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승혜 주영한국문화원장 인터뷰
[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지금이 바로 K-컬처의 골든타임입니다."
선승혜 주영한국문화원장은 지난 여름 걸그룹 블랙핑크의 런던 공연을 생각할 때마다 소름이 돋는다고 했다.
지난 8월 15~16일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블랙핑크 공연에는 11만명의 영국팬들이 몰려들어 K-팝의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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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승혜 주영한국문화원장. 2025.10.16. ihjang67@newspim. com [사진=뉴스핌] |
선 원장은 16일(현지 시간) 단독 인터뷰에서 "전 세계에서 수억 명이 넘는 한류팬들이 한국의 문화 컨텐츠에 열광하고 있다"며 "이때야말로 우리가 한 시대의 단순한 유행을 넘어 전 세계 문화 역사에 발자취를 남길 수 있는 의미있는 역할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23년 2월 주영한국문화원장으로 부임한 그는 평생 잊지 못할 순간 중 하나로 작년 10월 10일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때를 들었다.
"바로 전날 테이트모던 미술관 터바인홀에서 이미래 작가의 개인전이, 사우스뱅크센터 헤이워드갤러리에서 양혜규 작가의 개인전이 시작됐어요. 두 전시회 모두 한국 미술로선 기념비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었지요. 이런 상황에서 다음날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이 발표된 거예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녹아버릴 것 같은 뜨거운 감동이 밀려오더라구요."
선 원장은 이때 절감했다. K-컬처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21세기의 세계적 문화 현상이라는 것을.
한국 문화가 한반도, 동북아를 넘어 세계적 보편성을 갖게 됐고, 세계인이 K-컬처라는 용광로 안에서 기쁨과 위로를 발견하고 용기를 얻으며 자신을 표현하고 미래의 꿈을 설계한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세계인들이 소비하고 즐기고 빠져드는 것은 한국인의 비전과 정서가 담긴 'K-세계관'이라고 했다.
"세계인들이 K-팝에 열광하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일까요. BTS나 블랙핑크 같은 그룹 자체일까요? 그들의 노래나 춤, 패션, 응원봉일까요? 제 생각인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한국인의 정서와 감정, 판타지가 아닐까 싶어요. '정(情)'이나 연민, 로맨스, 평화, 희망, 공동체, '타인에 대한 포용' 등 세계의 어떤 나라, 어떤 민족보다 감수성이 예민한 우리 K-세계관에 지구촌이 공감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는 한국 미학의 핵심을 "마음껏 멋(美)과 재미를 함께 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타인과 세계를 향한 따뜻한 상상력, 인류가 직면한 위기 속에서 공존과 회복의 정서적 리더십을 제공한다고 했다.
선 원장은 K-컬처가 소셜미디어 시대, 인공지능(AI) 시대를 운명처럼 만나면서 전파력과 영향력이 극대화됐다고 진단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를 강타한 데에는 유튜브가 결정적 공헌을 했고, BTS의 글로벌 팬덤 형성에는 인스타그램이 효자 노릇을 한 것이 대표적이다.
선 원장은 디지털 문화가 인류의 문화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는 이때 한국 미학이 선구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했다.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가 우리 문화를 이토록 즐기고, 우리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어요. 또 세계는 이제와는 완전히 새로운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고 있어요. 이때 디지털 강국인 우리가 앞장 서서 '이 시대에는 이런 가치가 필요하고, 저런 룰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소리는 낸다면 세계인들이 듣지 않을까요."
디지털과 문화를 양손에 들고 있는 한국이야말로 기술 시대의 문화 철학을 이끌어 나가는 주역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글로벌 문화와 교육, 과학 등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유네스코(UNESCO·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같은 국제기관에 더욱 정성을 들여 한국의 영향력을 키우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선 원장은 "우리는 지금까지 남을 부러워했고, 남이 만들어 놓은 것을 따라하는데 급급했다"며 "K-컬처가 골든타임을 맞고 있는 지금 '문화의 글로벌 표준'을 우리가 만든다는 꿈을 꿔보면 어떨까 싶다"고 말했다.
■ 선승혜 주영한국문화원장은…
서울대 미학과에서 학사·석사를 마치고, 일본 도쿄대에서 미술사학 박사를 받았다.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를 거쳐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에서 한국·일본미술 큐레이터로 재직했고, 서울시립미술관 학 학예연구부장과 대전시립미술관장을 역임했다.