유권자 다수의 선택을 받았음을 분명히 보여줬다.
자민당은 전체 465석 가운데 316석을 차지하며 단독으로 개헌안 발의선(310석)을 넘겼고, 일본유신회와의 연립 구도를 포함하면 여당 의석은 352석에 달한다. 선거 결과만 놓고 보면 다카이치 정권은 전후 일본 정치사에서도 보기 드문 강력한 입법 기반을 확보한 셈이다.
이번 총선은 단순한 여당 승리를 넘어, 일본 사회가 향후 국가의 방향성에 대해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정치적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일본 언론과 정치권 안팎에서는 "유권자들이 다카이치 총리의 '강한 일본' 구상에 사실상 신임을 보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 '강한 일본'이라는 명확한 메시지에 화답
다카이치 총리는 선거 기간 내내 안보·외교·경제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강한 일본'을 전면에 내세웠다.
중국과 북한을 둘러싼 역내 안보 환경 악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미·중 전략 경쟁 심화 등 국제 정세를 배경으로 "일본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국가가 돼야 한다"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로 미국인들을 사로잡은 것과 똑같은 방식이다.
이는 보수 지지층 결집에 그치지 않고, 정치적 무당파와 중도층에도 일정 수준 설득력을 가졌다. 경기 둔화와 물가 상승 속에서 '현상 유지'보다는 '결단력 있는 리더십'을 원하는 유권자 심리가 다카이치 총리의 직선적인 화법과 맞아떨어졌다.

◆ 재무장·개헌, 이제는 '논의'가 아닌 '속도'의 문제
여당이 개헌 발의선을 넘긴 것은 다카이치 정권에 결정적인 정치적 날개를 달아줬다. 당장 자위대의 역할과 위상을 헌법에 명기하는 문제, 방위비 증액과 반격 능력 보유를 둘러싼 논의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일본 정치에서 군사적 재무장은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시기상조"라는 논리에 자주 가로막혀 왔다. 그러나 이번 선거 결과는 적어도 국회 내 권력 구도 차원에서는 그 장벽이 크게 낮아졌음을 의미한다.
이번 선거에서의 역사적인 압승으로 다카이치 총리로서는 더 이상 야당의 반대를 핑계로 속도를 늦출 이유가 줄어든 셈이다.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평화헌법이다. 그중에서도 헌법 9조 개정 논의다. 전후 일본의 정체성을 규정해온 헌법 9조는 오랫동안 '성역'에 가까운 존재였지만, 이번 총선 이후에는 본격적인 정치 일정에 오를 가능성이 커졌다.
물론 개헌까지는 국민투표라는 높은 문턱이 남아 있다. 하지만 국회 발의 단계조차 넘지 못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가 핵심 과제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정치적 의미는 작지 않다.
다카이치 총리가 선거에서 확인한 민심을 앞세워 개헌 논의를 주도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 재무장 넘어 '핵무장' 빗장까지 푸나
그동안 일본의 헌법 개정 논의는 전쟁 포기와 전력 보유를 제한한 9조에 집중돼 왔다. 그러나 이번 선거 결과를 관통하는 진짜 변화는 그보다 한 단계 더 깊숙한 지점, 바로 '핵'이라는 금기에 닿아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노선을 계승한 보수 강경파 정치인으로, 일본 정치권에서 드물게 핵무장 논의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해온 인물이다. 과거라면 정치 생명을 걸어야 할 발언이었지만, 이제는 총리의 입을 통해 핵이라는 단어가 일본 정치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물론 일본이 당장 독자적인 핵무장에 나설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 기술적·외교적 제약이 크고, 피폭국이라는 역사적 정체성에서 비롯된 국민적 저항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가능성'보다 '방향'이다. 핵을 절대적 금기로 봉인해왔던 일본 사회의 태도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누적된 변화는 정치 언어로 표면화되고 있다. 일본은 이미 적기지 공격 능력을 공식화했고, 방위비를 대폭 증액했으며, 미일 확장억제 강화라는 이름 아래 사실상 핵 공유에 가까운 논의도 물밑에서 이어가고 있다.

다카이치의 핵무장 발언은 이러한 누적된 변화가 정치 언어의 형태로 표면 위로 떠오른 결과에 가깝다.
특히 미국 우선주의 기조 확산과 '미국 핵우산'에 대한 불신은 일본 보수층의 위기의식을 자극하고 있다. 압승을 거둔 이번 총선은 일본 안보 정책의 우경화를 가속할 정치적 조건을 완성했다.
다카이치 정권의 가속 페달은 일본 국내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군사적 재무장과 개헌, 핵무장 논의는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과의 외교·안보 관계에도 직접적인 파장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일본이 '핵무장이 가능한 국가'로 인식되는 순간, 동북아시아 안보 질서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한국 역시 기존의 안보 선택지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결국 이번 총선은 일본 유권자들이 '평화의 일본'보다 '강한 일본'에 더 큰 무게를 실었다는 정치적 선언에 가깝다. 다카이치 총리가 이 민심을 토대로 전쟁이 가능한 국가로의 진화를 어떻게 구체화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를 밀고 나갈 수 있게 만든 정치적 토대는 이번 선거를 통해 분명히 다져졌다.
goldendo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