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급여 항암 치료제...월 550만원 이상 지출
"탈모로 노동력 상실하나?" 황당함에 웃음만
안덕선 원장 "중증질환 등 우선순위 고려해야"
[서울=뉴스핌] 조준경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탈모는 생존의 문제" 발언 이후 중증질환자들의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6일 보건복지부 업무계획 보고 자리에서 "탈모도 병의 일부 아닌가. 과거에는 미용으로 봤는데 요즘은 생존의 문제로 보는 것 같다"며 "재정적으로 부담된다면 횟수나 총액 제한 등을 해서라도 (건보 급여를) 검토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이에 김성주 한국암환자권익협회 대표는 24일 뉴스핌과의 통화에서 "우리 환자들이 볼 때 바람직하지 않은 내용 같다"면서 "사회적 생존에 관한 문제와 생물학적 생존의 문제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생물학적 생존이 훨씬 긴박하고 중요한 문제 아니냐"고 반문했다.
김 대표의 소개로 연결된 대장암 4기 항암치료 중인 공모씨(46)는 "어이가 없다"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탈모는 가발도 있고 목숨에 직접 연관된 것이 아닌데 어떻게 '생존'이라는 단어를 쓰냐"면서 "치료약 건강보험 미적용 문제는 중증질환자들의 경우 가정 전체가 풍비박산이 나는 것과 연결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공씨는 지난 2022년 8월 대장암 4기 판정을 받았다. 절제 수술을 받고 같은 해 10월부터 1차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이듬해 10월부터 올해 초까지 2차 항암치료가 이어졌다. 문제는 3차 표적 치료부터였다. 1·2차까지는 보험 급여가 적용됐으나 3차부터는 비급여(전액 본인부담)였다.
공씨가 맞아야 하는 두 종류의 약(론서프, 아바스틴) 값은 한달에 550만원 정도다. 이 마저도 체중이 58kg가량인 공씨 입장에선 다른 사람보다 저렴한 액수다. 몸무게가 더 나갈수록 용량이 늘기 때문에 600만원 이상을 지출하는 환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공씨에겐 보장율이 높은 1세대 실비보험이 있었다는 것이다. 입원 항암치료를 받으면 전액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공씨는 입원이 가능한 서울 소재 병원을 수소문해 강원도에서 월 2회 서울로 올라와 입원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원래는 33평 2억원짜리 전세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었으나 일도 그만두고 치료비가 필요해서 전세를 정리하고 월세로 옮겼다"며 "돈이 필요해서 내린 결정이었으나 고정비 지출은 늘어난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저 같은 경우에는 아내가 있어서 간병도 해주지만 주변의 환우들은 나이가 많아서 실비 보험이 없으면 매달 치료비와 간병비로 800만~1000만원 이상 지출하며 평생 모은 돈을 다 쓰기도 한다"며 "탈모가 노동까지 못하게 되는 질환은 아니지 않냐"고 말했다.
공씨의 아내 A씨 역시 기자와의 통화에서 헛웃음을 터뜨리며 "정말 황당해서 나오는 웃음"이라고 설명했다.
A씨는 "암 환자와 그 가족들은 약 하나에 피가 마른다. 대부분 어르신들이라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며 "인구도 이제 역피라미드가 됐는데 건보 재정을 그렇게 쓰는 것이 말이 되나. 차라리 약 개발 연구에 투자하는 게 맞지 않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대표는 "현재 식도암의 경우도 일부만 급여가 되고 면역 항암제의 경우 비급여로 환자들이 몇 년째 기다리는 상황"이라며 "건보 재정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사회적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고 신중하게 판단해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계 측에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17일 성명을 통해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 하에서 탈모를 우선적으로 급여화해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탈모치료제 급여화에 건보 재정을 투입하기 보다는 암 등 중증 질환에 대한 급여화를 우선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건강보험 원칙에도 부합한다"고 지적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 2020년부터 2024년까지 5년간 탈모 진료를 받은 인원은 120만8740명이다. 같은 기간 총 진료비는 2154억6394만원이었다. 여기서 공단 부담금은 1423억2896만원, 본인 부담금은 731억3498만원에 달한다.
안덕선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장(고려의대 명예교수)은 "(탈모 건보 적용은) 의료 공공성과 보장성 강화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면서 "의료비 억제정책은 소비통제도 같이 동반돼야 하는데 예산이 넉넉하지도 않아 보인다. 중증질환, 암치료 등 우선순위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 발언 이후, 보건복지부는 '탈모 급여화' 검토에 나섰다.

calebcao@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