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 직행 해외 진출은 적어…"韓 기업이 첫 경유지"
학계, 산학협력 확대로도 못 막는 구조적 한계 지적
[서울=뉴스핌] 김정인 이찬우 기자 = 국내 대학에서 배출되는 인공지능(AI)·반도체 전공자들의 진로 흐름이 달라지고 있다. 해외 무대를 향한 선호는 여전히 강하지만, 학부 단계에서 곧바로 해외 취업이나 유학으로 '직행'하는 경우는 드물어졌고, 대부분은 국내 대기업 입사를 우선 선택한 뒤 경력을 쌓아 글로벌 기업으로 이동하는 경로를 택하고 있다. 비자·언어·정보 접근성 같은 현실적 장벽에 더해 국내 기업의 안정성과 커리어 가시성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 결과다.
다만 이러한 변화에 대한 해석은 교수들 사이에서도 엇갈린다. 일부는 "해외 이동 의지가 예전보다 약해졌다"고 보는 반면, 또 다른 일부는 "국내를 거쳐 해외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구조적 흐름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진단한다. 학계가 지적하는 문제는 교육 현장의 기초 역량 격차, 산업체 경험을 갖춘 교수진의 부족, 학부 중심의 단기 인력양성 구조 등이다. 진로 선택 방식은 변했지만, 인재가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은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해외로 기울어진 구조'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라는 시각도 제기된다.
◆ "현실적 선택"…국내 대기업이 '1순위'가 되는 이유
AI·반도체 전공 학생들은 여전히 해외 무대를 꿈꾸지만, 학부 졸업 직행 해외 취업·유학은 극히 드문 흐름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기업 맞춤 인재를 길러내는 계약학과 교수들은 특히 이 흐름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있다.
김소영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삼성전자 계약학과) 교수는 "최상위권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국내 대기업 입사를 순위로 둔다"며 "한 학년 70명 기준 해외를 실제로 준비하는 학생은 1~2명 수준"이라고 말했다.
해외 이동 가능성이 가장 큰 집단은 석·박사급 또는 일정 경력을 쌓은 엔지니어들이다. 김 교수는 "도전 성향이 강한 학생들은 미국 대학원(석·박사)으로 진학한 뒤 글로벌 기업에 지원한다"며 "박사급은 구글 등 빅테크 취업이 가능하고, 경력자의 경우 국내 대기업에서 책임급 이상으로 경험을 쌓은 뒤 스카우트 되는 루트가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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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가천대 반도체대학(조기취업형 계약학과) 석좌교수는 이러한 해외 이동의 원인 중 하나로 학부 단계에서의 한계를 지적한다. 그는 "정부 인력양성 사업은 양적인 확대는 있지만 산업이 필요로 하는 질적 역량, 특히 AI 모델 최적화나 시스템 소프트웨어 역량을 학부에서 충분히 키우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구조적 요인이 국내에서 장기 커리어를 설계하기 어렵게 만들고, 결국 국내 기업을 거쳐 해외로 이동하는 '경유형 유출'의 흐름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 GPU보다 '기초'가 문제…교육 현장의 병목은 따로 있다
AI·반도체 교육 인프라는 빠르게 확충되고 있다. 그러나 교육 현장에서 체감되는 가장 큰 문제는 장비가 아니라 기초 역량의 격차와 학생 규모의 제한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소영 교수는 "GPU 부족이 가장 큰 문제는 아니다"라며 "고교에서 수학·물리 기초가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학생들이 있어 대학에서 기초를 다시 가르쳐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현장의 교수진이 부족하다기보다는, 교육할 학생 수가 제한적이어서 심화 교육을 위한 여건이 충분히 조성되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또 "계약학과가 단기 인력양성 중심으로 운영되다 보니 박사급(장기) 인재 양성이 상대적으로 부족해질 수 있다"며 "박사 양성에 더 유연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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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교수는 교육의 '질적 요소'에 더 주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 교수는 "반도체설계자동화(EDA) 툴, GPU·신경망처리장치(NPU) 서버 같은 실습 장비 확보도 중요한 요소지만, 산업 현장에서 요구하는 역량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이를 다룰 실무형 교수진과 소프트웨어·시스템 기반의 커리큘럼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AI 반도체 교육은 AI 모델 이해→경량화(스몰 모델)→NPU 기반 순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이 과정을 지도할 교수진이 부족해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산학협력이나 계약학과가 취업 경로와 장학 혜택 측면에서는 매력적이지만, 이것이 곧바로 '교육의 질'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산업 실무를 해 본 교수진, 체계적인 인턴십·프로젝트 연계가 핵심인데, 현실에선 논문 중심 평가와 실무 경험 교수 부족으로 한계가 생긴다"며 "기업도 교육 협업을 원하지만 수익·자원 제약 탓에 깊은 협업이 쉽지 않다"고 했다.
◆ "엔지니어가 인정받는 사회"…유출을 막기 위한 조건들은 분명했다
두 교수는 인재 이동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지만, 그 배경에는 한국의 교육·산업 구조가 놓여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해외로 이동하는 학생들이 모두 적극적으로 글로벌 무대를 택하는 것은 아니며, 국내에서의 진로가 원하는 방향으로 풀리지 않을 때 다른 선택지를 모색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본다. 공통적으로 강조한 메시지는 "인재는 결국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따라 움직인다"는 점이다.
김소영 교수는 "한국은 특정 분야에 유행처럼 쏠리는 경향이 있다"며 "어떤 전공이든 장기적으로 꾸준히 지원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벤처·창업 환경을 더 자유롭고 수월하게 만들어야 한다"며 "해외에 나가는 학생 중에는 스스로 기술을 만들고 싶은 욕구가 강한 경우가 많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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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AI제작] |
김용석 교수는 엔지니어가 사회에서 제대로 인정받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양적으로 많이 뽑는 것보다 석사·박사급 질적 인재를 키우는 투자가 훨씬 중요하다"며 "학·석사 5년 통합 트랙, 설계·소자·패키징 등 세부 특화 대학원 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했다.
결국 두 교수는 국내 인재가 장기적으로 머무를 수 있는 조건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같이 한다. 엔지니어가 기술로 평가받고, 심화 학습이 보장되며, 성과가 명확히 보상되는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는 한 국내에서의 '출발'이 유지되더라도 최종 목적지는 해외가 되는 흐름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kji01@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