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의 대표곡 합작한 음악동네 트리오
두 사람을 결혼으로 이끈 조용필의 배려
고비마다 과감한 결단, 명곡 탄생의 이유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지나가는 중년들에게 양인자가 노랫말을 쓰고, 김희갑이 작곡하여 조용필이 부른 노래를 물어보면 대개는 한 두곡씩 알고 있을 것이다. '그 겨울의 찻집','바람이 전하는 말','킬리만자로의 표범', '큐(Q)',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에 이르기까지 조용필의 대표곡 리스트와 맥을 같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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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다큐멘터리 영화 '바람이 전하는 말'에 출연한 작곡가 김희갑. [사진 = 판시네마] 2025.11.12 oks34@newspim.com |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웬만한 시 한 편보다 긴 노랫말을 가사를 보지 않고 부를 수 있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최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바람이 전하는 말'은 3천여 곡을 남긴 국민 작곡가 김희갑, 그리고 그의 반려인이자 영원한 파트너인 양인자의 삶을 조명했다. 조용필 노래 외에도 '열정'(혜은이), '알고 싶어요'(이선희), 뮤지컬 '명성황후'의 '백성이여 일어나라'까지 두 사람이 합작했다.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지만 김희갑과 양인자가 부부의 인연을 맺는데 기여한 사람이 조용필이었다. 조용필은 8집 앨범 작업을 위해 두 사람과 자주 만났다. 당시 김희갑은 이혼, 양인자는 사별로 '싱글'이었다. 작업 때문에 이들을 자주 만났던 조용필은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작정하고 두 사람이 함께할 시간을 만들어 주면서 결혼을 부추겼다. 덕분에 두 사람은 1987년 결혼식을 올린 뒤 아직까지 백년해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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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다큐멘터리 영화 '바람이 전하는 말'에 출연한 가수 조용필. [사진 = 판시네마]2025.11.12 oks34@newspim.com |
1936년 평양에서 태어난 김희갑은 1·4후퇴 때 남한으로 내려와서 대구에서 접시를 닦으며 피난생활을 했다. 고등학생 시절 미8군 밴드에서 연주를 시작했다. 그의 잡안은 대를 이은 의사 집안이었다. '의사' 대신 '딴따라'를 택한 아들은 아버지에게 미운오리새끼였다. 그러나 몇 년 전 김희갑은 기자에게 "의사로 평생을 산 형들이 나를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양인자는 부산에서 유명한 문학소녀였다. 서라벌예대(현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했을 때 신춘문예 정도는 너끈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은사였던 소설가 김동리도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하는 제자를 안타까워했다. 양인자는 방송작가 김수현과 월간 '여학생' 기자를 같이했던 인연으로 방송작가가 된다. 신춘문예 당선 소감으로 써놨던 글이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됐다.
풍부한 서사를 갖춘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무려 5분27초짜리 대곡이다. 노래가 길면 히트하기 어렵다면서 제작자가 반대했지만 조용필이 밀어붙였다. 훗날 조용필은 김희갑·양인자 부부와 20분짜리 대곡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도 발표했다. 두 곡 모두 조용필의 결단이 아니었다면 태어날 수 없었다는 게 김·양 부부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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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다큐멘터리 영화 '바람이 전하는 말'에 출연한 작곡가 김희갑과 작사가이자 방송작가인 양인자(사진 왼쪽). [사진 = 판시네마]2025.11.12 oks34@newspim.com |
'바람 속으로 걸어갔어요/ 이른 아침의 그 찻집/ 마른 꽃 걸린 창가에 앉아 외로움을 마셔요/ 아름다운 죄 사랑 때문에 홀로 지샌 긴 밤이여/ 뜨거운 이름 가슴에 두면 왜 한숨이 나는 걸까/ 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사랑아'
'그 겨울의 찻집'은 원래 양인자 극본의 라디오 드라마 주제곡으로 쓰이면서 주인공이었던 왕영은이 먼저 불렀다. 조용필은 이 노래를 처음 받았을 때 전율이 일었다고 회고한다. 시적인 가사와 세련된 멜로디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도 자신에겐 별로 없는 겨울 노래라는 점이 마음을 끌었다.
세 사람의 '작업'을 들여다보면 그 이면에 '과감한 결단'이 숨어있다.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기 보다는 가지 않은 길을 과감하게 선택하여 뚜벅뚜벅 걸어온 것이다. 그들에게서 거인의 향기가 난다. 이번 주말엔 다큐멘터리 영화 '바람이 전하는 말'을 찾아서 보기를 권한다. oks34@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