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정책 부작용 스스로 인정한 셈"
근본 해법 없는 '미봉책' 지적 잇따라
[워싱턴=뉴스핌] 박정우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관세인상에 따른 미국 내 농가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해 총 120억 달러(17조6000억 원) 규모의 구제금융을 단행했다. 이번 조치는 중국과의 관세 보복전으로 막대한 손실을 본 성난 농심을 달래기 위한 긴급 지원이지만, 일각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스스로 무역 정책의 실패를 인정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스콧 베센트 재무부 장관과 브룩 롤린스 농무부 장관, 그리고 농민단체 대표등이 참석한 가운데 원탁회의(round table)를 갖고 120억 달러 규모의 농업 부문 구제금융 방안을 발표했다. 그는 "120억 달러는 큰 돈"이라며 "이 지원이 농민들에게 (농업 관련)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자금이 "관세 수입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구제금융 중 110억 달러는 '농민 가교 지원 프로그램'(Farmer Bridge Assistance Program)을 통해 대두 등 주요 작물 농가에 일회성 지급 형태로 지원된다. 스콧 베센트 재무부 장관은 "중국이 미국 농민을 협상 카드(pawn)로 이용했다"며 "이번 지원은 내년 농가의 영농 계획을 이어가기 위한 가교적 조치"라고 설명했다. 롤린스 농무부 장관은 농업 부문이 "대부분의 농민들이 평생 본 것보다 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농민들이 내년 2월 28일까지 지원금을 받게 될 것이며, 연말까지는 얼마나 받을지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롤린스 장관은 또 지원금 중 110억 달러는 대두와 옥수수 같은 밭작물(row crops) 재배 농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며, 나머지 10억 달러는 주로 과일과 채소 등 이른바 특용 작물(specialty crops) 생산 농가에 지원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 농무부(USDA)에 따르면, 중국은 미국의 대중 관세 부과에 반발해 미국산 대두를 비롯한 주력 농산물 수입을 사실상 '제로(0)' 수준으로 줄였다. 그 결과 대두 농가의 경우 전체 농업 손실의 70% 이상을 떠안았으며, 올해 상반기 기준 농가 파산 건수는 전년 대비 약 60%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1980년대 농업 불황 이후 최악의 위기"라고 경고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모든 통화를 더 많은 미국산 대두를 구매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으로 시작한다"고 말하는 등 성난 농심 달래기에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또 규제완화를 통해 농기계 가격 인하를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트랙터 회사들, 존 디어(John Deere)와 장비를 만드는 모든 회사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그들이 기계에 적용해야 하는 많은 환경 규제들을 해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나는 여러 가지 일 때문에 그 기계들을 많이 사기 때문에 이에 대해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다"고 말하며 자신의 "큰 클럽(골프장)"들을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밖에 전 세계적인 삼림 벌채를 막기 위해 최근 유럽연합(EU)이 발표한, 개간된 토지에서 생산된 목재 및 농산물의 수입을 금지하는 규제도 비난했다. 그는 "그들이 이런 종류의 일들을 한다"며 참석한 농민들에게 "내가 그걸 빨리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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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농민 지원 패키지를 발표한 날,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열린 원탁회의에 참석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하지만 이날 발표된 구제금융이 트럼프식 '관세 전략'의 한계를 자인한 조치라는 비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때도 중국의 보복 조치 여파로 200억 달러(27조 원) 이상의 농가 지원을 제공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관세 보복→농민 피해→보조금 투입"이라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뉴욕타임스(NYT)는 중국이 과거 농산물 구매 약속(2021년 기준 약속 이행률 83%)조차 완전히 이행하지 못한 점도 우려를 키운다며 최근 체결된 3년간 연 2500만 톤 대두 구매 합의 역시 "지켜질지 불투명하다"는 반응이 현지 농업계에서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으로 수입선을 다변화하며 대미 의존도를 낮추는 상황에서, 단기 현금 지원은 수출 시장 상실과 농업 경쟁력 저하라는 근본적 위기를 막지 못하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dczoomin@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