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찬우 기자 = 한국 자동차 산업을 이끌어온 '현장 영웅'들이 포니 양산 50주년을 맞아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한국 자동차 수출이 사상 최대 기록 경신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한국차 글로벌화의 출발점이 된 포니와 이를 뒷받침한 엔지니어들의 공헌이 재조명되는 분위기다.
1975년 12월 1일 현대자동차가 국내 최초 독자 모델 '포니'의 양산에 돌입한 것을 계기로 한국 자동차 산업은 비로소 독자 기술 축적과 해외 시장 도전에 나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 시점을 기점으로 한국차는 조립·면허 생산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자체 개발 역량을 축으로 성장 궤도에 올랐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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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차 박동주 책임이 솔라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KAMA] |
6일 산업통상자원부 집계에 따르면 올해 11월까지 자동차 수출 누계는 660억4000만달러에 이르렀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는 연간 기준으로 718억달러 수준의 수출이 예상된다며 "2023년 709억달러를 넘어서는 역대 최대 실적 경신이 사실상 기정사실화됐다"고 진단했다.
같은 기간 친환경차 수출은 236억달러로 전년 대비 9.7% 늘며 전체 수출 증가세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업계는 "미·중 갈등 심화, 보호무역주의 확산 등 불리한 대외 여건 속에서도 기술 경쟁력 고도화와 수출 시장 다변화 전략이 맞물린 결과"라고 해석한다.
현장에서는 당시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각종 규제와 기술 장벽을 뚫어내며 한국차의 세계 무대 진출을 현실로 만든 엔지니어들의 이름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1980년대 현대차에서 배기가스 규제 대응을 전담했던 김기영 책임은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당시 미국의 환경 규제는 국내 기술력만으로는 충족이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김 책임은 일본 미쓰비시와의 기술 협업을 바탕으로 배기가스 제어 시스템을 차량에 본격 적용했고, 수차례 엔진 맵핑과 실차 시험을 반복하며 까다로운 인증 기준을 하나씩 맞춰 나갔다.
이 같은 시도가 결실을 맺으면서 1986년 '포니 엑셀'의 미국 수출이 성사됐고, 이는 한국 자동차 산업이 본격적으로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김 책임은 "엑셀의 미국 수출은 기술 자립을 향한 분기점과도 같았다"며 "기술 개발은 필연적으로 시간과 시행착오를 요구하지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연구 환경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성과로 이어진다"고 회고했다.
국내 전동화 기술의 뿌리를 닦은 인물로는 박동주 책임이 꼽힌다. 그는 산업 현장에서 조용히 미래차 시대의 초석을 쌓아온 '숨은 공신'으로 평가된다.
박 책임은 1990년 울산기술센터에서 추진된 '솔라카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국내 최초 전기차 개발에 뛰어들었다. 쏘나타(Y2) 차체를 바탕으로 배터리, 모터, 인버터 등을 직접 설계·조립해 1991년 현대차 첫 전기차 프로토타입 '쏘나타 EV'를 완성한 것이 출발점이었다.
이후 관련 연구는 하이브리드 차량과 수소전기차 시험 연구로 영역을 넓혔고, 2000년대 친환경차 시험동 설립 등 현대차 전동화 개발 체계 구축의 중요한 기반이 됐다. 박 책임은 "당시 전기차 개발은 말 그대로 모든 과정이 실험의 연속이었다"며 "그때 쌓인 실패와 경험이 오늘날 전동화 기술 경쟁력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미래차 시대에는 기술 축적과 함께 끊김 없는 정책적 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현장 공로자'에 대한 재조명은 정부 차원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산업 현장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며 국가 산업 발전에 기여한 '산업 역군' 90여 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감사 오찬을 진행했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대미 관세 협상 과정에서도 산업계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줬다"며 "현장에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야말로 대한민국 산업경쟁력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어 "여러분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성과가 대한민국을 세계 선도 산업국가 반열에 올려놓았다"며 "축적된 산업 자산을 토대로 더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함께 힘을 모으겠다"고 덧붙였다.
포니 양산 50주년과 사상 최대 수출 실적이 맞물린 올해, 한국 자동차 산업의 성장을 떠받쳐 온 이름 없는 기술자들의 역할이 '숫자 너머의 진짜 경쟁력'으로 다시 부각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통계로만 보면 수출이 자연스럽게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현장에서 복잡한 기술 과제를 해결해 온 수많은 엔지니어의 경험이 반영된 결과"라며 "지금의 성과는 산업 현장을 지켜온 기술 인력들이 오랜 기간 쌓아 온 노하우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chanw@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