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최문선 기자 = 흙 속에서 발견됐다 숨죽여 있던 유물이 예술가들의 손끝에서 다시 피어난다.
4일 덕수궁에서 진행된 '발굴유물 역사문화공간 예담고 프로젝트전: 땅의 조각, 피어나다' 백브리핑은,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비귀속 유물의 숨겨진 가치와 활용 가능성을 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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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뉴스핌] 최문선 기자 = 최성우 작가 (2025년 발굴유물 역사문화공간(예담고庫) 프로젝트전). [사진=최문선 기자] 2025.11.04 moonddo00@newspim.com |
한국문화유산협회 이아영 기획 담당자는 이번 전시가 "발굴 유물 역사 문화공간 '예담고' 프로젝트의 일환"이라고 설명하며, 2022년부터 운영된 예담고가 비귀속 유물의 체계적 관리와 폭넓은 활용을 위해 조성됐다고 밝혔다.
예담고는 현재 4개 권역에서 운영 중이며, 2028년까지 총 6개 권역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이번 전시는 예담고에 소장된 석기, 토기, 청자, 기와 등 다양한 유물들을 전통 공예와 현대 예술을 아우르는 8인의 작가가 재해석한 작품을 선보이며, 유물의 잠재적 가치를 극대화했다.
국가무형유산 궁중채화 보유자인 최성우 작가는 영남권역 예담고의 토기 유물에 인공 꽃을 활용한 조선 왕조 장식 기법을 접목했다. 최 작가는 유물 조각들을 거울 위에 배치하여 '하늘을 비추는 땅'을 상징적으로 연출했다.
이아영 담당자는 "거울 속에 비치는 유물의 모습은 우리의 유산을 상징하며, 이는 곧 유물이 발굴되는 축하의 순간을 궁중채화로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귀속 유물이라 할지라도 그 가치를 높이 기리는 작가의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유리 공예 이규비 작가는 충청권역의 석기를 사용했다. 석기는 도구 기술이 발전하기 이전의 도구였으며, 유리의 원물인 모래 역시 자연에서 온 소재다.
이 작가는 "유물은 과거의 기억을, 유리는 현재의 빛과 다양한 표정을 담고 있는 생명체"라고 표현하며 "새 생명이 유물에서 돋아나는 모습"을 형상화하는 데 주력했다고 밝혔다. 자연의 원물들이 만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새로운 예술품으로 재탄생하는 지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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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뉴스핌] 최문선 기자 = 서은하 작가 (2025년 발굴유물 역사문화공간(예담고庫) 프로젝트전). [사진=최문선 기자] 2025.11.04 moonddo00@newspim.com |
서은하 작가는 영남권역 토기 조각을 현대적인 테이블웨어(촛대, 볼 플레이트)로 재탄생시킨 '헤리티지 업사이클링'을 선보였다. 특히 파손된 토기 조각과 결합된 현대 파트는 3D 프린터로 제작된 생분해성 플라스틱 소재로 만들어져 눈길을 끈다.
서 작가는 "기존 플라스틱과 달리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미생물의 도움을 통해 다시 자연 속으로 돌아간다"며, "흙에서 만들어졌다가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토기의 라이프 스토리와 동일한 순환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이 신소재를 작품에 활용했다"고 강조했다. 이는 유물의 가치와 지속 가능한 미래를 동시에 고민하는 시도다.
지속 가능한 업사이클링을 꾸준히 실천해온 김은하 작가는 해안 권역에서 출수된 청자 유물을 선택했다. 작가는 청자의 단단한 이미지 위에 유연하고 부드러운 섬유 소재를 덧대어 연꽃 연작을 형상화했다.
작품은 청자에 새겨진 연판문(연잎 무늬)을 모티브로 삼아, 유물에서 연꽃이 피어나는 형태를 시각화했다. 이 담당자는 "단단한 전통 문화 위에 유연하고 부드러운 현대적 소재를 더함으로써, 우리의 문화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든 펼쳐 나갈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전통문화대학교에 재학 중인 최지원, 김호준 작가는 토기, 청자 등 4개 권역 유물을 한 작품에 담았다. 일반적으로 깨진 유물을 석고로 복원할 때는 유물의 원래 색깔과 동일하게 처리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최지원 작가는 석고를 하나의 하얀 캔버스로 이용하고 그 위에 전통 회화를 그려 넣어, 유물을 '2025년의 또 다른 작품'으로 탈바꿈시켰다. 최지원 작가는 전시 제목인 '피어나다'에 초점을 맞춰 금붕어, 대나무 등 전통 회화 요소를 활용했다고 전했다.
최지원 작가는 뉴스핌과 인터뷰를 통해 "학교를 통해서 함께하게 됐다. 작업을 하는데 안료도 안 튀게 해야하는 점이 어려웠다. 또 석고라는 소재를 원래 사용하지 않는데 처음으로 석고를 이용해 작업해야돼서 어려웠다"면서도 "유물을 활용해 작업을 하는 게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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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뉴스핌] 최문선 기자 = 레오킴 작가 (2025년 발굴유물 역사문화공간(예담고庫) 프로젝트전). [사진=최문선 기자] 2025.11.04 moonddo00@newspim.com |
레오킴 작가는 기와 유물을 활용한 작품을 선보였다. 그는 "작업을 시작할 때 기와 본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자연을 통해 작품과 생각을 전달하는 작가인 레오킴은, 그의 작품에서 '죽은 듯한 배에서 다시 싹이 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레오킴 작가는 "끝났지만 다시 시작하고, 또 다시 끝나고 시작하는 이러한 순환이 곧 현대, 전통, 앞으로의 미래, 그리고 다시 전통으로 이어지는 끊임없는 흐름이 아닐까 하는 저의 시선을 담아보았다"고 설명하며, 유물이 지닌 시간적 의미와 자연의 생명력을 결합한 깊은 메시지를 전달했다.
예담고 프로젝트전 '땅의 조각, 피어나다'는 4~16일 덕수궁에서 열린다.
moonddo00@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